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카 Aug 17. 2019

아베는 일본의 일탈이 아니다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 2006년 이후 6년 동안 6명의 일본 총리가 바뀐 시절은 강렬하게 남아있다. 애초에 내각제에 부정적이던 인식이 더 나빠진 계기가 됐다. 혼란과 무능을 상징하던 시절이 지나고 2기 아베내각(현 내각)이 들어섰다.


이런 배경으로 한국에서는 아베 정권을 혼란에 이어 등장한 돌출적인 정권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2010년대 들어서 일어난 급격한 일탈로 여긴다. 일종의 열병으로 보기 때문에 일본 전체의 의사와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도 한다.  


하지만 도쿄에서 30년간 정치학을 가르친 작가에 따르면 아베 정권은 2001년 고이즈미 전 총리가 깔아놓은 철로 위를 달리고 있다. △자민당내 파벌 균형의 붕괴 △내각 통솔력의 비약적인 강화 △당내 인사권 장악은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집권한 6년 동안 완성됐다.


특히 아베라는 신인을 키운 것도 고이즈미 전 총리다. 보통 9선 이상 의원이 맡는 간사장(사무총장 격)을 3선인 아베에게 맡기더니 2년 후에는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으로 세운다. 이후에는 총리 자리를 물려줘 전후 최연소이자 최초의 전후 세대 수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연원을 따라가다보면 2019년의 아베 정권의 뿌리가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정권까지 올라간다는 걸 알게된다. 중간에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사건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거의 20년 가까이 큰 커브를 그리며 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종착지는 물론 개헌이다.


개헌을 위한 작업도 착실하게 이뤄져왔다. 다국적군을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도록 한 '테러 특별 조치법'이 통과된게 2001년이다. 이후 국제적 분쟁이 있을 때마다 일본은 조금씩 파병 영역을 넓혀왔다. 이 움직임은 2014년에는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한 '해석 개헌'으로 이어졌다. 후속 조치로 2015년 안보법안이 입법됐다.


시간의 지평을 넓혀보면 아베내각은 '급변'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정속주행하고 있는 셈이다. 아베정권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작가도 개헌을 기정사실로 본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일부 극단세력의 주장에 불과했던 개헌이 이제는 비등한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전한다.


아베 총리가 실각할 것을 기대하는 데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당장 자민당 내에서 아베에 반기를 들 세력은 전무하다. 만약 실각한다고 해도 이는 총리교체 일 뿐 정권교체는 아니다. 현재 차기 총리로 유력한 사람이 바로 고이즈미 전 총리의 2세다.


책을 읽고나니 현재의 한일간 문제도 결국 정권에 무관하게 일어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로드맵에는 한일 갈등도 상정돼 있었을 것이다. 수단과 시간표만 바뀌었을 뿐. 아베정권은 내셔널리즘으로 치닫은지 오래고 위험수위다.


'전쟁가능한 일본'이라는 그들의 종착지를 받아들이지 않는한 언제고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지 않아도,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고 해도 말이다. 과연 보수정권이었다면 저 종착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외교안보는 최악을 가정하고 구상해야한다. '전쟁가능한 일본'은 상수로 봐야 한다. 개헌이 좌초 되길 바라며 십수명의 일본 시민단체 시위대에 희망을 걸어선 안된다. 협상은 해야하지만, 담판도 큰 기대를 걸 순 없다. 일본에는 오부치 총리가 없는데 한국만 김대중 정부처럼 한다고 될까. 한국의 좌우는 공히 일본 문제에 있어 '낙관적'이다.


안보 구상은 어떻게 바꿔야할까. 일본이 북한과 자체적으로 수교하면? 후방 군수지원국이던 일본이 배후의 위협으로 변모하면? 머리 아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요함의 대가, 소음의 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