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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카 Aug 21. 2021

당근마켓이 중고나라보다 30배 비싼 이유

플랫폼은 새로운 은행이다

며칠 전 당근마켓이 큰 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를 3조원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신세계(2.5조원)나 현대백화점(1.8조원)보다 큽니다. 출시된 지 6년 된 매장 하나 없는 앱으로 부동산 부자인 유통 공룡을 앞섰습니다.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국내 유통기업 가운데에는 쿠팡·카카오·네이버 외에 경쟁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중고시장이 뜨니까 높은 평가를 받았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 이 시장을 지배하던 중고나라를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중고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롯데 컨소시엄에 1200억원에 팔렸습니다. 당근마켓의 월 사용자수는 1500만명, 중고나라는 1200만명. 회원 규모는 비슷한데 가치는 약 30배 차이 납니다.


이런 가치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차이를 만든 건 플랫폼 위에서 신뢰가 만들어지는지 여부입니다. 저는 10년 넘게 중고나라를 이용했습니다. 이렇게 오래 사용했지만 지금도 거래하려면 온갖 의심을 다 받습니다. 살 때도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거래를 합니다.


당근마켓의 사용자 평점인 '매너온도'. 거래 상대방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 높아진다.

반면 올해 처음 써본 당근마켓은 서너 번 거래하고 나니 점점 거래가 수월해집니다. 사용자의 신뢰도를 나타내는 '매너온도' 덕분입니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 노력하다 보니 벌써 매너온도가 40도가 넘네요. 당근마켓은 무료나눔도 활발하고 거래 상대에게 '덤'을 주는 일도 잦습니다. 동네 사람이라 맘이 가는 것도 있겠지만, 매너온도를 쌓는데도 도움이 되거든요.

[당근 공식] 가치=회원 수 x 신뢰


모든 당근마켓 이용자는 매너온도를 높게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지금도 당근마켓내 매너온도 총량은 늘고 있습니다. 중고나라가 회원수라는 하나의 요소로 산술급수로 가치를 늘려왔다면, 당근마켓은 '가치=회원수x신뢰도' 공식으로 기하급수적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당근 공식'이라고 이름을 붙여보고 싶네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반품과 '오늘 시키면 내일 온다'는 믿음을 주는 쿠팡

왜 수천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오픈마켓은 쿠팡의 수십 분의 1의 가치 평가를 받을까 생각해볼까요. 오픈마켓에서 마음 놓고 물건을 사긴 참 어렵습니다. 별점도 충분치 않은 판매자가 플랫폼 내에 가득합니다. 환불과 반품이 될지도 불안하죠. 쿠팡은 블랙컨슈머를 감수하고 '무조건 반품'을 시행하고 직매입을 늘려 신뢰에 투자했습니다. '오늘 시키면 내일 올거야'라는 믿음도 신뢰죠. 이런 투자가 오늘의 쿠팡을 만들었습니다.



플랫폼은 '은행'이다


지구 반대편의 남의 집에서 자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무모한 일을 하게 만든 게 에어비앤비죠. 에어비앤비가 수많은 집을 그저 등록만 해놨다면, 사람들이 지금처럼 믿고 거기서 잘 까요? 저는 아무리 숙소가 많고 저렴해도 리뷰가 없는 집에 가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믿을만한 다른 투숙객의 별점 덕분에 이용자는 남의 집에서 자는 모험을 합니다.


오늘날 플랫폼은 '신뢰'라는 재화를 만드는 은행입니다. 동네에 식당을 열어 별점 5점을 찍으면 권리금이 1억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배달의민족 앱에서 이런 식당이 100개가 탄생하면, 100억원의 가치가 창출된 셈입니다. 이 100억원은 어디서 온 가치일까요? 100억원은 신뢰에 부여하는 가치입니다.  배은 이 가치를 만드는 플랫폼입니다.


배민에서의 5점은 요기요의 5점보다 가치 있습니다. 달러가 신흥국 통화보다 가치 있는 것처럼요. 플랫폼이 가짜 리뷰를 형사 고발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별점을 화폐로 보면 가짜 리뷰는 위조지폐를 유통이죠. 위조 자체도 중범죄일 뿐 아니라 이걸 방치하면 플랫폼 전체의 신뢰가 무너집니다. 요즘 저는 네이버지도 맛집 별점은 믿지 않습니다. 대신 상대적으로 '작업'이 덜한 구글 지도를 이용합니다. 플랫폼 자체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중국의 국가 신용점수 시스템. 출처 MERICS

플랫폼이 신뢰를 찍어내는 은행이라고 보면 중국공산당이 텐센트와 알리바바의 데이터 수집을 분쇄하려는 게 납득이 됩니다. 중국 정부는 전 국민의 신용도를 점수화한 국가 신용 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신뢰 창출을 민간에 맡기고 자유롭게 경쟁하게 하지만, 중국은 그 역할을 국가가 독점하려 하는 겁니다. 중국공산당은 신뢰가 오늘날의 화폐라는 걸 알아챈 게 아닐까요. 텐센트나 알리바바가 그 역할을 하는 걸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2010년대에 쏟아져 나온 자칭 '공유경제 플랫폼'의 희비가 갈린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위워크는 사무실 공유를 표방했지만, 여기선 별다른 신뢰가 창출되지 않습니다. 에어비앤비는 별점으로 남의 집에서 자는 위험한 일을 하게 했습니다. 반면 사무실 임대는 애초에 큰 리스크가 없습니다. 제가 지구 반대편 상파울루에 가서 사무실을 구한다 해도 별로 위험한 일이 아닙니다. 스타벅스를 가도 되고요. 이렇게 신뢰가 이미 형성된 시장이다 보니 위워크는 사실상 부동산 임대업자가 됐습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 윈

신뢰가 본질이란 걸 꿰뚫은 게 마윈의 알리바바입니다. 그저 빨리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서 대륙을 석권한 줄 알지만, 그는 '과연 입금했을 때 물건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해결했습니다. 그 옛날에 넓고 넓은 대륙에서 주문한 물건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한 건 당연하니까요. 마윈은 결제한 돈을 알리바바가 맡아두고, 구매자가 확인하면 판매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맞습니다, 에스크로 시스템입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이게 오늘날 알리페이의 출발입니다. 중요한 건 웹사이트가 아니라 신뢰 시스템인 거죠.



국가·대기업·매스미디어·전문가의 위기


변호사협회와 갈등을 벌이고 있는 로톡. 직역단체가 독점하던 업무를 플랫폼이 대체하며 생긴 일이다.

'택시 면허'와 타다와 최근의 로톡 논란은 이런 흐름에서 이어집니다. 국가가 법률로 독점하던 '신뢰 자산'이 플랫폼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길에서 마음 놓고 탈 수 있는 차를 국가가 '택시 면허'로 보증했습니다. 이제는 택시 면허보다 별점을 더 믿고 차를 타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건 단지 스마트폰이 생겨서가 아닙니다. 글로벌 PR기업인 에델만 신뢰지표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부 관계자보다 페북 친구를 2배 더 믿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믿음이 점차 나랑 비슷한 사람에게 옮겨가고 있고, 플랫폼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국가나 대기업 브랜드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해온 매스 미디어의 고민도 여기서 나옵니다. 이전에는 매스 미디어가 전문성과 사실에 대한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신문에 나와야 전문가고 팩트였죠. 지금은 소셜미디어에서 인정받고,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를 모으며 영향력을 쌓습니다.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은 크지만,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유니콘은 훨씬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들이 평가받는 가치만큼 국가와 대기업의 기득권은 줄어듭니다. 17세기에 스코틀랜드 금세공업자들이 금 보관증을 화폐로 만들어 왕실의 시뇨리지(주조차익)를 잠식해갔습니다. 왕의 도장으로만 탄생하던 화폐를 금 보관증이 대신했으니까요. 훗날 정부가 이걸 깨닫고 규제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꼭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이 흐름을 알아채 신뢰를 쌓은 '신뢰 부자'도 더 많아질 겁니다. 새로 문 연 별점 5점짜리 맛집이 100년 노포를 이기는 게 현실입니다. IT유튜버 한 명이 전문 매체보다 큰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갈수록 평판이나 소셜미디어 계정의 신뢰성은 그 사람의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신뢰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보다 냉정합니다. 유명 인플루언서도 뒷광고 한 번에 무너집니다. 광고비를 받고 신뢰를 팔았으니까요.



레이첼 보츠먼이 쓴 <신뢰 이동>은 이런 변화를 잘 담은 책입니다. 유니콘은 흔하고 데카콘(시가총액 10조원 스타트업)이 흔해지는 21세기 플랫폼 경제를 이해하는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번 읽고 포스팅도 남겼지만, 여전히 느끼는 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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