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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X Feb 03. 2023

그만두지 않을, 그리고 미워하지 않을 결심


외과 레지던트 2년 차 여름. 대장항문외과 파트를 돌 때였다. 내 담당은 교수님은 아주 깐깐하고 주치의를 힘들게 하기로 유명했다. 첫날 첫 환자 발표부터 일이 터졌다. 영어 약자로 되어 있는 병명이 있었는데 그걸 풀어서 이야기해보라는 질문에 아무 대답을 못 했다. 엄청 혼이 났고 덩달아 펠로우 선생님도 혼이 났다. 


병원이나 군대나 외부에서 주어지는 스트레스가 커지면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 펠로우 선생님은 회진 전부터 “이거 이전에 돌았던 사람한테 인계 안 받았어요?” “이거도 모르면 어떡해요?”라고 하면서 기선제압을 하더니, 첫 회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나를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 날카롭고 짜증 섞인 말투와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안 그래도 힘든데 니가 똑바로 안 하니까 나까지 힘들어지잖아!’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삼일 째. 오후 회진 전 마지막으로 환자들의 검사 결과들을 업데이트하고 펠로우 선생님과 잠시 환자들을 리뷰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일이 터졌다.


“이 환자 영상 판독 나왔어요?”

“아직 안 나왔습니다”

“하아... (깊은 한숨) 판독 나왔네. 이런 거 즉각 즉각 확인 안 하고 뭐해요?”

“아… 그게… 마지막으로 20분 전에 확인했을 때는 안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면 계속 확인해야지. 이렇게 빠트리면 어떡해?“


원래 같으면 “네 죄송합니다” 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때는 나도 아주 날이 서 있던 상태라 바로 받아쳤다.


“선생님.. 근데 저 새벽 6시에 나와서 지금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고 있고, 회진 전에 마무리해야 할 것들 계속 쉬지 않고 하고 있는데… 제가 로보트도 아니고 어떻게 검사 결과를 계속 확인합니까?”


병원도 군대처럼 위계질서라는 게 있어서 아래 연차 이렇게 말대답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너무나 몸과 마음이 지쳐서 병원을 그만둘 생각까지 할 정도였으니 겁나거나 아쉬울 게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대답을 한 뒤 펠로우 선생님과의 사이는 극으로 치달았다. 회진 때나 수술방에서나 카톡으로 나누는 대화에서 칼바람이 불었다.


그러고 며칠 뒤, 부모님께 병원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외과는 나와 너무 안 맞는 것 같다고, 더 이상 하다가는 몸과 마음이 너무 상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그러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허락도 받았고 내 마음도 정리됐고 이제 그만 둘 일만 남은 상태. 우연히 병동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쳤다. 


한 분은 몇 달 전 중환자 근무할 때 내 담당 환자였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돌아가시지 않을까 했던 분이었다. 그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내 손을 꽉 잡아주는 할머니와 감사했다고 말해주시는 보호자 분을 보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그래. 나 이런 거 하고 싶어서 외과 했었지. 나랑 잘 맞지는 않지만 참 멋진 과구나….’


돌아서서 그다음 병실에 갔는데 거기서 또 한 분을 만났다. 이식수술을 하고 상태가 무척이나 안 좋아서 걱정했던 분이었는데… 어느새 6개월이 지나고 상태도 많이 좋아져서 장루복원술을 받으러 오셨다고 했다. 주치의 때 마음을 많이 썼던 환자라 정말 반가웠다. 


인사를 나누고 병실에서 나오는 데 또 다른 환자와 마주쳤다. 1년 차 때 담당했던 분인데 불안장애와 조현병 초기증상이 있어 손이 많이 갔었다. 한 번씩 증상이 심해지면 주체가 안 됐다. 간호사가 “선생님 환자 또 불안해해요. 병원 나가려고 해요” 그러면 뛰어가서 환자 손잡아주고 안심시켜주기를 수없이 했다. 오랜만에 나를 보고는 꽉 안아 주시고 음료수를 한 잔 뽑아주셨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하늘의 장난 같았다. 그리고 이 세 명의 환자를 만나면서 그만두려고 했던 내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고, 그 상태로 수술방 어시스트를 들어갔다. 그렇게 늘 똑같은 수술의 보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으로 기도가 터져 나왔다. 신음 같은 기도였다.


‘당신은 지금 제가 어떤 마음인지 아시죠? 이 일이 저한테 얼마나 힘든지 아시죠? 그래도 해볼게요. 다시 한번 해볼게요. 제 능력으로는 할 수 없으니까 이걸 해낼 힘을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며 가슴으로 한바탕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 상황에서 펠로우는 “썩션 좀 제대로 해요” “아 손 치워요. 하나도 안보이자나” 그러면서 나를 계속 갈궜다. 기도가 다시 이어졌다. ‘근데 저 아름다운 새끼는 어떻게 하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소설 ‘침묵’을 읽다가 마음에 담아 뒀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나를 밟아라. 나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큰 스케일로 사랑하시는지 이렇게 잘 표현한 구절이 있을까. 다시 그 구절을 생각하면서 내 상황에 적용해 봤다. ‘저를 욕하세요. 욕하는 선생님의 입이 아프겠죠. 그 아픔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을게요.‘


마음이 누그러지니 펠로우 선생님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레지던트까지 마치고 우리 병원으로 넘어와서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거고…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차별도 당하고 무시도 당했겠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은연중에 나도 선생님을 무시하지는 않았을까? 내 행동을 보면서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앞으로는 나라도 선생님을 존중해 드리자’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후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단지 수술방에서 그런 생각만 했을 뿐인데 펠로우 선생님이 그런 변화를 느끼셨던 건지 뭔지 둘의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날 회진이 끝나고 처음으로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고, 다음 날부터는 말을 부드럽게 하기 시작하더니, 이틀 뒤에는 주말인데 일찍 나와서 드레싱 하느라 고생했다며 격려를 해주셨다. 이게 참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도 관계가 좋아지니 마음도 좋아져서 펠로우 선생님 지시에 잘 따르고, 회진 돌 때나 과에서 모임이 있을 때 선생님을 추켜세워 줬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한때는 꼴 보기도 싫었던 그 선생님과 헤어지는 게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외과가 하기 싫어질 때, 누군가 한없이 미워지고 들이박고 싶을 때 이때를 기억한다. 결국, 내게 달린 것 같다. 내 부족함을 알고 그분께 도움을 구할 만큼, 그리고 그 누가와도 존중할 만큼 겸손할 수만 있다면 어딜 가도 걱정이 없겠다.


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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