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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로봇청소기 어떻게 화장실 피해갈까?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박한 기술사전 (3)

by 김문기

퇴근 후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반겨주는 가전제품은 이제 TV나 냉장고가 아닌 로봇청소기다. 맞벌이 가구나 1인 가구 사이에서 '가전 이모님'이라 불리며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은 이 작은 로봇은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거실 구석구석을 누비며 먼지를 빨아들인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로봇이 가구에 무모하게 부딪히지 않고, 낭떠러지 같은 화장실 문턱이나 현관문 앞에서 귀신같이 멈춰 선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조종하는 것도 아닌데 로봇은 어떻게 우리 집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벽에 부딪히면 방향을 트는 과거의 무작위 주행 방식과 달리, 2026년형 최신 로봇청소기는 스스로 지도를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 과정은 테슬라 같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복잡한 도로를 달리는 원리와 궤를 같이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슬램) 기술이라 부른다.


saros-z70section-16_1.jpg [사진=로보락]


로봇청소기의 '눈' 역할을 하는 핵심 장치는 기기 상단에서 쉴 새 없이 회전하는 라이다(LiDAR) 센서다. 라이다는 초당 수천 번의 레이저를 사방으로 발사해 사물에 맞고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거리를 센티미터(cm) 단위로 계산해 낸다.


여기에 빛의 비행시간을 측정하는 ToF(Time of Flight) 센서와 고해상도 AI 비전 카메라가 결합되어 사물의 입체감과 정체를 파악한다.


단순히 벽이 있다는 사실을 넘어, 앞에 놓인 것이 넘어가야 할 매트인지, 아니면 감기면 곤란한 전선이나 반려동물의 배변인지를 0.1초 만에 판단하는 지능을 갖추게 된 것이다.

fullview (4).jpeg 20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암참) 연례행사에서 삼성전자 직원이 참석자들에게 2026년형 '비스포크 AI 스팀'의 특장점을 소개한 모습

현재 글로벌 로봇청소기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기술 경연장이 되어 있다.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중국의 로보락(Roborock)은 소프트웨어 최적화 능력을 앞세워 "로보락이 그린 지도는 실제 도면보다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드리미(Dreame)와 에코백스(Ecovacs)는 하드웨어의 한계에 도전 중이다. 구석진 곳을 청소하기 위해 걸레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익스텐딩 암 기술이나,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에서 공개된 계단을 오르내리는 로봇 기술 등은 가전의 범주를 넘어 로보틱스 그 자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맞서는 국내 기업들의 전략도 매섭다. 삼성전자는 2026년형 '비스포크 AI 스팀'에 퀄컴의 차세대 프로세서 '드래곤윙'을 탑재하며 연산 능력을 극대화했다. 단순한 청소를 넘어 집안 가전 전체를 연결하는 보안 플랫폼 '녹스(Knox)'를 통해 중국산 제품의 고질적 약점인 '사생활 유출' 우려를 공략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을 기치로 내걸고 물걸레 고온 스팀 세척부터 건조까지 완벽히 자동화한 올인원 스테이션을 선보이며 프리미엄 시장을 수성하고 있다.


이밖에 앵커(Anker)의 가전 브랜드 유피(Eufy) 또한 뛰어난 가성비와 안정적인 앱 연동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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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쓸신기' 토크 어바웃


산업적 관점에서 로봇청소기는 자율주행 기술의 가장 거대한 '베타 테스트장'이다. 도로 위 자율주행차는 사고 시 생명과 직결되기에 법적 규제가 매우 까다롭지만, 거실은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의자 다리, 전선, 반려동물 등 변수가 무궁무진한 공간이다.


제조사들이 거실 바닥에서 쌓은 수천만 가구의 데이터와 SLAM 알고리즘은 곧바로 실외 배송 로봇이나 물류센터용 로봇으로 전이될 수 있는 핵심이 된다.


결과적으로 거실 바닥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기업들의 전쟁은 단순히 누가 먼지를 더 잘 빨아들이느냐의 싸움이 아니다. 이는 미래 인구 감소 시대에 인간 대신 장을 보고 아픈 가족을 돌봐줄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를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를 결정하는 전초전이다.


가전 반도체와 배터리, 그리고 정밀한 주행 알고리즘이 결합된 로봇청소기는 우리가 미래 로봇 집사를 만나기 위해 거쳐야 할 가장 친숙한 입문서인 셈이다.


▶ 알쓸신기 키워드 번역기


·SLAM (슬램): "여기가 어디지?"라는 물음과 "지도를 그리자!"라는 행동을 동시에 하는 기술이다. 안대를 쓰고 낯선 방에 들어가 손으로 벽을 짚어가며 머릿속으로 방 구조를 그리는 과정과 비슷하다.

·라이다 (LiDAR): 레이저를 쏴서 거리와 모양을 알아내는 센서다. 박쥐가 초음파를 쏴서 장애물을 피하는 것의 '빛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ToF (비행시간 거리 측정): 빛이 나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재서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사물의 3차원 입체 정보를 순식간에 읽어내는 로봇의 시력이다.

·AI 비전: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인공지능이 분석해 사물이 무엇인지 맞히는 기술이다. "저건 전선이니까 감기지 않게 피해가야 해!"라고 판단하는 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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