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엔 내가 좋아하는 '걷기 운동'을 했다. 인이가 좋아하는 건 '뛰기 운동'이었다. 올여름은 끝장나게 더웠다. 더워서 그런 건지, 더워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매미가 우리의 낮을 장악 했다. 아침, 저녁 바람이 선선해졌다. 가을이 왔다. 계절이 바뀔 때만 느끼는 특유의 들뜸이 찾아오면 못 말리게 계속 밖에 나가 있고 싶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매일 세 시간씩 걸었다. 인이가 걷는 것보다 뛰는 걸 더 잘한다는 건 사귀고 나서야 알았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같은 책의 제목이 떠오른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서점 여행 에세이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단박에 집어 들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네이밍을 잘하는 사람과 네이밍을 못하는 사람. 이때까지 나는 '그래서 네가 말하는 사랑이 뭔데?'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나에게 네이밍을 잘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사랑은 요컨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것이다.
집 근처에 운동하기 좋은 산책로가 있는 양재천이 한강까지 이어져 있다. 한창 다이어트 중이던 나는 매일 걸었다. '걷기 운동'을 좋아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헬스장은 근력을 키울 수 있어 좋지만 운동 시간을 스스로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야외에서 걷거나 뛰면 반드시 그 거리는 다시 돌아와야 했다. 트레이너가 없어도 저절로 강제력이 부여된다. 돈이 들지 않고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인이와 나는 동네 휴대폰 가게 사장님이 제안한 3:3 미팅을 통해 만났는데 그에게 운동을 하자고 처음 제안한 건 나였다. 인이의 집은 우리 집 15분 거리에 있었다.때때로 러닝 동호회나 자전거 동호회 무리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같이 걸어줄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좋아질 사람이랑 운동을 하는 일은 살면서 없었다. 좋아져서 운동을 다니는 경우는 있었다. 함께 잔다는 것은 맨얼굴을 보여줄 만큼 친밀해지는 절대 요소니까. 뛰고 나서 열이 오른 불긋한 맨얼굴, 땀 맺힌 이마에 멋대로 들러붙은 앞머리와 무표정인걸 느낄 만큼 무표정이 되는 체력의 한계를 좋아질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인이는 그렇게 '좋아질 사람'에서 애써 부정당하고 있었다.
키가 커서 성큼성큼 걷는 인이는 무릎을 반동시켜 조금 리드미컬하게 걸었다. 되게 올곧고 클래식한 분위기의 사람인데 리듬감 있게 걸어서 좀 특이한데? 했다. (물론 이 무릎 굽힘이 걸음에 무리가 간다는 걸 알고 열심히 교정해줬지만) 가끔은 뛰기도 했는데 뛰기 시작하면 인이 보폭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내가 먼저 뛰기 시작하고 한참 지나서 그가 나를 따라잡듯 뛰었다. 어느새 나를 앞질러간 그는 점점 느려지는 내 발소리에 달리기를 멈췄다. '잘 뛰는데?' 하고 인이가 뒤돌아서 웃으면 '아냐. 힘들었어!'하고 따라 웃었다. 묶은 머리가 헝클어지고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정말 걷기만 했다. 얼마나 열심히 걷기만 했냐면 나는 5킬로, 그는 3킬로 정도 체중이 줄었다. 한 달째 금요일은 약속했던 '보상 데이'였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코엑스에서 영화를 보고 곱창을 먹기로 했다. 좀 전형적인 데이트 같은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제일 평범한 일이었다. 뭘 생각해도 더 데이트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데이트가 맞았다.누군가가 좋아질 때면 왜아니라는 생각부터 하는 걸까. 누군가를 마음에 들여놓는 일은 그 사람의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것과 같다. 그 동네에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일. 지나다니는 길가도, 때마다 들른 단골가게도, 오며 가며 알게 된 이웃들도 어느새 정이 들고 만다. 정이 든다는 것이 얼마나 먹먹한 일인지 헤어져보면 알 수 있다. 그게 싫어서 자꾸만 아니라는 마음을 먹는다.
"여자랑 단둘이 영화 보고 이렇게 밥을 먹는 게 3년 만에 처음인 거 같아."
-거짓말
"이전 연애가 좀 길었어. 다음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그 연애를 잊게 하는 징검다리가 되고 끝날까봐 한동안 연애를 못했어."
정리하자면 인이는 나를 만나기 전 한 사람과 7년의 연애를 했다. 7년의 연애를 끝내고는 3년 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다. 여자와 단둘이 영화를 보고 곱창에 소주를 마시는 게 3년 만의 오늘이 처음이다. 그가 말해준 10년의 세월보다 내가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보다 나를 '여자'라고 지칭한 것이 내내 신경 쓰였다. 그제야 우리가 걷는 내내 연애와 관련된 단 한마디의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서로의 연애사를 물어보거나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좋아질 사람'에서 배제되고 '친구'로 분류된 그를 의식한 내 방어기제의 본능이었나.
우리는 그 밤에 귀여운 맥주집에서 바삭한 감자튀김을 먹으며 2차를 하고 집 앞 편의점 앞에서 수다를 떨다 4시가 다 되서야 집에 들어갔다. 동트기 직전이라 공기가 푸르스름했다.
어쨌든 '여자'라고 불려진 그날 이후 우리의 걷기에는 어딘지 모를 '썸'의 기운이 흘렸다. 우리가 걷는 길에는 자전거길과 걷는 길이 나뉘어 있는데 이따금씩 자전거길을 건너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자전거가 제법 쌩쌩 달려서 좌우를 잘 살펴야 하는데 그날 이후부터 인이는 건널목에서 자꾸만 손을 내밀었다. 허리춤 아래 등 뒤로 뻗은 그의 손을 열심히 모른 척했다. 이거 그린라이트야?, 자꾸만 묻고 싶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좋아진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장 잘한 일은 그에게 같이 걷자고 말했던 일이다. 이 사람의 태는 걷는 동안 알게 되었다. 남자답고 성실하고 반듯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걷는 내내 서로를 열심히 살펴준다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었다. 이따금씩 체력적 한계가 올 때마다 힘든 일은 크게 소리를 내지르면 한결 나아진다는 이상한 철학이 있는 나는 '아후! 너무 힘드네!' 하고 외쳤다. 그럴 때마다 그는 조금만 더 힘내자, 라던가 이렇게 씩씩하게 잘 걷다니 정말 멋져, 라던가 힘든데도 꾸준히 운동하는 거 대견하다,라고 했다. 누구와 걷는다는 것이 처음으로 너무 좋았다.
그러다 자전거길 건널목에 서면 어김없이 양옆을 살피며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 말하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