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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쏠라미 Dec 20. 2021

동탄 알콜녀입니다.

엘리베이터 소독하는 여자


  나는 항상 99.9%의 무수 알코올에 정제수를 7:3으로 부어서 알코올 70%로 집안 소독을 한다.

아이들의 손이 닿는 구석구석을.

4살 터울로 남매를 출산하고 둘째가 생후 20일이 되었을 때 감기에 걸렸다.

모유수유도 했고, 큰 아이와 분리도 되어있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신생아가 감기에 걸린단 말인가.


그때부터였다.

나의 알코올 사랑은.


손소독제, 모기기피제, 캔들, 방향제 등등을 만드는 게 나 홀로 취미였던 터라 무수 알코올은 집에 늘 가득 구비되어있었다.

 때문에 정제수만 섞어서 스프레이병에 담아 수시로 집안 곳곳을 뿌리며 닦곤 했다.


영유아기의 아이들은 구내염, 수족구와 같은 전염성 질병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곳을 주 1회씩 생각날 때마다 뿌리고 닦으며 2014년도부터 자체방역활동을 해온 나였다.


  그러던 2020년 1월 초, 우한 폐렴 뉴스를 접했다.

동탄 한림성심병원을 방문한 여성 환자가 우한 폐렴 확진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남편에게 웨이신을 보냈다.

거긴 괜찮냐고.

  중국 출장을 가있던 남편은 본인이 머무는 지역은 우한이랑 아주 멀어서 그쪽 지역 사람들은 1도 신경 안 쓰니 걱정하지 말라는 거였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남편이 귀국한 1월 19일 이후 중국뿐만 아니라 국내 상황도 악화되었다.


  그 당시 확진자들이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와서 기사에는 온통 인천공항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불행 중 다행인지 우리 남편은 김포공항으로 귀국하였고 나는 자차로 공항에 가서 남편을 픽업해서 집으로 데려왔었다.

하지만 '중국공항'에서 왔기 때문에 괜히 지역사회에서 확진자로 주홍글씨가 새겨져서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봐 겁이 났기 때문에 자가격리를 시작하였다.

팬데믹이라는 말도, 사회적 거리두기, 자발적 격리에 대한 지침도 없던  코로나19의 서막이었다.




  우리의 자발적 2주 격리가 시작되었다.

2주 격리 동안 국내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 갔다.

뉴스 보기가 겁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몇 명이 늘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평상시 중국 출장이 잦았던 남편 덕에 아는 지인들에게서 계속 걱정과 안부 연락을 받아야 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인 이슈로 번져 나감에 따라 늘 이용하던 쓱 배송 또한 3일씩 지연되고 있을 무렵,

아이들과 집 앞 슈퍼에 두부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엘베의 문이 닫히자 엘베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기대고, 몸을 비비 꼬고 난리가 났다.

순간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다.

 등잔 밑에 어둡다는 말이 딱이었다.


 주 1회 또는 보름에 한 번 하던 집안 소독을 2020년 1월 19일, 남편의 귀국 뒤로부터는 매일 했었다.

현관문 도어록, 방문 손잡이, 월패드, 전화기, 리모컨, 각 방 전등 스위치, 냉장고 손잡이... 등등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 손이 닿을만한 모든 곳을.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들의 손이 닿는 그곳들을 보는 순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엘리베이터 소독까지 시작했다.

900세대가 넘는 우리 아파트에서 우리 동 엘리베이터만 소독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나 싶어서 나는 아파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나는 우리 동 엘베를 소독하니 다른 동 주민들도 다 함께 해보자는 글이었다. 

아주 단순한 짧은 몇 줄.


그런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칭찬 댓글을 달아주셨고, 저도 알코올 주문하러 갑니다~라며 동참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뿌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뉴스에 한컷 넣으려고 하는데 인터뷰 괜찮겠냐며 이웃주민에게 연락이 왔다.

선한 영향력.

별것 아닌 계기로 시작했지만 거의 재난과 같았던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그런데 인터넷 뉴스 기사 한 토막이었는데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자 방송사 작가분들한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민망하면서도 사실 좋았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뉴스에 나와보겠나 싶어서 요청 들어오는 모든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다가 생생정보까지 출연했다.

심지어 그 방송을 본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십여 년 만에 연락도 받았다. 

그 방송 진짜 너 맞냐며. (ㅋㅋㅋ)


그리고 인터넷 기사도 몇 개 발행되었는데, 그중에는 악플도 달렸다.

엘베 소독할 시간에 니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아. 어이가 없네?

정말 신박한 경험이었다. 


나는 용띠다.

별자리도 사자자리다.

심지어 친정엄마의 꿈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나왔다.

용맹하고 리더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나의 사주팔자인가 보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왜냐하면 나는... 바쁜 남편 대신 나의 커리어를 모두 내려놓고, 혼자 살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타지 살이란 쉽지 않았다.

나는 많이 주눅 들었고, 바보 같아졌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사는 나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선물해 주고,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신 많은 방송사, 언론사 관계자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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