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조
제목 : 네 눈동자 안의 지옥 - 캐서린 조
독서일 : 2021년 7월
장르 : 에세이
어느 날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겨서 독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완독은 필수이며, 완독 후 모임 직전에 각자의 발제문 한 가지를 사회자 분에게 카톡메시지로 보내기로 하였는데, 카톡창을 열어놓고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첫 독서모임에서 첫 발제문이라.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갑자기 학창시절에 한 번도 넘어본 적 없는 뜀틀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의 이런 긴 정적을 눈치 챈 사회자님이 먼저 카톡을 보내셨다.
사회자님의 배려로 나는 책을 읽다가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내용을 보냈다.
역시 사회자님도 공감했던 부분이었던 듯, 아마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여자들이라면 극한 공감을 이끌어 냈을 부분일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을 읽기 시작했을 때, 82년생 김지영의 해외 버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작가 캐서린 조가 정신을 차렸을 때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 또한 산후우울증을 겪어 본 아이 엄마로써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길래 정신병원에 갇혔을까 싶어서 굉장히 파격적이었으며, 연대감에 호기심까지 자극되어 빠르게 집중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남들 다 하나는 육아인데 의연하게 넘겨도 될 부분들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것 아닌가? 하며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캐서린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한국과 미국의 문화 그 중간에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생각하며, 유년 시절 아버지가 남동생을 폭행했던 것과 어머니의 집착, 전 남친 드루의 데이트폭력, 드루 엄마의 가스라이팅, 결혼 후 시부모의 집요한 참견, 강요에 캐서린은 어쩌면 곪을데로 곪아 결국 터져버린 것 같아 안쓰러웠고 가슴이 먹먹했다.
오죽하면 아이의 기억을 잊어버렸을까.
아이의 눈에서 악마의 눈동자를 보았던 캐서린의 마음은 어땠을지 차마 떠올리기 힘들다.
출산을 하고 "산모와 아이는요?"라고 물어보면,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자연분만을 하면 회음부 절개로 산모는 앉지를 못해 도넛쿠션을 깔고 앉아 밥을 먹고 어기적 어기적 걷는다.
제왕절개는 일주일을 누워있어야하는데, 며칠은 소변줄을 꽂고, 며칠은 드레싱을 받고, 그 이후에는 그 속이 간지러워서 긁다가 고통스러워 하기도 해야한다.
끝이 아니다. 오로가 다 빠질 때까지 기저귀를 차고있어야 하고, 훗배앓이를 할 때면 마치 다시 진통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한다.
또한, 출산 후 산모의 일과는 수유와 수유하지 않는 시간으로 구분된다.
아이가 많이 빨을 수록 모유 양이 늘어난다고 하니, 아이가 충분히 배부를 수 있도록 한번 수유할 때마다 1시간 이상씩 물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신생아는 3시간에 한 번씩 수유해야 하니, 물리고 있는 시간 1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1~2시간마다 가슴팍을 열고 도넛쿠션에 앉아 아이를 안고 젖을 물려야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캐서린은 남편과 상의한다.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하지만 정작 지인이 "산모와 아이는 괜찮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캐서린과 남편 역시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건강해요" 라고 대답했다.
웃기고도 슬픈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경험을 했다며.
결국 캐서린 조는 퇴원을 했고, 약물치료를 마쳤다.
그 과정까지도 제임스는 캐서린을 수용하고 지지해주었고, 캐서린은 그런 그의 사랑을 받으며 쾌차했다.
사실 산후우울증을 앓는 시기가 지났다고 해서 육아가 끝이 아니다.
보육의 시기가 끝나면 교육의 시기가 온다.
정보의 홍수가 아니라 정보의 폭풍우&해일 속에서 우리는 여러차례 산을 넘어야 할 것이다.
캐서린 조가 무사하길 빈다.
1) 기억에 남는 구절
-나는 청각장애인의 집에 있는 시각장애인의 딸이었다.
-남편은 진심이 아니실거라고 위로했고, 시어른들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자신들의 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듣지않는 상대에게 말하는 것에 익숙했다. 말은 그저 소리일 뿐 신중하게 선택되지 않았다.
2) 발제문
-전통을 따르지 않으면 악령이 따라오는 걸까?
캐서린은 한국에는 삼칠일이라는게 있다며 설명한다. 산모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하고 삼칠일동안 손님을 삼가해야 하고,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집앞에 짚을 엮은 줄을 걸어 귀신을 쫓아야 한다 등등.
그런데 본인은 그런 걸 다 무시했기에 아이가 백일을 맞을 무렵 악령에 씌였다고 표현한다.
난 그저 그 옛날, 아이가 백일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어서 그런 미신들이 생겨났다는 걸 안다. 다만 의료기술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그 미신이 전통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엄마의 죄책감을 덜기 위함이 아닐까 란 생각도 해봤다.
의료기술이 발달했어도 신생아들은 생 후 20일만에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기저귀 발진으로 엉덩이 크림을 달고 살기도 하며, 때때로 초록색 변을 봐서 엄마를 놀래키기도 하니까.
엄마의 죄책감을 덜기위한 처방 정도로 생각해본다.
-패턴과 연관성(337p)
캐서린이 정신병원에 가기까지 일련의 사건들이 패턴을 보인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캐서린은 아프지 않았을까? 그 패턴들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
어려워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고, 발표하기 너무 어려웠다. ㅎㅎㅎ
다른 멤버들도 이야기가 없어서 우리는 이 발제문을 스킵했다. ㅜㅜㅜ
-사랑은 만들어 질까?
캐서린의 할머니는 사랑을 믿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캐서린은 사랑을 선택했고 드루를 만났었고, 제임스와 결혼을 했다.
나는 사랑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만들어 지는 것)
내 마음 편하고자 마음먹으면 사랑도 만들 수 있다. 밉게 보려면 한없이 밉고, 안쓰럽거나 애정의 눈길로 보면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제임스가 보여준 지지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인데, 제임스 역시 그렇게 원만한 유년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여유와 이해심이 생긴건지 궁금하다.
제임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눠보고 싶었다.
-육아하며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한 일은?
나는 중, 고등학생 시절 자발적으로 일기를 썼다. 스무살이 되었을 때도 12월이 되면 내 년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에 신중을 기하곤 했다.
말하는게 서툴고, 머릿속에서 생각도 뒤죽박죽인데다가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쉽지 않은 내 성격탓에 다이어리를 쓰며 슬픈 감정을 해소하고, 기쁜 감정을 나누곤 했는데 이게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첫 번째 한 일은, 일기 쓰기. 시간 될때마다 기록하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며 주변을,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 한 일은, 성인상담.
일찍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탓에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긴 쉽지 않았다. 혼자 육아를 했고, 시집살이를 했고, 둘 째 아이를 출산했을 때는 타지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낯선 곳에 갇혀 정말 육아만 했다.
그리고 2020년. 둘째 아이가 일곱살이 되었을 때 나는 상담센터에 가서 성인상담을 받았다.
정말 한 시간동안 이야기만 나누는 시간이었을 뿐인데, 그 시간을 통해 내 밑마음 알 수 있었고, 나 스스로도 내 마음의 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는 연습이 되었으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여유를 갖을 수 있는 훈련이 되었다. 주변에 성인상담을 많이 권하고싶다. 어려워마세요. 챙피해 하지 마세요.
우리 독서모임은 대부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거나, 중 고등학생인 듯 하다.
그래서 2~30대의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해 했다.
나 역시 둘째가 초등학생이라서 다행히 먼 시각으로 이 책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육아중이었다면 이 책이 주는 여운에 허우적댔을 것 같다.
나라는 존재는 엄마가 아니다.
엄마가 됨으로써 겪는 어려움들을 정신병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알아가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남편이. 가족이. 나중에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이 사회가.. 함께 해주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