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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ow Jan 16. 2016

[미얀마 여행] DAY 00. 여행 전.

어쩌다보니 정치 이야기

여행 중에 쓰고 있습니다. 두서도 없고 인터넷이 느려 사진도 없지만, 일단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소한 감상을 위주로 하고, 여행 정보는 간략하게라도 나중에 따로 정리해볼까 하네요.




처음엔 친구와 함께 라오스나 베트남에 가려고 했었다.


친구는 걸어서 세계 속에서 라오스를 보고, 나는 후배가 페이스북에 올린 베트남 싸파의 사진을 보고 꽂혔다. 거기에 올 겨울이 그렇게 춥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문득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들어 더더욱 적합하다. 사실 라오스든 베트남이든 크게 중요하진 않았다. 이제 둘 다 서른인데 우리가 또 언제 같이 해외에 나가겠니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불발. 친구 휴가가 확정될 때까지 표도 안 끊고 기다렸는데. 출발은 이미 한 달 전이다. 늘 이렇게 닥쳐서 표를 사게 되는구나.


그러면 나는 어디를 가면 좋을까. 애초에 후배가 페이스북에 올린 베트남의 싸파 풍경을 보고 거길 가 보고 싶었으나, 베트남은 5년 전에 가보긴 한 곳이다. 라오스는 요즘 너무 핫하다.


기왕 혼자 가게 된 것, 남들이 잘 안 갈 곳에 가고 싶었다. "같이 여기 가지."라고 하면 "어.. 거기는 왜 가?"라고 할 곳은 혼자 떠날 때 가야 하지 않겠나.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여행자가 너무 많지 않은 곳. 여전히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


그러자 의외로 간단하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곳이었던 미얀마로 행선지가 좁혀졌다.


하지만 한 달 전이라 표들이 많지 않다. 직항은 꿈도 못 꾸고 방콕에서 밤 새워 경유해 양곤에 들어가는 표가 50만원 정도. 양곤을 제외하면 가고 싶은 곳은 전부 저 북쪽에 있는데.


혹시나 하여 북부의 만달레이 in out으로 검색하니 38만원짜리 중국동방항공 표가 나온다. 웬열.

하지만 싼값의 대가는 인천에서 칭다오에 도착해 하루 자고, 내일 칭다오에서 쿤밍에 내렸다가 다시 만달레이로 들어가는 살벌한 여정. 짐은 내릴 때마다 다시 찾고 다시 표를 발권해야 한댄다. 이건 뭐 서울 메트로도 아니고. 어디 안양에 가도 두 번 환승은 안하는데.

그래도 어쩌겠나. 환승해서 다음날 도착하는 것은 다른 표도 마찬가지고, 양곤을 빼면 일정에도 여유가 있고, 무엇보다 현재의 최저가 인 것을. 다음엔 열심히 돈을 벌거나 아니면 제발 미리미리 발권하여 직항을 타야지.


"수지 여사 나라?"


집에 미얀마에 갔다 오겠다고 하니 엄마가 맨 처음 한 말이

다. 


내가 미얀마에 대해 알던 것도 딱 그 정도였다. 뉴스에 나오는 나라, 오랜 군부 독재, 민주화 시위 그리고 아웅산 수지.


몇 년 전 어디선가 뤽 베송이 'the Lady'라는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봤다. 거기에서 아웅산 수지를 연기한 양자경이 민주화 시위대에게 총을 겨누는 군인들에게 홀홀히 다가가 꽃을 건네는 한 장의 스틸컷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민주주의의 꽃, 미얀마의 어머니, 철의 난초로 불린다는 아웅산 수지. 그 때 잠시 미얀마와 아웅산 수지에게 관심이 생겨 자료도 찾아보고 다큐도 보고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미얀마에 가기로 결정한 뒤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NLD가 총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을 배출하게 되어 뉴스에서도 미얀마 이야기를 듣게 됐다.


미얀마 헌법에는 외국인을 배우자로 두었거나, 자식이나 그 배우자가 외국 국적을 가진 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한다. 군부가 수지를 겨냥해 만든 것이리라. 촘촘하고 꼼꼼하기도 하지. 그래서 수지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안타까운 뉴스.


그런데 그 뒤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수지 왈 누구를 대통령에 앉히건 모든 권한은 내가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이건 무슨 말인가 싶어 뜨악했다. 민주주의의 꽃이 이런 초법적 발상을. 이전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르지 않은가 싶어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또 공교롭게도 평소에 듣던 팟캐스트에서 미얀마 정치사와 아웅산 수지에 대해 다뤄줬다.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래서 또 고약한 성격이 발휘되어 여행 이야기는 뒷전으로 미루고 한참 그런 것들만 찾아봤다.


사실 미디어에서 보여주고, 내가 알고 있던 상당수는 아웅산 수지의 이미지였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수지는 신화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나보다. (영화에 나온다는 군인에게 꽃을 주는 장면도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거기에 그녀를 메시아로 여기는 기대까지 갖고 있겠지.


물론 정치인에게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능력이고, 자신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기대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미지는 결국 이미지일 뿐. 오히려 본질을 가려버리는 껍질이기도 하다. 이미지에 기인한 사람들의 기대는, 그의 진짜 모습과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너지기 쉽다. 우리나라에도 비근한 예가 있지 많지 않나. 연예인을 보듯 팬심으로 지지를 보내면 실망으로 돌아오기 쉽다.


어쨌든 아웅산 수지는 이제 어느 정도의 실질적 힘을 가진 정치인이 되었다. 신화 속에서 현실로 내려온 그녀가 미얀마 사람들을 배반하지 않기를.



어쩌다보니 정치 이야기만 실컷 들여다보다가


출발 1주일 전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여행에 도움이 될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시간도 모자랐지만, 다른 곳에 비해 정보가 많지도 않아 가이드북 외엔 대부분이 미지의 영역. 시간도 한정되어 있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정 배분은 하지도 못하고 '만달레이-바간-껄로 트레킹-인레 호수-만달레이' 순서만 정해 놓고, 첫 날 숙소만 예약하고 떠나게 됐다.


불안하긴 하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 좋을 것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신비의 나라, 은둔의 나라로 떠나는데

오히려 이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는 SCV처럼


갑니다, 미얀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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