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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날다 Mar 12. 2017

시간여행자들의 도시, 세고비아

시간과의 싸움이 강박이 된지 오래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고 달려온 삶은 어느 순간 가속도 밖에는 모르는 듯, 더 빨리 더 빨리 내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멈추기 위해서는 ‘충돌’ 할 수밖에 없다는 종국의 상황을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갖고 살게 되었다.

왜, 왜 그렇게 된 걸까? 시간의 유한성을 체득한 때문이고 그만큼 자유를 원했던 탓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계획한 일을 처리하자. 그 다음 시간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쓰기 위해, 조금 더 자유롭기 위해......’ 하지만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 순간 성실했고 대개는 틀림없이 일을 처리했지만 아직까지 나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짧은 쉼표, 역설적이게도 몸을 꼼짝할 수도 없는 좁은 이코노미 석에 앉아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다. 이탈하지 않기 위해 궤도 위를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공중부양을 해 버린 듯, 안간힘을 다해 놓지 않으려했던 그 무엇이 순간 모래처럼 흩뿌려져 사라지는 느낌.

지구 서쪽을 향한 비행이 앞으로만 내달리던 시간을 뒷걸음질 치게 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거스르면서 그토록 견고하게 나를 가두었던 시간의 법칙이 깨진 것이다. 불과 몇 시간이지만 과거로 되돌아가는 신기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의 이동이 선물한 예기치 않은 시간여행이라고나 할까! 어찌됐건 나는 이제부터 ‘시간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향하고 있는 스페인이야말로 시간여행을 위한 최고의 장소일 것이라 기대하기로 했다.        


도착한 첫 번째 시간여행지는 세고비아.

수도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 그 이름 세고비아가 유명한 기타 브랜드라는 점 때문에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기타의 발상지도 기타리스트 세고비아와도 그다지 관련이 없는 도시다. 세고비아에서 ‘세고’는 ‘승리’를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름의 의미는 대표유적 알  카사르의 예사롭지 않은 히스토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어디까지나 주관적 유추다).           

알 카사르는 성 또는 요새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한 말로 아랍인들이 두고 간 성채를 14~15세기 경 스페인이 요새화 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영어 Castle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알 카사르는 보통 명사로 스페인 전역에 다수 있고 그 중 세고비아 알카사르의 유명세가 남다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도 하고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성채가 세고비아 알카사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서 일반에 더 유명해 지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에게 알 카사르의 의미는 공주이야기에 등장하는 동화 속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하나의 독립국가를 이루기 위한 스페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가 물줄기를 크게 틀기 시작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레콩키스타는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 여왕이 결혼, 기독교 왕국을 하나로 통합한 이후, 1492년 드디어 완성을 보게 된다. 콜롬부스가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으로 신대륙을 발견한 해가 1492년이라는 점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 때부터 스페인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무적함대를 필두로 세계제국의 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역사의 태동지가 세고비아 알 카사르라고 할 수 있다. 레콩키스타 완성 18년 전, 고난을 겪던 왕녀 이사벨라가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으로 즉위한 곳이며 그 이사벨라가 스페인 통일을 위해 이웃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와 결혼한 곳도 이곳이기 때문이다.     

왕과 여왕의 역사가 있지만 스페인의 알 카사르는 유럽 여러 도시의 왕궁과 달리 투박하다.   물을 건너야 안으로 들어설 수 있고 가파른 암벽을 올라야 꼭대기에 당도할 수 있다. 밖에서는 도무지 내부를 짐작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인 것이다. 실제로 6백 년 전, 당시 스페인 내 최고 왕국이었다는 아라곤과 카스티야가 결합한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결혼식은 불과 30명 남짓 밖에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방에서 비밀스럽게 치러졌다고 한다. 이 날의 결혼식은 흡사 비밀결사대의 결성식 같지 않았을까? 영화 같은 상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비밀퇴로 같은 성채의 숨겨진 후면, 그 앞에 펼쳐진 뜰에 지난해 가을 떨어진 낙엽이 아직도 수북하다. 드러나지 않고 은둔한 채 서 있는 알 카사르가 오래 묵은 낙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림을 견딘 인고의 역사, 알 카사르에서의 시간은 여전히 그 때 그 시절, 중세와 같은 느낌으로 흐르고 있었다.        

로마가 없는 유럽은 없다. 세고비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 1세기 말 로마인들이 만든 거대한 수로교가 도시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길이 813m, 최고 높이 30m, 접착을 위해 그 어떤 재료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화강암만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아치 모양의 다리다. 특히 그 목적이 인근 산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물을 끌어오고 다시 흘려보내기 위한 위치 조절까지 그 정교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로마수로교 앞 인도 변에는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작은 동상이 서 있다. 스페인에서 로마의 건국 영웅을 만난다는 것, 이방인에겐 분명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니다. 동상이 서게 된 내막과 진의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세고비아 사람들에게 로마는 2천년 동안 자신들의 땅을 지켜온 수로교와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가늠해볼 뿐이다. 그 옛날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렀던 로마인들은 2천 년 후, 그들의 역사가 스페인의 이름으로 세계인들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아시아의 동쪽 끝 한국에서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까지, 8시간을 거슬러 간 첫 번째 시간여행지 세고비아.

안간힘을 다했던 어린 여왕의 시간에 잠시 머무르며 암흑의 시대, 중세를 느껴보기도 했고 로마제국이 남긴 기적 같은 유산 위에 올라 2천 년 전 사람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이처럼 큰 간극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니, 시간여행을 실감하기에 이보다 더 제격인 곳은 없을 성 싶다.

광장 카페에 앉아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이 곳 사람들이 음미하는 것은 어쩌면, 오래고 깊은 시간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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