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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기용 Dec 08. 2017

맨땅에 헤딩

자존감 수업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졸업식도 하지 않은채 싱가포르라는 땅으로 넘어왔다. 흔히들 말하는 한국이 헬조선이어서 한국을 떠난 것이 아니였다. 내 자신을 SWOT 분석 해보았을때 해외에 나가서 조금더 부딪치고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게 더 맞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꽤 괜찮은 기업들의 오퍼가 있었기 때문에 싱가포르에 간들 뭔들 못하겠어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는 그렇게 싱가포르에 가게 되었다.



취업된 상태로 싱가포르에 가는게 아닌, 맨땅에 헤딩이었기 때문에 나는 싱가포르에 가면서 이미 어느정도는 예상했다. "어느정돈 깨지고 힘들겠지" 라고.... 지난 9개월간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어느정돈 깨지겠지'가 아니라 '완전히, 완벽하게' 깨져버렸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싱가포르 입국 10일차에 첫 면접, 그렇게 처음 떨어졌다.

싱가포르 20일차에 두번째 면접, 역시나 떨어졌다.

싱가포르 40일차에 세번째 면접, 또 떨어졌다.

싱가포르 60일차에 네번째 면접, 아무렇지 않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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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9개월차까지 20번 가량의 면접을 보았고, 최종면접까지 간 경우도 5번 가량 하지만 최종 결과는 탈락. 이제 더이상 깨질 멘탈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정도 '깨질' 생각은 하고 왔기에, 20대에 깨지는것이 30대가 되어서 깨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을 하고 왔기에 깨질 준비는 되어있다 라고 나는 스스로 생각했지만 면접과정에서 나는 면접관의 말들과 행동들에 의해 처절하게 깨졌다.



- 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일하려고해요?

- 우리는 가르칠 사람을 채용하고 싶지 않아요. 가르쳐줄 시간 없어요.

- 너 이것도 할줄 모르니?

- 중국어도 할줄 모르면서 어떻게 싱가포르에서 일하려고 해요?

- 도전하는것도 좋지만 네 현실을 직시해.

- 당신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우린 조금더 경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요.

- 우리 너를 채용할 쿼터가 없어.


싱가포르 특성상 APAC을 담당하는 나라기때문에, 바로 실전에 투입될 사람을 원했고, 화교가 대부분인 나라기때문에 중국어는 기본으로 할줄 아는 나라였다.


싱가포르 비보시티

어찌보면 나는 싱가포르에 부족한 사람인게 맞는것 같았다. 내가 한국에서 창업을 한 경험이 있든, 광고에 대하여 꾸준히 서칭하며 광고의 모든것을 운영한 이력은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싱가포르 센토사




광고의 모든것을 운영했기에 싱가포르에 와서도 꾸준히 광고 서칭을 했는데 이 당시 가장 보기 싫었던 광고를 꼽으라면 '도쿄가스 - 엄마의 성원'편이었다.



광고의 카피 그대로, 매번 탈락하던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번이나 더 탈락해야하는 것인지, 이 세상에 나를 위한 회사가 있기는 한지 수도 없이 생각했다. 싱가포르에 올때 가졌던 패기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고, 오기만 남은 상태였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가장 보기 싫었던 광고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에서 가장 가기 싫었던 곳을 꼽으라면 '마리나베이'였다. 싱가포르에 관광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가는 곳이 바로 '마리나베이' 마리나베이 샌즈, 머라이언 동상, 높은 빌딩들로 근사한 야경이 완성되는 곳.... 하지만 나에게는 그곳에 갈때마다 드는 생각은 '왜 저 수많은 빌딩, 수많은 자리중 내자리는 없을까?' 였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자존감이란 것 조차 없어졌을때 나의 비자 기간(학생 비자로 있었습니다)이 만료되는 시점이 왔다. 그리고 다시 관광비자로 갱신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 다녀와야했고 그때가 추석즈음 이였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 갔다오면 주어질 관광비자가 내 인생 마지막 싱가포르의 3개월이라고 다짐했다.


싱가포르 보타닉가든


12개월 도전해도 안되면 안되는거라고 생각하기로 다짐했고 추석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가족이 너무 보고싶었지만 가족에게 나타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취업을 못했으니까’ 주변 사람에게 연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취업하지 못했으니까’


싱가포르 이스트코스트 파크


그렇게 한국에서의 ‘쉼’같지 않은 쉼을 하고 나는 싱가포르로 돌아가게 되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 난 한 기업의 2차 면접을 보게 되었고 그리고 최종면접까지 보고 내가 결국 가고 싶은 ‘디지털 마케팅’회사에서 Account Executive 로 일하게 되었다.


싱가포르 나이트 사파리

9개월 간 실은 오퍼를 준 회사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싶지 않거나 조건이 맞지 않아서 가진 않았었다. 어찌 되었든 결국 내가 ‘배우고 싶은 포지션’에서 일할 수 되어서 행복하다. 지난 9개월을 되돌아 보면 ‘9개월이 나의 인생에서 매우 도움이 될 시간이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맨땅에 헤딩했기에 더 많이 깨질 수 있었고 맨땅에 헤딩했기에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싱가포르 클락키


그동안 격려해주시고, 힘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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