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지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1999년 4월 5일
나무를 아끼고 잘 가꾸도록 권장을 위해 지정된 식목일의 이른 새벽
기약 없이
아니 정말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어색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않고
서둘러서 집을 공항으로 출발했다.
1997년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 속에서 공부를 위해 다른 나라
세계적으로 높은 물가의 스위스로 간다는 것은
특별히 가족들에게 무모한 도전으로 .
그래도 난 시작하고 싶었다.
가족들과 반복되는 힘든 감정의 소모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순하고 성실하게 감당했던 맏이라는 이름도 다 내려놓고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고자 고집을 부리며 출국을 강행했다.
그래서 결국
드디어 나는
식목일 새벽
내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겠다는 다짐 속에서
복잡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익숙한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멀어지다가
보고 싶지 않은 한국 땅을 떠났다.
비행기 기내의 갇힌 공간에서 내가 원하던 것이 이것이었을까?
끝없이 밀려드는 많은 염려와 걱정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잠깐 잠들었다가 낯선 공간을 확인하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면서
이제 정말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덤덤한 마음으로 무감각하게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낯설지만 익숙한 뾰족뾰족한 침엽수들이 갑자기 인사를 건넨다.
Do you love me?
Do you love me?
Do you love me?
두 유럽 미?
유럽에서 만나는 나무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유 럽
you love
당신의 사랑
그리고 봄.
나는 봄을 떠올리며
‘보다’라는 말의 명사형 '봄'으로 이어간다.
당신의 사랑을 봅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유럽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어느새 2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1999년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너무 막연한 미래로만 느껴졌던 2000년.
어느 새 20년이 훅 지나 버린 봄 날.
20년 후에 만나자 하고 헤어진 두 청년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가 O. 헨리의 ‘이십년 후에’를 떠올린다.
소설의 제목처럼,
이십년 후에 조우하게 된 ‘나’
여기는 유럽의 봄이다.
나에게 4월 5일은
당신의 사랑을 보는
유 럽 의 봄
나에게
매년 맞이하는 식목일은
매일 바라보는 나무는
늘
언제나
한결같은
유럽의 봄이다.
나에게
당신은
늘
언제나
유 럽 의 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