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1 오디션 준비 과정
더 잘하면 기쁜 일이고,
생각보다 아쉽다면 글로 남기기
더 재밌는 일이고
그 어떤 것도 나는 괜찮다.
25년 8월 1일.
대망의 첫 모의 오디션 날
연기 학원에 다닌 지 어느덧 11개월이 지났다.
용기를 내 1년에 두 번 정도 열리는 학원 모의 오디션에 참여했다. (원래 상반기에 도전했으나, 갑자기 들어온 회사 업무로 당일 취소 했었다)
지난 7월은 오디션을 위해 나의 이미지를 찾고, 그에 맞는 독백 대사를 고르고, 자유연기 독백을 체화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뷰티 업계에서 10년간 일했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이미지를 찾고, 스타일링하는 측면에선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내 이미지에 맞는 자유 연기용 독백 대사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지가 맞으면 대사가 완벽히 공감되지 않았고, 대사가 공감되면 내 이미지와 100%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건 내가 아직 기본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연기가 한정적이라는 의미)
독백 대사를 찾기 전,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찾아준 나의 이미지는 아래와 같은 언어였고
선생님은 1) 직장 내 멋진 선배, 팀장님 (똑 부러진 일처리) 2) 한방 먹여주는 누나 3) 상견례, 소개팅에서 당당하게 할 말 하는 독백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다.
**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 외유내강 st
1.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2. 밝고 따듯한 아이보리
3. 초가을처럼 선선한 온도감과 따듯함 공존
이미지와 어울리는 독백을 찾는 과정에서 3-4개가 탈락되고 3가지의 옵션이 남았다.
** 독백 옵션:
1. [ENA 드라마] 얼어 죽을 연애 따위 구여름역 :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더 이상 사랑받을 수 없는 현실이 슬픈 구여름
2. [웹드라마] 너에게 반하다 두리역 : 썸만 타는 답답한 남사친을 위해 이성에게 매력 어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두리
3. [tvN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천제인역 :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팀장. 사회초년생에게 수습 인턴을 제안하는 천제인
내가 생각했을 때 3개 독백의 공통점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솔직하게 전달한다는 점’이었고, 차이점은 독백 속 주인공의 분위기와 성향 / 독백의 호흡, 에너지가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고른 메인 독백과 서브 독백은 구여름역과 두리역이었다.
1) 메인 독백: 얼어 죽을 연애 따위 ‘구여름’ 역
그래, 나 속물이다.
좀 있어 보이는 남자가 데리러 오면
덜 쪽팔릴 것 같아서 부탁 좀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닌 게 그걸 못 들어줘?
(그 새끼한테 왜 그렇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건데?)
잘 보이고 싶은 게 아니고!
진짜,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찌질해서 그래.
연애 같은 거 안 해도 상관없는데,
그딴 거 아니라도 내 인생 충분히
바쁘고 피곤한데,
근데.. 그냥 어떨 때는 초라해진단 말이야.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한테 하자 있는 거 같다고!
썸 타다 쫑 났을 때 쿨한 척하는 거 힘들어.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도 치사스럽고...
애쓰고, 노력하고, 기대하는 게
되게 추접스럽다고...
아무도 나한테 애를 안 쓰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넌 이게 어떤 기분인지 몰라.
2) 서브 독백: 너에게 반하다 ‘두리’ 역 (기존 대사가 다소 오래된 느낌이라 조금 각색한 버전)
어휴 답답아... 너 또 썸만 타다 끝낼 거야?
(답답하게 쳐다보며) 안 되겠다,
그냥 내가 알려주는 대로만 해.
야.. 나는 전문가야.
일단 자세부터 좀 고쳐.
지금 몸이 너무 앞으로 쏠렸어!
거리감이 있어야 상대가 궁금해지지.
그리고 다 줄 것 같은 강아지 눈빛...
그거 좀 자제해.
앞에 앉은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 봐,
바로 흥미 식을걸?
그리고 말할 때 너무 장황하게 풀지 마.
뭐.. 무슨 세바시야?
쿨한 척이라도 좀 해줘.
상대도 궁금해져야 대화가 재밌는 거지,
네가 다 떠먹여 주면 재미가 없지.
마지막인데.. 너는 뭔가 임팩트가 없어!
차일 거 같으면 그냥 먼저 차.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다가
기억에도 안 남는다?
진짜로, 착한 사람은 금방 잊히는데,
나쁜 사람은 짜증 나게 오래 생각나.
강하게 밀어낼수록,
오히려 더 끌리는 법이야.
알겠지?
선생님은 100% 내 이미지에 딱 맞는 느낌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연습 과정에서 내가 좀 더 편하게 감정을 이해하고, 어색해하지 않는 독백을 메인으로 골라주셨고
잘 어울릴 줄 알았으나 막상 연습해 보니 과장된 모습이 살짝 어색하나 이미지와 맞을 것 같은 독백을 서브로 고르셨다.
자유연기 독백을 확정하고, 오디션을 보기까지 3회 정도의 수업 시간이 있었는데 (매주 1회 수업을 듣는다)
남은 수업 시간 동안 독백 대사의 전사를 구체화하고, 호흡과 발음, 끊어 읽은 법 등을 고칭 받으면서 가장 나다운 연기를 찾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잠시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평소에 큰 소리를 듣거나 혹은 스스로 내는 것 모두를 좀 힘들어한다.
큰 소리에 대한 예민도가 높은 편이라, 화가 나면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는 유형’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했다.
또한 회사원으로 살면서 열받고 화나는 일은 많지만, 그걸 소리로 표현할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큰 에너지에 필요한 목소리 근육이 퇴화된 것 같다.
사회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선이 평평해진다.
그러다 보니, 가끔 소리를 높여야 하는 독백을 만나면 안 쓰던 근육을 쓰는 사람처럼 힘들고 어색해지는데
이번 메인 독백의 시작 부분도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하는지가 고민스러웠다.
(+ 보통 자유연기의 독백을 고를 때는 일반적인 상황보다 좀 더 극적인 상황의 독백을 많이 고르기 때문에
독백의 시작부터 감정선이 격해져 있는 경우가 꽤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시작이 어렵다.)
1. 에너지 레벨을 좀 더 높여본 버전:
선생님은 위의 영상을 보시고 좀 더 스스로 편안한 호흡과 톤으로 연기하도록 코칭해 주셨다.
평소에는 내가 항상 정제된 감정톤으로 단조롭게 연기하는 편이라 더 확장시키는 연기 훈련을 권유하시지만,
오디션 독백에서는 표정과 눈빛에서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고 있으니 안정된 호흡과 에너지를 가져가라고 하셨다.
평소에 나라면? 아마 영하 2도 수준의 차가운 톤으로 나지막이 말했을 것 같지만..ㅎ
그보다는 구여름의 자존감이 흔들리고, 상대에게 서운한 감정이 잘 드러나야 할 것 같아 적절한 에너지 레벨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표현은 늘 뜻대로 나오지 않는다)
2. 좀 더 편안한 에너지 레벨에 머물러 본 버전: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와 조명이 있는 연습실에 가서 2-3시간 정도 반복하면서 독백을 연습했다.
연습할 때 영상을 남기면 좀 더 집중하는 효과가 있고, 관객의 입장에서 내 연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평소 표정 습관(ex. 눈을 자주 깜박인다던지, 특정 감정에서 어떤 표정 근육을 쓰는지)이나 부족한 발음과 발성, 호흡 등을 바로 확인하고, 무엇보다 화면을 통해 충분히 내가 의도한 목적이 전달되었는지 체크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늘 깜짝 놀라는데, 충분히 의도 전달을 했다고 생각하고 모니터링을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단순히 연기가 어색하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데.. 음..
대부분의 경우 나의 표정의 진폭이 크지 않아 생각보다 모든 상황을 단단히 잘 이겨내고 있어 보인다.
평소에 나는 이런 표정으로
모든 상황이 괜찮은 것처럼 보였을 수 있겠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들에게 ‘흔들림 없는 바위, 시몬스 침대’ 류의 우직한(?) 피드백을 받는데
진짜 안 괜찮을 때도 이런 피드백을 받으면 ‘내가 너무 괜찮은 척하고 있는 걸까?‘ 하고 의아할 때가 있었다.
연기 영상을 모니터링하면서 어느 정도 그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 아 나는 늘 괜찮다는 표정이구나
두 번째로 연습한 방법은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방법이다.
아직 치아 교정 중이라 특정 발음이 세고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떤 부분에 특히 아쉬운지 체크했다.
또한 맘에 드는 톤이 나오면, 잊지 않고 유사하게 연기해 볼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건 전문적인 트레이닝 방법이 아닙니다)
나는 유독 ‘ㅅ’ 발음에서 소리가 많이 세는 편인데,
교정을 마치면 이 부분을 더욱 세심하게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목소리 녹음 이후 하게 되었다.
연기를 하는 과정은
평소에 인지하지 못하던 작은 몸짓, 습관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오디션에 입고 갈 착장이나 간단한 자기소개와 질의응답을 준비하고, 오디션 신청을 위한 개인 프로필과 미리 제출할 연기 영상을 틈틈이 준비했다.
배우 프로필은 대체로 프로필 사진과 생년월일, 키/몸무게, 학력, 특기, 연기 경력 등을 정리한 PDF파일이며, 요청에 따라 현장에 인쇄물을 가져간다.
오디션 전 연기 영상을 제출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에, 평소에 미리 자신 있는 독백 영상을 준비해 두면 좋다.
생각보다 오디션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완벽하진 않아도 첫 오디션을 도전하는 것에 더 의미를 두자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무더운 7월을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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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