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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Jan 12. 2024

교사의 수확 : 졸업생의 의미

내가 더 좋은 교사가 되고 싶게 만드는 너희들, 이 정도면 풍년이겠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보호자에게 "자식 농사 잘 지으셨네요"라는 덕담을 흔히 건네곤 한다. 교육이 시간과 정성, 노력, 애정, 체력을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쏟은 뒤 성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농사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물과 사람은 분명 다른 개체이지만, 왜 그러한 비유가 생겨났는지 5년 차가 된 지금 조금은 알 것만 같다.


 1년간 나와 함께 하게 된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만큼 마음을 쏟고, 애쓰는 과정 중에는 이 과정 끝에 과연 어떠한 결과물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방심하지 않고 주어진 기간 동안만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어떤 날은 아이가 내 진심을 알아주고 잘 성장하려는 듯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내 의도와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연재해와 같이 예기치 못한 변수가 농사짓는 분들을 좌절하게끔 만들 듯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날들에도 다양한 변수가 함께한다. 잘 되어 가는 듯하여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마음이 아픈 일이 생기고, 때로는 노력이 헛된 것인가 싶은 날도 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믿으며 최선을 다해야 하고, 단기간 노력으로는 좋은 결과바라기 어렵다는 점에서 농사와 교육은 '제대로 보니' 참 많이 닮아 있다.  


 그러나 농사와 교육의 조금 다른 점은, 교육은 내가 잘한 것인지 끝내 알 수 없을 때도 있다는 점이다. 내가 교사로서 아이에게 주고자 했던 것들이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빠른 시일 내에 알게 된다면 무지 좋은 피드백이 되련만, 아주 먼 훗날, 뜬금없이 어떠한 계기와 나의 빛바랜 노력이 우연히 만나 2년 6개월 뒤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나의 노력이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서로 영영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교사로서 '학생을 위해' 그저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할 만한 1년을 보냈다면, 잘한 것이라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 또 노력할 힘이 생길 테니. 이처럼 교육이 '불확실을 안고 치러내는 장기전'이라는 점에서 교사는 스스로를 믿어야 함과 동시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해야 한다.


 교사로서의 나를 믿고 의심하는 나날이 반복되는 와중에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내는 존재가 있다. 내게는 '졸업생'이 그러한 존재인 것 같다.


 임용이  뒤 정식으로 교사가 되어 만난 제자들이 한 두 차례 졸업을 하고 내게도 '졸업한 제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학교를 떠날 때가 되어 떠나가는 것이니 나 또한 그들을 미련 없이 보내주어야 했다. 하지만 홀가분하면서도 아쉬워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내가 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이내 머리를 스친다. 답을 함부로 내릴 수 없는 찝찝함과 미안함, 아쉬움이 뒤따르지만 깊숙이 숨겨둔 채, 그저 나머지 몫을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만 간소하게 실어 보내며 웃어 보였다. 1년간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의 속을 데우다 못해 끓이기도 했던 끈끈한 관계였으나, 졸업과 동시에 그 관계도 질척임 없이 정리해야만 하는 게 숙명인 것 같아 서운하면서도 허무했던 그날. 그럼에도 그저 그들의 안녕을 바라며 멀리 나가지 않고 손만 흔들던 그날. 그렇게 아이들을 두 차례 보내고 나니, 나 또한 첫 번째로 재직하던 학교를 떠날 때가 되어 떠나 다.


 내가 전보 갔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들은 무슨 학교로 갔는지 종종 질문해 왔다. 졸업하면 나를 보러 오겠다고 무심히 툭 흘리고 간 약속을 지키고자 물어보는 것임을 알고는 있었으나, 새 학교는 이전에 재직하던 학교와는 꽤 거리가 멀었고, 대중교통으로 오가기에는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가량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기대할 수 없었고, 감히 기대해서도 안 되었다. 무엇보다 하나 보러 이 먼 데까지 아이들이 올 만큼 내가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별생각 없이 학교 이름만 몇 번 알려주곤 했었다.


 4월의 어느 날, S가 고등학교 수업이 일찍 끝났다며 학교에 찾아가도 되는지 물어왔다. 내가 있는 데까지 오는 방법과 걸리는 시간을 아는지 재차 물었고, 아이는 자신 있게 얘기했다. 알고 있으며,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S는 1시간 30분가량을 써서 우리 학교에 왔다. S의 발걸음이 그날 나를 얼마나 다독이고 또 다독였는지 아마 S는 모를 것이다. 감격과 보람, 자부심과 뿌듯함, 대견함과 약간의 미안함이 뒤섞인 그날의 감정. 그리고 그날 했던 생각들. '나는 S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님이었던가', '앞으로 만날 학생들에게 나는 정말 더 잘해야겠다.'


 그리고 한 달 뒤인 5월의 어느 날, 이번에는 P가 찾아왔다. 심지어 내가 사는 지역의 반대 방향 끝 편에서 교외 체험 활동을 마치고 온 P. 2시간 남짓한 시간을 써 가며 온 P는 드시라며 캔 커피와 초코바를 건넸다. P는 내가 담임을 맡지도 않았었고, 1년간 수업과 동아리 활동을 한 것이 전부인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꾸준히, Y와 J, J와 K, L, K, J, D 등 다른 졸업생들도 내게 연락을 해 왔다. 아이들은 다 다르지만 연락해 온 내용에는 보고 싶다는 마음이 담뿍 담겨 있었다. 내 몫을 살아내느라 졸업한 제자들을 아주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한 번씩 만날 때면 아이들은 금세 자라 있었다. 키가 훌쩍 큰 것은 물론이고, 이목구비에 묻어나던 앳된 분위기도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각자 자신의 길을 잘 찾아 걸어가고 있고, 그 길 속에서 나름의 고민과 계획들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 있을 때면 내가 알던 아이들이 아닌 것만 같다. 언제 이리 커버렸는지.


 2023년 한 해동안 이어진 아이들의 연락만큼 꾸준히 생각해 왔다. '나는 어떤 교사였나',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나', '최선을 다했으나 잘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잘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그 끝은 항상 '아이들에게 더 잘하자'. 그럼에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1년간 예상치 못했던 마음들 넉넉히 받은 덕에, 여태 믿고 해 온 것들이 잘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용기가 조금은 생긴 듯하다. 앞으로 내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내가 만날 학생들에게 어떤 교사, 나아가 어떤 어른이 되어 주어야 할지 해답이 되어 주는 고마운 존재들.


 어쩌면 제자 농사를 꽤 나쁘지 않게 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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