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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Jan 21. 2024

교사의 기다림 : 철이 없는 것도 때가 있는 것임을

때가 되면 자란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식물에게 빨리 열매를 맺으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경우 식물이 느린 걸까, 사람이 조급한 걸까.


 2주 전, 방과 후 수업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전화가 한 통 왔다. 전임교에서 입학 때부터 졸업까지 함께한 L이었다. 4년 전 처음 만났던 L은 러시아에서 온 만큼 한국 학생에 비해 자유분방한 녀석이었다. 한국 학교의 여러 환경과 문화는 그에게 갑갑한 것이었고, 그 갑갑함을 말과 행동으로 티 내곤 했다. 덕분에 곤란한 상황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게다가 중학교 1학년이 겪기에는 다소 파란만장했던 그의 성장 및 이주 배경은 청소년이 으레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다문화 학생을 위해 설치된 한국어학급에 들어왔지만, 한국어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L. "저는 그냥 비자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거예요. 학교 없으면 비자 없어요. 한국에 있을 수 없어요." 그러니 내가 붙들고 가르치는 한국어 단어와 문법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었을까. 밤새 노느라 교실에 오면 잠만 자기 일쑤였고, 문화 차이로 인해 일찍 성숙해 버린 그는 이성과 술, 클럽 등에만 관심이 넘쳤다. L은 때로 내 앞에서 동양인을 비하하는 제스처를 하기도 했다. 동양인 중 한 명으로서는 기분이 나빴지만, 교사로서는 지도해야 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교실 아닌 다른 데에서 절대 그런 제스처는 해선 안 된다고, 네 앞에 있는 나도 지금 기분이 매우 나쁘다고 애써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날 나의 지도 속에는 L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빠져있었다. 'L은 내가 지도해 봐야 나아질 애가 아니겠구나, 그냥 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L도 덜 자랐던 시절이지만, 그때의 나 또한 L만큼이나 덜 자란 교사였다. 아이들로 인해 화가 자주 났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 미숙했다.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L과 같은 학생들 때문에 너무 화가 난 날에는 혼잣말로 학생들을 심하게 욕하거나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기준치를 넘어선 언행을 하는 학생에게는 지도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곤 했다. '쟤는 그냥 이미 저런 사람이니까 내가 지도해도 소용이 없겠다. 지도하기 싫어.' 가감 없이 말하자면, 지도해야 할 학생으로 보인다기보다는 이미 틀려버린 한 사람으로 보였달까.


 L과 보낸 시간이 2년 정도 지나 그에 대한 기대가 거의 남아있지 않을 무렵, 그의 자유분방함은 어느새 옅어져 가고 있었다. 한국 학교의 규칙과 정서를 점차 체화하고 있음이 느껴지더니, 점차 L을 향한 나의 잔소리가 줄어들었고, 때때로 그는 나의 표정이나 목소리만 들어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왜 그러한 말을 하려 하는지 안다는 듯 반응했다. 어떤 날에는 배우고 싶은 한국어가 있다며 가르쳐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다루기 쉬운 학생은 아니었으나,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학교라는 공동체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퍼즐 조각의 모양에 맞추어 자신을 다듬어 가는 듯했다. 졸업할 때가 되니 조금씩 커 가는 것인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바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L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밉고, 미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졸업이 다가와 L은 학력인정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학력인정학교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대체로 현장에서 학력인정학교는 공부에는 관심이 덜한, 즉 성실함과는 거리가 있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편이다. 물론 그곳에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여 지혜롭게 나아가는 학생도 있다. 그럼에도 선생님들께서는 학생에게 가급적 학력인정학교를 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학생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환경과 그에 따른 분위기, 동료 등의 중요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나와 L의 담임 선생님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L이 가장 마지막 등수를 차지하고 있던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으나, 담임 선생님과 나는 다른 방법이 없을지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 하지만 L은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머리 색깔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이유로 그곳에 진학하길 강력하게 희망했다. 나는 건방지게도, L이 앞으로 떠한 학교 생활을 하게 될지 뻔하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건방지게도.


 작년 5월의 중순, 스승의 날이 며칠 지난날이었다. 퇴근길에 L에게서 전화가 왔다. 뜻밖이라 반가우면서도 떨떠름했다. "선생님의 날이라서 전화했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짤막한 통화가 끝난 뒤, 약간의 놀람과 의아함, 대견함과 고마움을 곱씹었다. '그래도 스승의 날이라고, 자기가 고생시킨 선생님 생각을 할 줄 아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주 전, 또 한 번 L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과 후 수업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하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대뜸 그날 저녁에 우리 집 근처에서 커피 한 잔을 하자는 것이었다. 뜻밖의 제안에 놀라서 전화를 했다. "저는 방학이라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요즘 정말 너무 바빠요." 그럼에도 그 와중에 짧게나마 시간을 내어 커피를 마시자고 한 건 오랜만에 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선생님은 내가 한국에서 제일 고마운, 좋아하는 선생님이에요. 그래서 꼭 만나고 싶어요. 지도 나한테 보내주면 내가 선생님 있는 곳으로 갈 거예요."


 그날 L은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이 걸리는 곳에서 나를 만나러 왔다. 우리는 7시 30분에 만났지만, 이후 9시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틈'을 내어 나를 보러 온 것이 고마워 커피를 사려는 내게 L은 한사코 자신이 사주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만날 때에 더 맛있는 것을 사달라며, 오늘은 자신이 내게 커피를 사주고 싶다며 먹고 싶은 것을 내게 고르라고 했다. 그 짧은 찰나에 느낀 기분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뭉클함이라기엔 벅찼고, 마냥 기쁘고 행복했다기엔 짠하기도 한, 달면서도 어딘가 짭조름한, 웃음과 눈물이 같이 고이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L의 말투, 그가 골라 사용하는 한국어 표현들, 말할 때의 태도, 내게 묻는 질문의 내용들, 그가 회상하며 묘사한 자신의 중학교 시절, 요즘의 생활은 내가 알던 L의 것이 아니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정녕 L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그러했다. L은 내가 새로운 학교에서 힘들지는 않은지, 학생들은 말을 잘 듣는지,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은지, 일이 많아서 바쁘지는 않은지 걱정해 주었고,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차분히 대화를 이어 갔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입학할 때 선택한 전공에서는 배울 것이 별로 없는 듯하여, 현재 자신에게 좀 더 잘 맞는 전공으로 바꾼 상태이며, 졸업 후에는 헤어숍을 차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나아가 대학교에도 꼭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못 본 1년 새에 몰라보게 어른스러워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찰 지경이었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인지 10번은 더 질문한 것 같다. 그는 여자친구 덕분에 이렇게 바뀌었다고 했지만, 여자친구 한 명의 힘으로 사람이 이토록 바뀔 수 있는 거라면 세상의 많은 이들이 좋은 사람의 영향을 받고 바뀔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L을 약속 장소로 보내주기 위해 부른 택시를 기다리며 다음을 기약하는데, 마지막까지 예상치 못한 말로 나를 놀라게 하는 이 녀석. "아마도 한국에서 선생님보다 좋은 선생님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러했다. L뿐만 아니라, 졸업 후 모교를 찾아온 졸업생들은 언제 철없는 중학생이었냐는 듯 고등학생에 걸맞은 옷을 나름대로 갖추어 입고 나타나곤 했다. 대화를 할 때면 사뭇 느껴지는 나름대로의 진지함과 고민, 미래에 대한 걱정은 그들이 중학생이던 시절 미리 해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했어도 하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것들이 되었다. 함부로 뱉어내지 않으려 애쓰고 절제하는 말들, 말 마디에서 느껴지는 선생님에 대한 예의와 조심스러움, 그러라고 한 적이 없지만 알아서 공손히 모여있는 두 손, 묻지 않았음에도 기회를 틈타 고백해 보는 철없던 중학생 시절에 대한 회한과 같은 것들은 아이들이 익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보면, 철이 없는 것도 다 때가 있고 시간이 지나 가지에 꽃이 피고 열매를 틔우듯 사람도 익어가는 시기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과 햇빛이 주어진다고 바로 열매가 맺히지 않듯 교사가 가르치고 지도한다고 해서 바로 철이 들고 성장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인데, 왜 자꾸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지.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현재로서는 '기다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다 자란 나무에 가까운지 이제 막 새싹을 틔우고 줄기와 가지를 튼튼히 다져가는 단계에 가까운지 생각해 본다면 응당 그들이 좀 더 자라고 때가 되어 성숙해지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조급해하며 아이들의 철없음에 답답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기도 하며, 화를 내 버리는 나.


 철없는 우리 반 아이들로 인해 골치 아파하는 내게 선배 선생님들께서 웃으시며 애들은 알아서 큰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은근하게 느껴지는 무심함에 야속하기도 했다. 지나 보니, 그 말속에는 아이들의 철없음을 이해하고, 느긋하게 너그러이 바라볼 줄 아는 여유와 믿음이 담겨있었다. 아마 그분들은 이제야 내가 어렴풋이 인지하게 된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겠지.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도 때를 알고 조금씩 익어갈 것임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아직 경험치가 부족한 나는 그게 참 어렵다.


재촉한다고 해서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올해는 좀 더 믿고 기다릴 줄 아는 교사에 가까워져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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