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 Jul 08. 2018

숨겨둔 면접 무기는 치킨

 어떤 자동차 회사의 최종 면접에 갔을 때의 일이다. 면접실은 이사회 회의에나 사용할법 같았던 중간규모의 회의실이었다. 아무래도 임원면접이다보니 그런 회의실을 사용한것 같다. 그 큰 회의실의 한가운데에 책상을 몇개 이어붙여 대여섯명의 임원이 앉아있고, 그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대여섯개의 의자에 지원자들이 하나씩 들어가 앉았다. 출입문부터 책상, 기둥까지 전부 밝은 갈색을 사용해서인지 학교같다는 이미지가 들었고, 어색한 공간을 채우려고 지원자는 큰 목소리로 임원들은 온화한듯한 말투로 인사를 했지만 역시 서로 민망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아마도 그 면접의 마지막 조였던것 같고, 모두가 지친 상태로 면접은 시작되었다.


 면접은 별다를것 없이 진행되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업무와 관련된 경험이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고 받았다. 추가 질문도 적당히 있었고, 다른 지원자들도 당황하지 않고 곧잘 대답했던것 같다. 아니었는지도 모르지만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는 걸보니 그다지 특색이 있었던 면접은 아니었던것 같다. 지원자 여섯을 다같이 앉혀놓고 한명씩 대답을 듣고 있다보니 시간이 꽤 오래 지난 느낌이었다. 그래도 붙고싶다는 의지로 면접장이 한창 뜨거울때 아마도 마지막으로 보이는 질문이 나왔다.


 '각자의 취미를 알려주세요.' 취미라니. 취미를 도대체 왜 물어보는걸까? 어차피 나랑 같이 취미 생활을 하지도 않을것 같고, 오히려 입사하면 개인시간은 없어 취미는 없어질게 아닌가? 내가 이 사람을 뽑는 대신 그에게서 빼앗아 갈것을 알아보고 싶은 심사위원의 고약한 심보인가? 아니면 인사팀이 만들어준 질문 리스트를 차례로 진행하다가, 시간이 남아돌때를 대비해 넣어둔 거의 마지막 질문이 걸린것일까?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런데 내 취미는 뭐지? 책읽기, 영화보기를 말하자니 마땅히 떠오르는 예시도 없고, 무난하게 고등학교때 연주했던 악기 이름을 대기에는 조금 양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나 저러나 좀 곤란하네...라고 생각하던 차에 다행히 내 반대쪽의 지원자부터 대답을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을 벌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른 지원자들의 취미는 너무 대단했다. 첫번째 지원자는 자동차 잡지를 꼼꼼하게 읽는다고 했다. 이런저런 잡지 이름을 대는데 나는 전부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반떼와 그렌저를 구분하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그런걸 알리가 없지. 그 다음의 지원자는 더 대단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동아리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자동차를 만든다고? 나는 초등학교때 미니카를 만들다가 잘안되어서 집어던지고 울던 기억이 있다. 그때 엄마가 동네 문방구 형에게 부탁해서 조립해주었던것 같은데. 그런데 자동차를 진짜 만든다고? 그건 카이스트 다니는 천재만 하는거 아닌가? 아, 그 천재가 여기 있었구나. 그 다음에는 좀더 무난하게 '언어를 배운다'거나 '등산을 다닌다'는 대답들이 있었다. 사실 그것도 별로 안무난했던게 할줄아는 언어가 대여섯개는 되었던것 같고, 등산도 외국의 대단한 산 이름들이 나왔다.


 그렇게 내 차례가 오고 있는데 나는 별다른 생각이 안났다. 그동안 취미도 없이 뭐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이제와서 취미를 만들수도 없고, 대단히 좋은 거짓말도 떠오르지가 않더라. 내 이전 사람은 악기 연주였나, 독서를 이야기했는데 왜인지 죄지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내 차례가 왔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저는 치킨집 탐방하는게 취입니다.'였다. 순간 나도, 지원자들도 당황하고, 책상만 보고 있던 임원들도 고개를 쳐들었다. 응? 쟤가 지금 뭐라고 한거지? 치킨집? 직장인의 장래희망인 치킨집 창업을 지금부터 준비하는건가? 자동차 회사에서 치킨집이라니...? 면접을 장난으로 아는건가..? 이런 분위기에 정적이 흐르던 차에, 진행 역할을 맡았던 면접관이 책임감에 '하하 재미있는 취미네요, 그런데 치킨을 많이 먹을것 같은 몸매는 아닌데...'라고 마무리를 향한 멘트를 했다. 하아.. 어떻게 수습하나 당황하고 있는데, 내 앞에서 시종일관 딱딱한 표정을 짓던 면접관의 입에서 '저 친구 배를 한번 보세요, 치킨 많이 먹는 사람이 맞는것 같네요'라는 말이 나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지만 뭐! 이렇게 된거 '최근에 동대문 시장에서 정말 맛있는 치킨집을 발견했는데, 언제 한번 함께 가면 좋겠습니다!'라며 마지막 의지의 어필을 날렸다.


 그렇게 서로 수고했다는 말들로 면접은 끝이 났고, 밝은 갈색의 문을 열고 면접장을 나와 면접비가 담긴 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그 돈으론 아마 친구들과 치맥을 먹었겠지. 그렇게 몇 주 뒤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합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그 회사에는 가게 되지 않았지만, 그때 '저 친구 배를 보면...'이라는 이야기를 해준 분과는 한번 동대문에 치킨을 먹으러 가고 싶다. 물론 그 사람도 나도 서로를 잊어서 찾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축구를 봐서 시험에 붙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