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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Jul 29. 2024

[캔버스에 비친 내 모습] 동료에 대한 오해와 이해

진한 그림자와 옅은 그림자의 차이, 한적함과 애잔함의 심상



 오늘 수업에서는 그림의 대부분을 채웠던 나무 그림자를 다시 덧칠하고 있다. 사진을 들여다볼수록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문득 직장 동료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하루 8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 기껏해야 하루 30분 눈 마주치며 나누는 회의와 대화.


그림자는 푸른 회색빛이 아닌 주황빛을 어렴풋이 띄고 있다.

 이직하고 옆자리에 앉았던 동료의 첫인상이 떠올랐다. 이제 제법 긴 회사생활을 가졌기에 새 동료나 사람을 만나면 어떤 범주와 과거의 누군가를 투영하고는 한다. 한동안은 새 동료의 말투마저도 옛 동료와의 유사함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림자의 명암도 한 겹, 두 겹 점차 진하고 옅은 여러 층의 어둠으로 조각조각 눈에 들어왔다.

 그가 첫인상과는 다른 사람임을 깨닫는 데는 몇 달 여의 시간이 걸렸다. 동료는 꽤 다면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다. 평소 흐트러짐 없는 일정 관리와 달리, 허술한 스스로의 꼼꼼함을 유지하고자 여러 방법을 쓰고 있다는 점, 퇴근 후에는 활동적인 취미와 문화적 취향을 갖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텅 빈 카페는 누군가에게는 한적해 보이기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애처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는 무표정한 모습과는 반대로 수더분한 성격이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범주화에 더해 나 자신의 관점과 감정을 투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마 예민한 나의 행동양식을 그에게 덧씌웠던 듯싶다.


점차 많은 동료를 알아가지만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이다.
 과거에는 사적인 수준의 친밀감을 쌓기 위한 고민을 했지만 이제는 그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애초에 직장 내 관계는 애매하고,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삶은 서로 가깝지 않다. 그 이상을 노력하면 스스로가 다치거나 상대를 다치게 한다.  

 그렇지만 시절이어도 인연이다. 그렇기에 하루의 순간이나마 최선을 다해 마주하고 객관적으로 그들의 집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 봐야겠다. 좁은 상상력의 범주에 상대를 끼워 넣는 실수는 피하기를 기대해 본다.


 어떤 날은 그림자 뒤에 주황빛 어렴풋한 동료의 진심도 내 하루의 캔버스에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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