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가는 길에는 몇 군데 벤치가 놓여 있다. 매번 다양한 연령과 사람들이 앉아 있다. 강아지를 안고 대화를 떠는 이들, 마실 나온 아주머니들, 집에 가기 아쉬운 학생들.
그날도 집 근처의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가 벤치 하나에 시선이 머물렀다. 누군가가 벤치에 누워있었다. 배 위에 무엇인가를 올려 둔 채로 잠든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건 그 사람의 배였다. 60대 즈음의 등산 조끼와 반바지를 입은 남성은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다.
작은 산은 꽤 유쾌한 착각이었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 기분은 가라앉았다. 겹겹이 쌓인 세월의 종이더미가 그 안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어떤 피곤함의 하루와 어떤 기쁜 날의 하루가 쌓이고 쌓여 그 작은 산을 이루었을까. 기쁜 날들이 채워져 있을지 그저 평범하고 무의미한 날들의 반복이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요즘 시대에는 그 총합이 이익일지 손실일지 셈을 하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기쁨은 그날의 것, 슬픔도 그날의 것, 더하고 빼어 0이 되는 감정이란 없다. 켜켜이 쌓이고 끈덕지게 달라붙어 없어지지 않는 덩어리만 남을 뿐이다. 그렇게 커진 덩어리는 하루의 낱장을 한 줄 한 줄 읽을 시간도 없이 붙여 구른다.
- 회사, 퇴근, 어느 시간, 잠
잠깐의 시간 여백에 의미를 새겨 넣을 방법을 오늘도 어제처럼 고민한다. 걸으며 여전히 0인 오늘 하루의 의미를 계속 세어본다. 반복하다 보면 셈이 1이 되기를 기대하며 걸어간다.
돌아오는 길, 벤치는 이제 비어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중 벤치 앞으로 빠르게 차 몇 대가 지나친다.
잔상을 가진 덩어리처럼 휙 하고 지나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