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글을 쓸 만한 심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10월 이후 아이가 세 차례나 앓았던 통에 며칠씩 잠을 못 자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일은 바빴고요, 지난주에는 '이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기에 병원에 갔더니 독감이더군요. 게다가 주사를 맞고 와서 비몽사몽 누워 있는데 전화로 발령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이런 일들로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써야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옮기기 위해 키보드 위 허공에서 손끝을 몇 번 움직여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태블릿을 덮어버렸죠. 그럴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솔직해지겠습니다. 글을 쓰지 않은 건, 그럴 여유가 없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한 지 5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제 글에 좀 싫증이 났다고 해야 할까요. 늘 돌고 도는 똑같은 이야기일 뿐,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글 또한 완성하고 나면 별반 다를 것 없는 이야기일 듯하고, 연재를 잇기 위한 연재, 그저 '양산형 글'에 불과할 것 같아서 더더욱 글을 쓸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변명 같나요. 하지만 글쓰기를 마냥 외면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뉴스를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보는 뉴스는 다분히 선택적이기에 제 취향이나 관심사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좀처럼 보지 않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세상에 많은 일들은 제 취향과 관심사와는 무관하게 일어나고 있고, 그것들이 때로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의제들과 연결되어 제3의 이슈를 탄생시키기도 하죠. 그것들을 (가볍게라도) 알면, 그래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면 생각할 것도 많고 글감도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구독을 시작한 겁니다. 평소 잘 모르던 분야에 대한 기사도 읽고 사설들도 진지하게 읽었더니 괜스레 뿌듯하고 머릿속이 좀 풍요로워진 듯합니다.
둘째로, 한두 문장 정도의 짧은 글을 써보고 있습니다. 연재 '짧아도 괜찮잖아요'를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무리 자유 형식의 글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길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른 건 강렬한 한마디였을 뿐인데 장황하게 부연 설명을 더하곤 했죠. 그러다 보니 완성본에서는 그 강렬함은 사라지고 변죽만 울리게 된 겁니다. 그게 싫어서 '짧아도 괜찮잖아요'라는 제목으로써 양해를 구하고 연재를 시작했던 거였어요. 하지만 그래놓고도 뭐가 눈치가 보였는지 슬금슬금 글에 군더더기가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해방감이 필요했습니다. 마침 여유도 없다는 핑계로 브런치가 아닌 다이어리에 한두 줄씩 적어놓고는, 턱을 괴고 한참을 그 문장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어디에 내놓을 수 있는 글마디는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우려낼 때마다 진한 향이 있어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 브런치에 앞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요. 어떤 글을 써야 할까요. 평생 글을 쓰는 걸 너무 좋아하기만 했지, 이렇게 어렵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고치라고 한다면 차라리 편할 텐데, 제 맘에 차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백하자면, 챗GPT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답변은, 편한 글을 쓰되, 진심이 담긴 글은 일주일에 한 번씩만 쓰랍니다. 참 기계적인 대답입니다. 편한 글과 진심이 담긴 글은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닌데 말이죠. 물론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겠습니다만, 도움이 되는 답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어젯밤 아들이 '엄마, 우리 달 보자' 하기에 아들을 안고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아들은 '달님, 달님, 다시 태어나도 우리 엄마 아빠 아들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하고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어요. 달님을 바라보는 아들의 눈. 달빛이 비친 거라고 하기엔 달이 너무나 멀리 있었지만, 아들의 눈동자는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어요. 온화한 달빛이 마음에 깃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겁니다.
마음속의 여유도 아직이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구차하지만 조금 이른 방황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오늘은 그냥 글 하나 올리고 싶었습니다. 쓴 것이 마치 털어낸 것과 같이 후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