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비뚤어진 생각을 해보겠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내가 지금 외국에 와 있는 건지 한국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네'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샴푸도, 린스도, 컨디셔너와 바디워시, 치약까지 거의 모든 욕실 용품의 설명이 영어로 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대부분 제품들이 우리 대부분이 처음 사용했던 시점부터 이미 그렇게 불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제품의 주요 성분을 다 영어로 기재해 둘 필요도 없고, 피부 자극이 적다든지 건성 피부에 효과가 좋다든지 하는 특장점까지 다른 언어로 쓰일 필요도 없다. 내가 산 제품들만 그런 건가 싶지만, 마트에 가서 여러 제품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꼭 이게 특정 제품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 듯싶다.
생활 용품의 용기에 영어가 기재된 것을 처음 인지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더운 여름, 쉬는 시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자주 세수를 하곤 했다. 그때 친구에게 클렌징 폼을 빌렸는데 무심결에 'Cleansing form'으로 표기가 된 걸 발견했다. 나는 친구에게 '이거 form이 맞나? r이 아니라 a 아니야?'라고 물었고 친구는 '거품 형태가 생기는 거니까 form이 맞는 거 아닌가?' 하고 대답했다. 결국, 나중에 같이 어떤 철자가 맞는지 확인을 해보고는 '왜 좋은 우리말 두고 영어로 써놓은 거야' 하며 머쓱해졌었다. 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지금은, 단어 하나하나를 살펴볼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많은 제품이 영어로 뒤덮여 있다.
몇 주 전 대형마트에 간 일이 있었다. 주방 용품이 어디 있는지 몰라 천장에 붙여 놓은 코너별 이름표를 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Grocery'라는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나도 영어를 전혀 못하는 편은 아닌데 순간 헷갈렸다. 저게 뭐더라. 그러다 이내 불쾌한 감정이 일었다. '그냥 우리말로 써두면 되었을 걸, 왜 영어로만 써놓은 거지?'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병기를 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뿐만 아니다. 신축 아파트에 가면 흔히 보이는 '맘스 스테이션'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우편함에는 버젓이 'POST' 또는 'POST BOX'라고 쓰여 있다.
소위 '업계 언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어떤 외국어에 대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는 약간 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특정 업계에서는 하나의 의미로 합의되어 통용되는 말이 그것인가 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기에 마음대로 평가를 할 수도 없을뿐더러, 업계 언어를 씀으로써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면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할 영역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특정 집단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언어라면, 그것을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언어로 대체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젊은 사람은 그래도 영어에 친숙한 편이다. 하지만 어르신들 중에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많다. 어르신 한 분이 마트에 주스를 사러 갔다고 치자. 다섯 가지 맛의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그중 '화이트 그레이프 맛'과 '그레이프 프룻' 맛이 있다. 화이트 그레이프 맛이 청포도 맛이라는 것과 그레이프 프룻 맛이 자몽 맛이라는 걸 모르신다면, 어르신이 고르실 수 있는 주스는 세 가지가 된다.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것이다. 표기 방식은 회사의 자유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취향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딸네 집에 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둘러보니 INFORMATION과 TICKET이 있다. 어쩌면 어르신은 차표를 구매하기 위해 한번 발걸음을 돌리셔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전 국민이 동등하게 누려야 할 생활 편의의 영역에서도 표기하는 자의 선택에 맡길 수 있는 것인가?
영어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언어로 말하고, 듣고, 읽고 쓰기 위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우리말과 영어는 각자 고유한 정체성을 갖는다. 따라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사물과 감정에 대한 단어의 구성과 표현 방식의 차이를 이해함으로써 통찰력을 얻고, 다름을 받아들임으로써 포용력을 얻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의 단단한 뿌리를 전제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영어가 중요한 사회'라는 시류에 휩쓸려가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바란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무분별하게 영어로 뒤덮이는 것이 멈추기를.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말이 다시금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기를. 물론 고유어가 없어 외래어를 우리말처럼 쓰는 경우까지 무리해서 우리말로 대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것이든 극단적으로 해석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상식 선에서 ㅡ물론 그 선에 대하여는 늘 논란이 있겠지만, 그것은 마냥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ㅡ 우리말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식이 깨어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