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B의 세계

by 갈매나무



웃으면서 무대에 오르며
나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뿌리는 비고
로마의 자동차 위로 내리는 비야
에서 한발 한발 걸어 나가다가 관객들을 바라보며,
나는 춤추는 인어고
바다의 파도 위, 두려움 없이 불타오르며 춤추지
하며 본격적으로 관객들을 향해 노래하기 시작






이 곡은 브라질 가수 Maria Bethânia의 Reconvexo라는 곡의 도입부를 우리말로 번역한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이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영상의 도입부를 묘사한 거고요.
알 수 없는 언어로, 낯선 곳에서, 잘 알지 못하는 가수가 불렀으며
언어를 안다고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가사예요. 하지만 저는 이 노래가 정말 좋아요.



2011년 11월, 저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이파네마 해변가 어느 숙소의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여행을 오긴 했지만, 제대로 알고 온 건 아니었기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지역에 뭐가 유명한지 찾아보고 있었죠. 저는 빵 지 아수까르(Pão de Açúcar) 산이 보이는 해변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을 올려두었는데, 마침 그때 대학 동기가 댓글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도시네' 하고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보사노바, 그게 제가 브라질 음악을 접하게 된 첫 경험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취업 준비를 할 때, 공부를 하며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거나 조용한 카페에서 멍하니 음악을 듣는 습관이 생겼죠. 그런데, 어느 날인가 많이 듣던 음악이 나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곡이었어요. 그전에도 그 곡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새삼 오랜만에 그 곡을 듣고 보니 지난 대학 시절의 여행이 사무치게 그리워졌어요. 그땐 나름대로 진지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는 그 시절의 제 모습이, 아사이베리 슬러시를 홀짝이며 그곳을 걷던 제 모습이요.


지구 반대편 먼 세상은, 어쩌면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세계라기보다는 그저 네모난 상자 속의 세상처럼 느껴지곤 해요. 그렇기에 세계란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에 한정되고, 그 좁은 세계에서 저는 새로움을 갈구하게 돼요.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저는 생소한 이국의 노래를 찾아 그 갈증을 해소하려고 했죠. 특정한 나라의 음악 문화에 천착한 것은 아니고 알제리, 페루, 아일랜드 등 많은 나라의 노래를 눈을 감고 들어보며 마치 그 나라의 조용한 식당, 해변가, 번화가에 있는 듯한 상상을 하곤 했어요.



그러다 제가 좀 더 깊이 알아가보고 싶은 한 나라가 생겼어요. 아마 지난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실마리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바로 브라질이에요. 요새는 알고리즘에 의해 음악 재생목록이 자동으로 생성되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브라질 음악이 재생 목록 대부분을 채우고 있더라고요. 아마, 2022년 가을부터였던 것 같아요. 햇살 좋은 날에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무작위로 재생해 둔 음악 중 한 곡이 너무 좋아 얼른 휴대폰을 들어 이게 무슨 노래지, 하고 봤더니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의 Força Estranha라는 곡이었죠. 그 곡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브라질 곡들이 재생목록에 하나씩 추가되었고, 이제는 가우 코스타(Gal Costa), 엘리스 헤지나(Elis Regina), 치코 부아르케(Chico Buarque)의 곡들은 제 일상을 함께 하는 곡이 되었죠.


처음에는 그냥 그 곡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해졌어요. 이 노래를 들으면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워질까, 이 노래를 들으면 생생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데, 혹시 노랫말이 정말 내가 상상하는 거랑 비슷한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노랫말을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런데 신기했어요. 무겁게 느껴진 곡이 실제로도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지만, 음률은 경쾌한데 가사는 한없이 무력한 곡들도 있었거든요. 그런 느낌 혹시 아실까요, 조화로워야 할 두가지의 괴리가 클수록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거. 흥미로워서 더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 곡이 쓰인 배경과 그 가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요. 그리고 제가 즐겨 듣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MPB(Música Popular Brasileira, 브라질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가수들이었고, 그들의 음악은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는, 일종의 예술적 표현의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노래 중 치코 부아르케의 Roda viva라는 곡이 있어요. 직역하면 '살아있는 바퀴'라는 뜻입니다. 좀 어렵죠? 저도 아무리 찾아봐도 잘 모르겠어서 챗GPT의 도움을 받아봤는데요, 정리하자면 '삶의 무력함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노래'라고 해요. 가사를 몇 소절 소개해볼게요.


우리는 오래전부터 가꿔왔죠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피우기 위해
하지만 그때 또다시, 삶의 소용돌이가 닥쳐와
그 장미 덤불마저 멀리 휩쓸어가요


그런데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이 노래는 치코 부아르케가 20대 시절에 만든 노래라는 거예요. 어떻게 20대에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사실, 물론 심오한 철학을 가진 20대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보통 오늘날의 20대를 생각하면,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멀잖아요.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죠. 20대 청년에게 그런 고뇌를 안겨준 그 당시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통과 환희의 역사를 지나온 것처럼, 그들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하는 생생한 역사가 있을 거예요. 제가 그것들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음률과 노랫말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아주 어렴풋이나마 짐작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그 먼 세상은 더 이상 네모난 상자 안의 것이 아니라 저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세계의 것으로 들어오고, 제 세계는 한층 더 확장되죠.


제가 브런치 스토리 소개 글에 이렇게 써두었죠, 세상의 선명도를 높이고 싶다고요. 이건 비단 저를 둘러싼 세상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아득한 저 너머의 세상까지 그 바람이 닿는 거예요. 그래서 MPB를 들으며 어렴풋이 상상해봐요. 제가 잠자는 순간, 평온한 순간에 먼 곳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역사를요. 그리고 온몸으로 느껴봐요. 그 역사가 펼쳐지는 이 순간에 제가 살아 있음을요.






조금 갑자기 마무리 된 느낌인데, 도입부에 소개한 곡을 듣다가 갑자기 감상에 젖어서 쓴 글이라서 두서가 없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라, 마무리하며 이 곡을 소개하고 싶어요. 인터넷으로 좀 찾아봤는데 포르투갈어여서 그런지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게 없어요. 챗GPT를 통해 소개해볼게요.


Maria Bethânia - Reconvexo

* (장르/의미) 이 노래는 MPB(Música Popular Brasileira) 내에서도 정체성과 문화적 뿌리, 반중심성을 노래한 인상적인 곡이며, Reconvexo는 “오목하게 휘어진”이라는 뜻으로, 주류(볼록함)가 아닌 내부,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는 존재감을 상징합니다.
* (맥락/상징) 이 곡은 브라질 포용적 문화와 흑인 정체성에 대한 찬사이자 선언입니다. 여러 등장하는 이름과 상징은 문화·지리·신화가 얽힌 자신만의 자아 풍경을 구성하며, 그 속에 작가 스스로가 “분명히 속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 (요약) “Reconvexo”는 노랫말 하나하나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 뿌리, 역사, 정체성과 교차되어 있는
복합적이고도 깊은 자아 선언서를 읽는 듯한 곡입니다. 단순한 “나는 이러하다”가 아니라 “나는 이것들, 저것들과 함께 존재하며, 주류조차 이해 못 할 깊이가 있다”는 자긍의 노래이죠.


* 주요 가사
나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뿌리는 비고
로마의 자동차 위로 내리는 비야
나는 춤추는 인어고
바다의 파도 위, 두려움 없이 불타오르며 춤추지
나는 약자의 두려움, 상상력의 힘
도박사의 허세, 그게 나야. 그래, 나야
귀에 금 귀걸이를 단 강인한 북미 흑인이기도 하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우시죠? 저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괜찮아요. 이걸 챗GPT에게 한국적인 정서로 바꾸어달라고 했는데요, 이렇게 묘사해 줬어요.

나는 봄이면 황사가 날아드는 들녘 바람
논두렁길 따라 가만히 걷는 외할머니의 걸음이야
나는 동해 새벽 바다의 물안개이고
정선 아리랑 따라 흘러가는 구슬픈 숨결이지
나는 해남의 갯벌에서 조개 줍던 손이고
제주 오름 위에 누운 검은 바위의 침묵
다듬이 소리에 밤을 지새우던 어머니의 등이자
경상도 말투처럼 투박해도 따뜻한 마음이기도 해

이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것처럼 세상의 곳곳에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있겠죠.

브라질 다음은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