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by 갈매나무



스페인어 원어민 친구들과 함께 언어를 공부할 때 종종 그들이 묻곤 했다. '이, 가와 은, 는의 차이는 뭐예요?' 나는 대답했다. '문장에서 강조하려는 게 무엇인지 미묘한 차이를 그 조사로써 드러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모두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면 '저'는' 홍차 마실게요'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주문한 음료들이 나왔어요. 한 명이 물어봐요. '누가 홍차 시켰어요?' 저는 말하겠죠. '제'가' 홍차 시켰어요.' 만약 누군가 저한테 아메리카노를 준다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저'는' 홍차 시켰는데요'.' 그럼 갸우뚱하며 한국어를 배우는 원어민 친구는 예문을 만들어서, 이렇게 쓰면 되는 건가요' 하고 묻는다. 그런데, 어색하다. 내가 설명해 준 대로 은,는, 이, 가를 적용한 건 맞는데, 그 문장에서는 그렇게 쓰면 왠지 오해를 살 것만 같다. 그래서 문장 구조를 다시 상세히 설명해 주며, 이때는 이게 어울린다, 저때는 저게 어울린다를 알려준다. 마지막에 내리는 결론은, '그 조사가 들어간 문장들을 많이 보세요. 감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어요.'로 끝난다.


브런치에서 연재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그냥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보다 한층 엄격한 기준으로 글을 고치고, 또 고치게 된다. 그러고 나서 남편과 친구 몇에게 글을 보여주며 어때? 이해가 돼? 공감 안 되는 부분은 없어? 하고 묻는다. 평가를 듣고 나면 고치고 또 고친다. 문장의 배열, 단어, 그리고 조사의 쓰임 하나하나까지. 그들의 조언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여 수정을 해나간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여준다. 어때, 이제는 조금 이해가 돼? 탄식을 자아내는 답이 돌아온다. 응, 이해가 더 잘 되는 건 맞는데... 솔직히 처음에 쓴 글이 더 나아.


초안은 낙서장과 같다. 마음 가는 대로 써놓고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읽어본다. 경험과 감정이 서로 구분 못할 수준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것들을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

경험에서 집중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감정의 흐름을 설명하는 데에는 큰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경험 부분을 대폭 수정한다. 집중적으로 묘사된 부분을 간략하게, 다섯 줄에서 두 줄 정도로 줄인다. 그리고 내가 왜 그 감정을 느꼈는지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경험의 다른 부분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이러니 그 경험에서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이해는 잘 된다. 하지만 고민에 휩싸인다. 내가 정말 그 감정에 대해서 다루고 싶어서 이 글을 쓴 건가? 무참하게 도려낸 경험의 세 줄은 의미가 없는 거였을까? 하지만 글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글쓰기에서는 맥락이라는 게 중요하니까, 한 문단 한 문단을 독립적으로 보았을 때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의 완성도니까.


그렇게 잘라내기, 붙이기 작업을 숱하게 하고 나서야 글이 완성된다. 만족스럽지만 가슴 한편에 찝찝함이 얼룩처럼 남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글이 개선의 결과물이니까. 다시 초안으로 돌아간대도, 이미 어색하다고 생각해 버린 문장들을 그대로 두는 것을 난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무엇이 나은 선택일까, 생생한 느낌을 그대로 써내려 간 초안, 정교하게 다듬고 또 다듬어진 결과물. 브런치북의 프롤로그를 발행하기 전까지 수십 번은 수정을 해나갔던 것 같다. 만약 발행 기한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난 고치고 또 고쳤을 것이다. 어느 선에서 타협을 해서 기한을 맞춘 것일 뿐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본다. 이게 내가 쓴 글이 맞는지, 내가 정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헷갈린다. '글을 쓰면서 나도 몰랐던 감정을 발견한 것'이라며 적당히 나를 다독인다. 이렇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고민이 된다. 엄마의 구두 편을 쓰고 나서도 내 응축되어 있던 감정이 너무나 절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했다. 분명 이렇게 쓰는 게 맞는데, 올바른 글쓰기의 방법이라고 배우기도 했는데, 저번엔 이렇게 쓰니까 더 글이 좋았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쓰니까 이상하지.


지금까지는 글쓰기에 긴장감이라는 게 없었다. 쓰고 싶은 대로 썼을 뿐. 그런데 '내 안의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정해놓고 연재를 시작하니, 글 하나하나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모든 글을 관통하는 큰 주제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까지 더해져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살리는 것? 아니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간의 통일성? 지금까지 글을 읽을 때 평가하는 자세로 읽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바빴던 평일이 지나고 여유롭게 카페에서 박상영 작가의 소설을 읽는데, 문득 한 문장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분의 글 자체를 평가하는 입장에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고, 그분의 문체는 너무나 친밀했다. 거부감 없이 늘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듣듯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그 한 문장에서 어색함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한번 읽고 나면 며칠 동안이나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게 만드는 여운이 있는데. 책을 덮고 나서 고개를 들면, 세상이 순간 조용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렇다면 나도 내 글을 너무 평가하는 입장에서 읽는 게 아닐까. 그냥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써 내려가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전혀 다듬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완벽하게 쓰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걸까? 저렇게 쓰는 게 맞는 걸까? 하면서. 물론 좋은 글쓰기를 위한 어느 정도의 공식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글마다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은, 는, 이, 가를 쓰듯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어민 친구에게 답했듯 스스로에게 답해본다. 많이 읽고 많이 써보세요. 그러면 알 거예요.


이 글은 전혀 수정을 하지 않은 투박하고 거친 글이다. 얼마간의 자유로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