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가는 길.
집을 나와서부터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졌다. 어제 날 화나게 했던 일이 오늘 아침까지도 울컥울컥 올라와 침울했는데, 걷다 보니 작게 응축된 화의 덩어리는 이미 풀어져 바람에 흩어진 후였다.
조금 일찍 나왔더니 지하철을 한두 대 놓쳐도 출장 시간에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덕분에 마음도 여유로웠다. 낙엽과 같은 색의 니트를 입어서일까. 작은 바람에도 소소하게 움직이는 낙엽같이 내 발걸음도 가벼웠다.
당산에서 합정으로 가는 길, 지하철은 너른 강 위를 달린다. 강가에 늘어선 작은 집들이 햇볕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어느 집 옥상에서는 널어둔 이불이 가을볕에 포삭하게 마르고 있었다. 오늘 밤 누군가는 고된 하루 끝에 저 이불과 하나가 되어 아 이게 행복이구나, 할 것이다. 나도 저 옥상에 돗자리 하나 깔고 누워 볕을 쬐며 마음에 묵은 습기를 날리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은 계절을 닮아가나 보다. 여름을 닮아 치열했고 또 한차례 앓았던 내 마음은 비울 것들을 비워내고 추수할 준비를 한다. 올해는 스스로에게 너그럽자는 깨달음, 행복은 내 안에 있다는 깨달음과 같은 열매가 내 안에 여물고 있다. 나는 지금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향하지만, 높은 건물들 사이 골목에도 볕은 내린다는 것을 안다. 선선한 공기 속 내리는 감사한 햇살로 열매들이 완전히 익으면,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가을의 선물이다.
2023년 10월 11일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