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e> 제작한 김진혁 한예종 교수, 그와의 기억
2009년 가을, <다큐 프라임>의 작가로 EBS에 첫 출근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방송의 아이템 자료를 수집하고, 인터뷰할 전문가를 섭외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인터넷과 책을 뒤져서 인쇄와 복사를 반복하고, 리스트에 있는 전문가에게 전화를 돌리기도 하루가 모자랐다.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 선배 작가와 담당 피디는 이미 퇴근을 하고 자리에 없었다. 아까부터 사무실 구석에서 잔뜩 얼굴을 구기고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검은색 가죽 재킷을 걸치고 인상을 쓰며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그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나도 그에게 딱히 말을 건넬 일이 없었다.
▲ 5분의 미학 <지식채널e>
방송의 프리뷰 자료를 파일에 끼워서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묻는다. 인상이 살짝 펴지긴 했지만 여전히 무뚝뚝한 그 남자다.
"저녁 먹었어요? 밥 먹으러 갈래요?"
"네."
누구나의 첫 출근이 그렇듯, 의욕이 넘쳤던 나는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었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생긴 것이 반갑기도 해서 피디인지, 작가 선배인지, 엔지니어인지 모를 그 남자를 따라 나섰다. 오므라이스를 파는 식당. 처음 만난 두 남자의 어색한 저녁 식사 자리다. 그래도 마주 보고 같이 밥을 먹게 될 사이인데, 두 사람은 별로 말이 없었다. 대화를 억지로 이어나가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딱히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EBS 프로그램 많이 봐요?"
"네."
"어떤 프로그램?"
"네"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EBS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20대 시청자는 많지 않다. 나 역시도 그랬고, 당시 EBS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다큐 프라임>, <스페이스 공감>, <지식채널e> 정도였다. 그래도 <지식채널e>는 평소에 자주 챙겨봤고 많은 곳에서 교육 자료로 쓰이고 있으니, 아는 척 하기 딱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막내 작가로서, 나의 일자리에 대해 제법 알고 있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식채널e>, 아시죠?
"<지식채널e>요. 아시죠? 스타일 죽이잖아요.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메시지는 확실하고, 자막 화면도 좋고. 음악도 세련되고."
"그래요?"
"근데 그 <지식채널e> 담당 피디, 한국피디대상 작품상도 타고 상이란 상은 다 받았는데, 인사 발령 나서 부서 옮겼다는데요?"
"아... 그게 나야. 밥 맛있다. 그치?"
이름은 알고 얼굴을 몰랐던 <지식채널e>의 연출, 김진혁 피디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가 맛있다는 오므라이스. 나는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민망했다. 그러나 그 후 늦은 저녁마다 그와 둘이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매 순간이 나에게는 일종의 동기 부여이자 최고의 즐거움이었음을 고백한다.
프로그램 <지식채널e>는 꽤 유명하다. EBS가 어디에 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몰라도 <지식채널e>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5분 분량의 프로그램 한 편이 방송국 전체의 이미지를 어떻게 바꿨는지 잘 보라. 기존 EBS 방송이 갖고 있던 핵심 키워드가 '교육'이었다면 <지식채널e>는 그것을 '지식'이라는 세련된 이미지로 만들었다. 50분짜리 <다큐 프라임>을 짧게 줄여서 전달하자는 기획 의도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수차례의 시행착오와 진화를 거쳐 이제는 대한민국 방송의 최고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지식채널e>에는 시선을 잡아끄는 독특한 영상과 구성 기법이 있고, 현란한 화면 효과와 움직이는 자막이 있다. 거기에 쉴 틈 없이 강렬하게 쏟아져 나오는 배경 음악은 프로그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지식채널e>는 김진혁 피디와 제작진들이 할 수 있는 100%의 노력과 재능이 담겨 있다.
5분의 미학 <지식채널e>로 세상과 소통하다
그가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재미'와 '이야기'다. 실제로 김진혁 피디는 수다스럽지 않지만, 굉장히 유머러스하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이야기의 핵심을 짚어내는 섬세함이 있고,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있다. <지식채널e>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그 방송을 보고 이야기하는 시청자들이 적었던 EBS의 한계를 가능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말' 좋은 프로그램은 아무리 꽁꽁 숨어있어도, 기어이 찾아내서 보고야 만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실 <지식채널e>의 가장 강력한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지식채널e>의 이야기에는 새로운 정보가 있고, 획기적인 사고가 있으며 대중의 공감이 있다. 멀리서 보면 잔잔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불편한 진실이 있다. 나는 그 이야기와 진실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해 나가기 시작했다.
'우주의 역사 150억 년을 1년으로 줄이면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온 시간은 1초'
이 한 문장을 포인트로 삼아 '1초'편이 완성되었고, 이후 <지식채널e>에서 핵심 문장은 메시지가 됐다. 그리고 정치, 문화, 사회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참신하고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명확한 주제를 전한다.
프로그램의 대중성을 견고하게 구축할 수 있었던 '박지성' 편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청자의 공감도 많이 이끌어냈다. 사실 이미지와 영상 자료가 부족해서 자막을 화면처럼 구성해 역동적인 감정을 표현했던 것인데, 오히려 주제를 전달하는 데 있어 탁월한 효과를 가져왔다.
▲ 부족한 영상을 화려한 자막으로 영상을 꾸려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지식채널e> '박지성편'
김진혁 피디는 지식을 알아갈수록 똑똑해졌다는 생각보다는 잘못된 지식을 알아온 자신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지도'편에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지도인 '메르카토르 지도'가 사실은 왜곡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간 그 지도를 보며 미국과 유럽이 넓다고만 생각했던 본인으로서는 충격이었다고 하면서, 대륙의 면적과 거리 등이 실제 지리와 흡사한 지도인 '페터스 지도'를 제시했다.
엄청나게 작아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비해 극단적으로 길게 그려진 아프리카를 보면 분명 어색함과 불편함이 느껴진다. 우리들의 고정 관념 속에는 유럽은 선진국이고 아프리카는 미개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노예 해방의 아버지'라 불린 링컨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식채널e>는 링컨의 노예 해방은 남북 통일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고, 그가 노예를 해방한 이유가 오직 '휴머니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두 명의 대통령' 편에서 전달했다.
'헬렌 켈러' 편은 그녀의 20세 이후의 삶이 왜 전기에 등장하지 않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장애를 극복한 영웅 뒤에는 역사가 숨겨온 '사회주의자'라는 면모가 있었던 것이다. <지식채널e>는 그렇게 아는 만큼 더 보이게 했고, 치열한 고민을 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김진혁 피디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섬세한 연출력과 드라마 문법의 이야기 전달 방식이 궁금하다면 <지식채널e>의 '스프가 없네' 편과 '어린 김탁구' 오재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단편 드라마 <육손이가 네 친구라도 되냐>를 추천한다.
불통의 시대, 김진혁 피디는 김진혁 교수가 됐다
▲ 김진혁 PD는 김진혁 교수가 되었다.
<지식채널e>는 점점 더 진화했고, 제작진들은 더 많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보기 원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시의적인 아이템을 다뤄야 했고, 사회적인 이슈에 포커스를 맞춰야 했다. '황우석과 경마 저널리즘' 편은 시의적인 아이템을 다루되 기존 보도와는 다르게 언론의 경마 저널리즘적 태도에 초점을 맞췄다. 방송은 황우석 신드롬의 허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광우병 이야기를 담은 '17년 후' 편도 우여곡절 끝에 전파를 탔다. 놀랍게도 방송이 나간 후 재방송을 취소한 사측의 단호한 입장을 번복하게 만든 것은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힘이었다.
사실 '어린이 청소년팀'으로 인사발령이 난 김진혁 피디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도 어쩌면 '17년 후' 덕분(?)일지도 모른다. 교육 방송을 떠나 작가로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거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를 찾았다. 항상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반민특위'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독립 유공자와 그 후손들의 현재와 문제점을 다뤄보겠다고 했다. 역시 그답다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였고, 기존의 방송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엔딩을 보여주겠다고 해서,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3년 봄, 8월 방송 예정이었던 <다큐 프라임> '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 제작이 중단될 위기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일반적인 기획안 공모와 심사를 통해 제작됐고, 이미 70% 이상을 진행한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식채널e>가 '17년 후' 편을 제작하고 변화가 있었듯, 김진혁 피디는 다시 수학 교육부로 인사 발령이 났다. 그리고 얼마 뒤, 김진혁 피디는 EBS 퇴사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 임용 소식을 전해왔다. 11년간 EBS에 머물렀지만,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광우병' 이야기는 가능했지만, 현 정권에서 '반민특위' 이야기는 불가능했다. 참으로 지독한 불통이다.
불통의 시대, 김진혁 피디는 그렇게 김진혁 교수가 되었다. 최근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교수라는 호칭이 참 어색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도 아직은 피디라고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하단다. 미래의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꽤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도 김진혁 교수의 피디 본능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는 현재 대안언론 <뉴스타파>의 '미니 다큐 Five minutes(파이브 미니츠)'를 통해 여전히 날 선 이야기와 울림 있는 감동을 전한다.
주변 사람들의 부탁이나 제안에 대부분 'YES(네)'라고 답하는 그는 비상식적인 사회와 불통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NO(아니오)'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지식채널e>로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했던 것처럼, 앞으로 대중들이 변화하고 고민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실에 보다 더 가깝게 다가서려는 김진혁 피디, 그리고 이와 뜻을 같이 하는 언론들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불통의 시대를 소통의 시대로 만들 때까지 말이다.
"다시 돌아갈 순 없다. 설사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 하더라도 앎과 깨달음을 돌이킬 순 없다... 그것이 없는 <지식채널e>는 더 이상 <지식채널e>가 아니기 때문에. 그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구하는 것." -책 (<감성지식의 탄생> 김진혁/ 서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