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성공보다 중요한 건 '사람'
경험으로 보면, 남자 방송작가는 대부분 호기심과 놀림 대상이 되곤 한다. 그만큼 만만하다.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면서 의미 없는 농담을 툭툭 던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처리하기에도 하루가
빠듯하다. 예정된 방송 날짜는 제작진에게 일말의 여유나 융통성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이 얼마 남지 않은 팀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담당 피디는 편집을, 선배 작가는 대본을 쓰느라 정신이 없고, 조연출과 막내 작가는 추가 촬영과 CG(컴퓨터 그래픽) 효과 의뢰, 자막 작업을 마무리한다. 더불어 새로운
아이템을 선정하고 자료를 수집한다. 첫 촬영을 할 때만 해도 느긋하다가, 방송이 코앞으로 닥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너희들이 먹여 살리는 거야"
영상에 음악과 자막, 내레이션을 더해 최종 완성된 방송이 나가고,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내 이름을 보면 그동안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모두 보상받는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혹여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채택돼 방송되는 날이면 크레딧의 이름을 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짜릿함을 느낀다.
조연출이 넘긴 촬영 테이프를 정리하고, 프리뷰(촬영 영상을 문서로 옮기는 작업)를 하느라 정신없는 나에게
나이 지긋한 팀장님이 다가와 물었다. 평소에 칼퇴근 하는 것으로 유명해 얄미워 했던 사람이다.
"너, EBS의 3대 히트 상품이 뭔 줄 알아?"
"3대 히트 상품이요?"
"그래, 3대 히트 상품. EBS를 먹여 살리는."
EBS의 히트 상품이라. 수능 방송? 다큐 프라임?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별생각 없이 EBS에서 잘 나가는 프로그램 몇 개를 이야기했다.
"<다큐 프라임>, <지식채널e>랑, <스페이스 공감>이요?"
"틀렸어. 가장 중요한 마지막이."
"아, 교육방송이니까 수능 방송?"
"아니."
"그럼요?"
팀장님은 전에 없던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방귀대장 뿡뿡이."
"풉" 하고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웃기려고 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은 세상 최고로 진지했다.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프리뷰를 준비하는데,
그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방귀대장 뿡뿡이>가 EBS 최고 히트 상품일진 몰라도, 그걸 만드는 건 니들이야. 니들이 여길 먹여 살리는 거라고. 고생 많다. 고마워."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도, 피곤에 절어있는 조연출도. 오늘도 변함없이 제 시간에 맞춰
칼퇴근하는 뒷모습이 웬일인지 얄미워 보이지 않았다. 방송을 잘 모르는 막내 작가와 조연출을 상대로 종종
하는 이야기인지 몰라도, 울림이 있는 한마디였다. 팀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지금의 나보다 더 치열하게 현장을 뛰어다니고 밤새 고민을 했을 사람이다.
람보르기니도 타고 바지선도 타고
EBS의 히트 상품인 <다큐 프라임>에서 내가 얻은 것은 사람 말고도 여러 가지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곳에
가볼 수 있을까?' 혹은 '이런 일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을 경험한 것이다.
그것은 방송 작가를 하면서 얻은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김진혁 피디와 함께 했던 <원더풀 사이언스>의 '슈퍼카의 비밀' 편에서는 람보르기니의 '가야르도'와 '무르시엘라고', 포르셰의 '911터보' 시리즈 같은 슈퍼카에 직접 올라보기도 했다. 세련된 디자인과 폭발적 배기음을 갖춘 슈퍼카의 최고 무기는 짜릿한 스피드다. 그렇게 슈퍼카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는 대신, 폭설이 내린 한 겨울에 자동차가 달릴 도로를 찾고, 주인들을 수소문해 일일이 설득해야 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다큐 프라임>에서 나와 가장 많은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연출은 피디 'Y' 다. 그는 피디라기보다는 학자 이미지에 더 가까웠는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아이템을 꾸준히 연구하고, 영상에 직접 더빙을 얹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무뚝뚝 한 듯하면서도, 씨익 웃는 모습은 피디 Y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조연출과 막내 작가에게 많은 일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당시 담당 조연출 손한성 피디(지금은 예능 토크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석유 시추선인 두성호 위에서 살다시피했다. 좋은 영상을 담기 위해 거가대교와 이순신대교 구조물 꼭대기까지 오르는 등 그동안 찾지 않은 다리가 없다.
덕분에 나도 바지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 거대한 케이슨 (수중 구조물이나 기초를 구축하기 위해 수상에 만들어진 중공 형태의 구조물)에 쏟아지는 몇 톤의 수력 발전 영상을 취재했다. 게다가 팀의 가장 막내인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하는 각 기관의 대표 수장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했다.
담당 PD의 충격적인 죽음, 그리고 신해철
그렇게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더 마치고, 나는 SBS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막내 작가와 조연출 놀리기를 무척 좋아했던 피디 Y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면서 다독여 주었다.
"이놈아, 거기 가서 사고 치지 마라."
그가 나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정말 고마웠다. 물론 씨익 웃는 트레이드 마크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에 들려온 피디 Y의 사망 소식. 그의 죽음 앞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놀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피디 Y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지병의 악화다. 하지만 노조는 그의 죽음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살인적인 업무 강도 때문이라고 반발했다. 실제로 2009년 겨울부터 사교육비 감소를 목표로 한 학교 교육 본부 등 새로운 분야가 생겨나 업무량이 증가했다고 한다. 당연히 평일 야근과 주말 근무가 늘어났다. 언제나 그랬듯 피디 Y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잊히고, 더는 그와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그해 겨울, 1인 밴드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이진원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끝내 사망했다. 다음해 겨울에는
<안녕, 프란체스카>와 <느낌표>를 집필한 신정구 작가가 시트콤을 준비하던 중에 간경화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들의 작품은 대단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삶은 그렇게 처절했다.
2014년 10월 27일, 마왕 신해철이 떠났다.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다. 뮤지션 자체로서도 굉장히 훌륭했을 뿐 아니라, 소신 있는 발언과 행동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신해철과 그의 음악을 좋아한 팬들이 그렇게 많았나 할 정도로 애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힘이 들면 잠시 쉬고, 업무가 많으면 분담하면 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우리는 그렇게 훈련되어 왔다. 잠시 쉬었다 오는 이들을 느긋하게 기다릴 만큼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과로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 혹은 그의 가족은 모든 것을 증명해야 한다. 회사를 상대로, 병원을 상대로. 그리고 차가운 세상을 상대로 말이다. 하지만 아픈 것과 힘든 것을 법적으로 의료적으로 증명하기는 무척 어렵다. 모든 증거와 자료는 회사와 병원이 가지고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느냐.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래서 사회적인 제도와 감시가 존재하고,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프로그램보다 중요한 건 '사람'
피디 Y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뒤, 회식이 있었다. 사람들의 농담에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고, 못하는 술도 억지로 마셨다.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긴장한 것인지는 몰라도 가슴이 답답했다. 워낙 술을 못하기도 했고, 프로그램을 옮기고 나서 첫 회식 자리였기 때문이다.
회식을 마치고 사람들은 자리를 옮긴다며 모두 나갔고, 나 혼자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눈의 가장 자리부터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회식을 하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던 것은 피디 Y의 죽음 앞에서 너무도 태연하고 즐거웠던 나 자신 때문이었다. 맘껏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하고, 한참을 흐느끼면서 자리를 지켰다.
방송국 앞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주인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차분하고 덤덤하게 한마디를 건넨다. 마치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는 듯.
"방송 끝났어? 걱정 마! 곧 개편이니까 새 프로그램 하면 되지."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EBS 팀장님이 <방귀 대장 뿡뿡이> 이야기를 했을 때 만큼이나 당혹스러웠다. 심각한 상황에서 "풉" 하고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나는 그냥 웃어버렸다. 그렇게 웃고 나서야 엉엉 소리를 내어 울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갖고 있는지 몰랐을 정도로.
피디 Y의 마지막 당부처럼, 다행히 나는 사고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프로그램이 방송국을 먹여 살리지만,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물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기억하자. 그래도 삶보다 먼저인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