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by 메리앤

“과장님이 우리 너무 불쌍하다고 안타까워하세요.”

사무국장의 말에 다들 소리 내어 웃고 있지만 당황스러움이 미세하게 스쳐가는 단체 직원들의 눈빛을 나는 봤다. 옆에 있던 이 과장이 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이 분이 관심이 많으셔서 안타까우셔서 그래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얼른 가고 싶다. 길어지는 배웅인사에 이 얘기 저 얘기 나오고 있었다.


오늘은 단체 평가하러 가는 날이다. 우리 재단에서 돈을 받아서 사업을 하는 단체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실제로 단체를 방문해서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이미 서류로 제출했지만, 서류로 확인 못하는 것들, 단체 분위기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것이다. 이 팀으로 옮긴 지 이제 몇 개월 안 된 나는 시큰둥했다. 가라니까 가야지 뭐. 다녀오면 일 많이 밀릴 텐데 가기 귀찮다고 생각하며 단체에서 제출한 서류를 그제야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 과장님, 이번에 처음 평가 나가시잖아요. 여기 사업계획서랑 결과보고서 보시고요. 회계평가 해주시면 돼요. 인건비밖에 없어서 편할 거예요. 저번 중간평가 때 혜영샘이 다녀왔는데 급여는 나가는데 실제로 그 사람들이 일하는지 아닌지 파악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위주로 봐주시면 돼요.”

“회계 증빙 다 구비했으면 맞게 쓴 거겠죠, 뭐.”

이 단체가 우리 재단에서 지원받는 돈은 1년에 3600만 원. 적다. 그래도 3년 지원받으면 뭐 괜찮을 것이다. 단체는 1년에 3600만 원 2명의 인건비로 쓰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부족한 부분은 자부담을 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공유오피스에 입주해 있는 단체는 구석 자리에 4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고 있었다.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사무국장이라고 소개했다. 먼저 자료를 보고 잠시 후에 인터뷰를 시작하기로 한다.


“저희는 상담을 주로 해요. 법률 지원도 연결하고요, 생계비도 지원하기도 합니다. 직원은 저 포함 5명이에요. 저희가 20년이 넘은 단체고 그럭저럭 버텨오다가 코로나 때 축소되고, 작년부터 재단의 지원금 받아서 운영하는데, 지원금 받는 이 기간이 저희 단체에는 가장 좋은 시절이예요."

이과장과 나, 사무국장은 다같이 웃었다. 우리가 지원하는 돈이 적지만 이 단체에게는 가장 좋은 시절을 만들 수 있다니, 신기했다. 돈을 잘 쓰면 시민 단체에게 이렇게 큰 도움이 된다.

“직원분 월수금 출근일로 되어 있던데요..” 우리는 직원이 실제로 일하는지 평가를 하기 위해 슬쩍 물었다.

“근로계약서에는 그렇게 적을 수밖에 없어요. 저희 기부금에서 2명 인건비 지원받고, 재단에서 2명 인건비 지원받고요. 나머지 한 분 변호사님은 다른 재단에서 인건비 지원받고 계시고요.”


근로와 봉사가 합해진 형태였다. 나는 어질어질했다. 영어는 기본이고, 법에도 빠삭해야 하는 딱 봐도 고급인력인데, 번역업무 때문에 주말에도 집에서 일하는데 이렇게 계속 돌아가고 있다고? 저 사무국장은 몇 살이지? 결혼은 했을까?

“난민 생계비는 얼마나 줘요?”

“보통 60에서 100이요.”

단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더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는 못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삼켰다. 남의 집 살림살이에 너무 깊게 참견하면 안 된다.


같이 간 이 과장이 단체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자 사무국장의 얼굴은 빛났다.

“저희는 모르고 있었지만, 저희 활동을 계속 알아봐 주고 계셨다는 게 너무 기쁘네요.”

단체는 앞으로 우리 돈을 지원받는 남은 2년 동안 뒤 없이 달려가보겠다고 했다. 인건비를 지원받아서 한두 명의 인건비를 올려주는 게 아니라, 인력을 더 충원했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과중한 업무로 직원들의 소모가 심하지만 일단 2년 이렇게 달려가보겠다는 것이다. 그게 단체를 운영하는데 맞는 방향일 수도 있다.


계속 안타까운 표정으로 걱정을 하던 나는 마지막 배웅인사에 단체 직원들 앞에서 결국 저 말을 듣게 된다. 이 분이 우리 단체 불쌍하다고 했어요. 나는 그들이 대단한 일을 한다고, 투신하는 열정에 대단하다고, 누구나 이런 일은 못했을 거라고 당신들만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치켜세워야 했을까.


“국장님,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그리고 다음번에는 생계비지원사업을 추가로 더 신청해 보세요. 제가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과장의 말에 사무국장은 환하게 웃었다.

“네 조심히 가세요”


“제가 단체 많이 다녀봤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정말 열악한 것 같아요. 복지관에 가보면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램이라서 돈이 허투루 쓰이는 거 같거든요. 여기는 기부금이 정말 소중하게 쓰이잖아요. 이런 분들 보면 제 열정이 살아나고 그래요. 시민단체는 확실히 다르긴 해요.”

봄이 오려는 듯 따뜻해진 날씨에 몸이 가벼웠다. 날씨는 좋지만 나는 숨을 들이쉬고 말한다.

“저도 예전엔 기부금이 소중하게 쓰이는 게 좋았는데요. 언제까지 이렇게 빡빡하게 살아야 해요. 단체가 지속되겠어요? 몇 년 투신하다가 소진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그러는 거겠죠. 돈도 좀 여유롭고 인력도 충분해야 새로운 것 좀 해보고 할 텐데요. 전 이제 너무 빡빡하게 굴리는 거 지쳤어요. 극강의 효율을 뽑는 거요. 늘 곧 죽을 거 같은 사람만 도와줘야 하나요. 조금 더 줘야 그 사람이 기를 펴고 크지 않겠어요?”


내 얘기였다. 나는 이제 그런 삶을 살기가 싫다. 머릿속에는 늘 돈을 얼마까지 써야 하지, 돈을 언제 얼마까지 모아야 하지? 이렇게 우리가 모으면 몇 년이 걸리는 걸까 라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푼 돈 몇 십만 원에 조마조마하며 난임 시험관 한 차수씩 해가던 게 벌써 2천만 원 가까이 들었다. 3년 반동안 쓴 돈이다.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렇게 돈을 쓸 줄 알았다면 마음이라도 졸이지 말 걸. 나 좀 그만 괴롭힐걸.


타인의 삶을 그렇게 불쌍하게 본 건 미안하다.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니 그렇다. 그들은 본인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었던 거 아닐까. 사무국장과 직원들의 눈빛이 생각나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그렇게 불쌍하게 볼 거면 기부라도 해줘야 하는 건데. 기부 신청할까? 회사주소로 가입하면 나인줄 알겠지.

그러면 구겨졌던 내 체면도 사는 것이었다.

단체 홈페이지를 둘러본다. 재정 보고도 다 올라와 있다. 사람도 몇 없던데 이런 것까지 다 올리려면 정말 힘들겠다 싶었다. 홈페이지를 쓱 둘러본 후에 기부 신청 페이지를 눌러 CMS 신청서를 열었다.


3년만 할까. 그래 평생은 못하고 3년만 하자. 3년에 36만 원이네? 1년만 하자. 그리고 몰래 기부를 끊자.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서야 기부신청서를 적기 시작했다.

기부신청을 거의 다 적어놓고 잠시 기부입력창을 바라보다가 창을 닫아버렸다. 내키지 않았다. 단체 사업을 응원하는 건 아닌데, 단지 내가 말 한마디 잘 못 꺼내서 기부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미션캠프에 책 출판, 책 리뷰 미션 보증금 사기를 당한 120만 원은 아깝지 않았지만, 일 년에 12만 원 기부금은 아까웠다. 내가 이렇게 기부에 인색한 사람이었나 새삼 놀라며 얼른 나의 기부이력을 떠올려본다. 그래도 환경 쪽에도 기부를 몇 년 했었고, 지금은 우리 재단과 보육원에만 하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까지 기부에 인색한 사람은 아니잖아? 그들에게 미안했지만, 금세 잊겠지 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늘은 나쁜 놈 하자, 내 행동이 못났다고 자책을 했지만 지갑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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