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와 남편

by 메리앤


6,239,160원.

이번 달 나의 카드값이다. 평소 200만 원대로 나오던 카드값이 세 배나 더 나온 건 내가 무려 300만 원짜리 소파를 샀기 때문이다. 신혼살림 장만도 아니고, 새 아파트 입주도 아니고 결혼한 지 5년 가까이 되어서 뜬금없이 큰맘 먹고사는 소파라니. 우리의 첫 소파는 이사오며 네이버에서 구입한 30만 원짜리 2인용 소파였다. 소파 하나에 몇 백 아니 몇 십만 원이 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소파와 함께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계속 실패하는 시험관 시술, 길어지는 남편의 실업, 쩍쩍 갈라지는 마른 논 같은 회사 조직 문화. 적은 월급을 쪼개 저축해야 하는 빠듯한 가계.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답답함, 무력감을 느낀 지 어느새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작은 소파에 몸을 구겨 넣고 있는 남편 꼴을 보니 궁상맞아 보인다. 구질구질하다. 더 이상 이대로 살기 싫다. 그래, 소파를 바꾸자.


“너 아직 직장 안 구했지? 여기 와서 일할래?”

남편의 형은 남편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마흔 전에 기술직으로 이직한 아주버님은 몇 년 만에 자리를 잡고 남편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남편은 형의 조언대로 실기 자격증까지 땄지만 20대 신입들에게 나이가 밀렸는지 연락 한 곳 오지 않았다. 남편은 형의 제안을 수락했다. 일 년만 여기서 경력 쌓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형이 믿을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걸 왜 간과했을까. 아마도 우려일 뿐이라고,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데 믿을만하지 않겠느냐고. 우리는 믿고 싶었다. 티 내지 않았지만 간절했다. 기회는 어디서든 어떻게든 올 수 있다고 믿었다.


마음에 드는 소파를 발견한 건 동생집에서였다. 전세계약이 끝나자 동생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며 소파를 장만했다. 올케와 가구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고, 전시품을 사 비싼 소파를 그나마 저렴한 가격으로 샀다고 말했다. 가격은 말해주지 않았다. 같이 있던 엄마 아빠가 미쳤다고 말할 것 같아 가격은 입에 올리지 않은 듯했다. 그 소파로 말할 것 같으면 두 명이 다리 뻗고 누울 만큼 크다. 기역자로 배치했다. 앉는 부분이 일반 소파에 비해 넓었다. 소파가 거실을 반 이상 차지해서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앉아보니 무척 편했다. 부러웠지만 가격 때문에 포기했었다. 하지만 이번 설에 다시 가보니 소파가 너무 마음에 든다. 동생네와 같은 소파를 따라 산다고 올케가 내 욕하지 않을까. 브랜드와 구매한 방법을 물어보았다. 이번엔 소파를 살 예정이라 주의 깊게 마음에 새겼다.




"형네 안된다고 다음에 하자고 하네. 이력서 다시 써서 구해야겠다. 미안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회사에서 남편의 카톡을 받았다.

남편의 실업기간은 9개월째 접어들었다. 새벽 4시부터 3시간 쿠팡 택배 알바를 하고, 오후엔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자거나 티비를 봤다. 실업급여가 8개월 나오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흔들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실업급여는 끝났다. 남편은 취업을 해야 한다며 택배 알바도 그만두었다. 하루 종일 노는 날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력서를 넣은 한 곳에서 면접을 보고 싶다고 했으나 남편은 도도하게 다른 곳에 가기로 되어있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형한테 1년이라도 경력 쌓게 해달라고 해. 책임지라고 해. 사람을 쓰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았데? 다른 것도 아니고 취업을 쉽게 취소하는 사람이 어딨어. 자기가 먼저 전화해서 입사 취소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잖아.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데. 됐고, 1년 안 되면 6개월이라도 알바라도 써달라고 해. 알바 경력이라도 있어야 이력서 들이밀 수 있을 것 같아.” 입사 취소 연락을 받고 3주 내내 참다가 면접 보러 오라는 곳 한 곳이 없어 나의 인내심은 밑바닥을 보였다.


동생이 산 소파의 브랜드는 ESSA.

동생네 집을 다녀온 바로 그 주 주말, 우리는 남양주로 향했다. 남양주에 에싸 리퍼매장이 있다. 토요일 오전 10시 차를 타니 드라이브하는 기분이라 신났다. 신나게 들떠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우리는 돈 없는 개털이었지만, 몇 백만 원짜리 가구를 쇼핑을 하러 가니 내가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신혼살림 장만하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는 신혼 초에 혼수를 장만하지 않았다. 새 집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녹물 나오는 재건축 아파트에서 살림을 차린 부부였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었다. 남들은 돈 없어도 빚내서 신혼가구를 사지만, 난 그러긴 싫었다. 살면서 살림을 하나씩 장만하는 재미를 알고 싶었다. 물론 돈이 많았다면 나도 새로운 집에 새로운 가구를 한 번에 세팅했을 것이다. 새 집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내 인생. 하지만 살면서 하나씩 장만하는 재미를 알고 싶다는 말은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허름한 집에 살아도 내 집이니 애착이 있고, 퇴근하면 밥 해 먹고 주말엔 장을 보는 일상이 좋았다. 비싼 가전가구는 없어도 상관없었다.


헌 부부에서 신혼부부가 된 느낌으로 매장을 둘러봤다. 우리가 원하는 크기의 소파는 최소 400만 원부터 시작했다. 할인한 가격이다. 몇 백만 원을 한 번에 태워야 하는 입장이 된 우리는 소파 재질, 소파 용어에 대해 물 먹는 스펀지처럼 직원이 말해주는 모든 정보를 흡수했다. 남양주 매장과 리퍼매장을 둘러본 뒤 광명 AK플라자 리퍼매장에 방문한다. 이제 소파에 대해 반 전문가가 된 우리 둘. 쓱 둘러봤지만 마음에 드는 건 이미 다 팔린 상태였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빵과 커피를 주문한다. 나는 노트북으로, 남편은 핸드폰으로 소파를 찾기 시작한다. 남편이 네이버 쇼핑에서 10만 원씩 금액 한도를 높여가며 한 땀 한 땀 검색해서 드디어 찾았다. 2,999,000원! 이게 최선인가요? 네, 최선입니다.




경력을 쌓게 해 달라는 남편의 말에 형은 며칠 후에 사무실로 나와보라고 했다. 형의 눈치를 보며 부드럽게 말하는 남편의 모습에 복창이 터질 듯했지만 표출할 수는 없었다. 서로 예민한 시기에는 조심해야 한다.

형은 업계 네이버까페에서 구인공고를 찾아보라고 알려주며 눈에 띄는 구인글 하나를 캡처해서 던져준다.

'성실한 분 모십니다.'라는 제목의 구인글은 반가움과 동시에 의심도 들게 했다. 성실만 본다는 건 나이가 많은 사람도 된다는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대놓고 성실한 분을 찾지 싶기도. 아니면 뺀질거리는 직원한테 많이 당했나? 몇 문장으로 나는 그 회사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형이 알려준 네이버까페에도 구인공고는 몇 개 없었다. 형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만 던져줬다.

다음 날 성실한 사람 구한다는 회사로 전화하니, 이력서를 메일로 제출하라 한다. 남편은 이력서를 제출했다.

이틀이 지나도 회사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오빠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나 봐.”

“... 다들 내 등쳐먹으려고 하고.”

남편의 자조 섞인 말에 웃었다. 우리가 바보였어. 형을 믿다니. 밤 9시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걸으며 우리는 허탈한 마음을 나눴다. 정말 이 세상에 아무도 없나요, 우리 남편 도와줄 사람이? 밤하늘을 보며 기도인지 한탄인지 모를 마음을 쏘아 올렸다. 그날 밤 나는 새벽 1시까지 구인사이트를 뒤적거리고, 남편은 다음 주부터 할 알바를 찾아보았다. 다가오는 설 택배 알바였다.


남편이 찾아낸 최저가 사이트에서 카드할인까지 받기 위해서 급하게 롯데카드를 발급받았다. 일시불로 할까 할부로 할까, 할부로 하면 카드할인을 받지 못한다. 주문창이 넘어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결제를 마쳤다. 4~6주 후에 설치가 된다고 한다. 배송이 꽤 늦어 애가 탔다는 후기 덕분에 우리는 마음 놓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소파 배달일이 정해졌다. 2월 6일 금요일. 남편이 그전까지 취직을 안 했으면 좋겠다.




“혹시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지원서를 넣는 분이 많아서 확인차 여쭤봅니다. 진심으로 지원하실 생각이 있다면 연락 주세요.”

남편은 문자를 받고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성실한 분을 모신다던 그곳이었다. 남편은 옷을 골라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만진 후에 나에게 셀카사진을 보내 확인받는다. 남편은 오후 3시에 면접을 보고 나왔다. 회사에서는 성실해 보여서 연락했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남편의 면접후기. 들뜬 남편을 보니 분위기가 좋은 듯했다. 곧이어 남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한다고. 사실 마음속으로 나에게 가장 먼저 축하를 보냈다. 축하한다, 고생 정말 많았다. 하지만 내 고생을 드러내면 남편의 실업기간을 견뎠다고 생색처럼 보일까 봐 자제했다. 남편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말없이 크고 화려한 축하 이모티콘을 나에게 보낸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축하일 테지.

그날 밤 우리는 갈빗집에서 맥주를 들이키고 남편은 속이 뻥 뚫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집에서는 '취직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작은 케익의 촛불을 껐다.

"형이 알려준 곳에 취직했다고 얘기했어?"

"아니. 얘기하면 잘난 척할까 봐 안 했어. 자존심 상하잖아."


소파가 도착하는 날은 이번 주 금요일. 면접 보고 합격한 날은 수요일.

집안 분위기가 바뀌고, 거실을 조금 더 넓게 쓸 테고, 더 이상 우리는 몸을 구겨 소파에 넣지 않아도 된다. 서랍을 침대방으로 옮기며 천을 깔고 내가 좋아하는 관상용 책을 깔아 놓는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새로운 집이 된 느낌이다. 이제 내 취향대로 소소하게 꾸밀 것이다. 남편은 면접 본 부장님과 잘 맞는 것 같다고 신났다. 희망이 피어오르는 우리 집. 신혼부부가 된 기분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