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의 손글씨
선미는 연필로 종이에 글을 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이제는 어디에나 있음에도, 선미는 오래된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지킨다. 복고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의 인물도 그러하다. 평범하게 보이나 어딘가 상처가 있을 것만 같은 인물, 학수가 나와서 시인과 음악가의 소질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성장 영화이다. 학수의 주변 인물도 평범하면서 전형적이다. 지고지순하게 학수를 사랑하지만 세련되지 않은 선미, 거칠고 투박하지만 뒤끝이 없는 용대, 화려하나 순정은 없는 미경 등 인물이 평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유쾌하면서도 시시하지 않다.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웃음들이 이어진다. 그 이유는 이야기가 조금씩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데 있다. 손글씨로 돌아가면. 손글씨는 뒤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 오로지 전진,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고치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적는다. 나는 신비롭게도 손글씨로 쓰면 지우고 다시 적는 문장이 줄어든다. 종이만 책상에 있어서?필체와 거기에서 뻗어가는 문장을 더 곱씹어보기 때문에? 연필로 종이에 글을 쓰는 시간에는 이상한 안정감이 생기는데 마음에 든다. 선미라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려고 설정된 손글씨가 엉뚱하게도 나에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