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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르바 Jul 21. 2017

검정치마와 내 음악하는 친구들

우리 존재 파이팅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꺼진 불 속 조용한 관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주세요

옛 친구와는 가벼운 이별
다음 주면 까먹을 2절
믿지 않겠지만 별이 되긴 싫어요

난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기 싫은걸요
그대 알잖아요 우린 저들과는 너무 다른 것을

난 배고프고 절박한 그런 예술가 아니에요
내 시대는 아직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된 걸요

검정치마 3집을 자주 듣는다. 지하철에서 한 동안 꺼내지 않던 이어폰을 끼게 한 음악이다. 검정치마의 음악이 좋은 이유야 수백가지겠지만 개인적인 이유는 음악이 날 것 그대로라서다. 멜로디, 가사, 목소리 모두 담백함 그 자체로 그냥 음악자체가 매력발산이다. 이번 앨범에 대해 대중들의 반응은 "역시 검정치마"다.


근데 요즘에 나는 검정치마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내 음악하는 친구들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뭉쳐다니던 친구들 중 2명이 음악을 하고있다. 이전에는 더 많았는데,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직업을 전향하고나서 2명만이 남았다. 이 중 한 놈은 락밴드에 드러머가 됐고 한 놈은 힙합음악을 하는 래퍼다. 


첫번째 놈은 고등학교 들어가서 느닷없이 밴드부에 가입하더니 2학년 때 아예 학교를 예술고등학교로 전학가버려렸다. 어릴 적부터 팬클럽이 있을만큼 범상치않은 외모였기에 밴드부에서도 보컬을 해야했지만 노래가 워낙 젬병인지라 드러머를 한다. 몇 년전에 KBS에서 락밴드용 쇼미더머니를 만든 적이 있는데 이 때 방송도 타고 그러길래 나는 "이제 얘가 유명인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그 프로도 그 친구도 뜨지못했다. 그 때가 그 친구 음악생활에서 제일 화려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요즘은 매일같이 인스타그램에 자기 드럼 치는 영상을 #개인레슨 #인친 #소통 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면서 자기PR에 열심히다.


나머지 한 놈은 HOT, 젝스키스가 세상의 모든 음악이었던 초등학교때부터 랩을 한 놈이다. 나는 이 친구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친구가 됐는데, 자기 말로는 중학교 때 이미 홍대에서 공연을 하던 실력자였다가 어느 순간 그 바닥에서 어울려다니던 무리를 멀리했고, 그 바람에 힙합씬에서 멀어졌다고 말하곤 했었다. 매사에 어두움이 가득하고 겉돌던 녀석이라 그럴만 했겠다고 여기고 말았다. 놀라웠던 건 이 한량같은 놈이 군대에 입대한 후 갑자기 부사관을 지원했다고 말했을 때였다. 다들 나라 망칠 일 있냐고 세금이 아깝다고 욕을 했었는데 8년이나 복역하고 최근에 전역했다. 이 놈이 어떻게 버텼냐면 집에 손 안 벌리고 음악을 하기 위해 군대에서 돈을 모았고, 필요한 음악장비를 사 모았다. 퇴근하고나서는 매일같이 곡을 만들어왔다. 




사실 학창시절에 나는 음악하는 친구들을 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야자시간에 친구들과 창가쪽 끝자리에 모여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뭐라도 되는 마냥 으쓱했고, 주변에 다른 친구들보다 특별하다고 느꼈다. (요즘 말 '힙'하다고 느꼈던거랄까) 때로는 그들의 음악가로서의 모습을 동경하며 함께 공연을 해보겠다고 베이스를 배운 적도 있고, 랩 가사를 썼던 적도 있다. 결국 모두 끄적대다가 끝나버렸지만 그 당시 그런 행위들을 통해 학교생활에 치여 머물데 없는 표현의 욕구를 해소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 이 때 생긴 음악적 취향이 지금까지도 내가 듣는 음악 장르에다가 심지어는 현재 라이프스타일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는데, 그걸 보면 이 친구들이 내 인생에 참 많이도 관여했다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새 삼십이란 나이를 먹었다. 이제 이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대신에 대단함을 느낀다. 언제 갖게 될 지 모르는 대중의 관심을 기다리면서, 돈 없어 친구들과 맘편히 만나는 것도 어려워하며서, 부모님의 걱정은 빚보다 무서워하면서, 그러면서도 좋은 음악 만들면 인정받겠지 자위하며 밤새 악기를 두드린다. 그렇게 십대 때부터 삼십이란 나이를 먹을 때까지 음악을 위해 살아 온 친구들이다. 십여년을 달려왔는데...꾀부린 적도 없을텐데...아직도 이 친구들이 부족한걸까. 


요즘 친구들이 떠오르는 건 창업을 하겠다며 직장을 뛰쳐나왔기 때문일테다. 불과 4개월정도 성과없는 일을 했을 뿐인데 마음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정말 어떻게 십여년을 견뎌냈을까 아직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친구들이 방구석에 자욱히 깔린 담배연기를 벗어나 세상의 빛을 봤으면 좋겠다. 이 친구들의 십여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부모한테도 친구들한테도 다시 멋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친구들 공연에도 자주 가볼까한다.  


밴드 C8 드러머 이시우

https://www.instagram.com/rsw0912/ 

래퍼 '격(KYUK)'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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