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통신 기자 살레하 모신이 쓴 달러전쟁을 보면 미국 재무부는 세계 시장에서 달러가 갖는 지위를 강화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아왔다. 강한 달러는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미국 주도 글로벌 커버넌스를 상징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달러 지위가 약화되면 세계 무대에서 미국이 갖는 영향력도 약화될수 밖에 없었고 재무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상황을 막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장이 백악관 주인 자리를 돌아가며 차지하는 가운데서도 재무부 스탠스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세계 각국에서 달러를 갖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 재무부 장관의 넘버원 임무였다는 것이다. 미국이 글로벌 경제 세계화를 주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월가와 재무부, 연준은 큰틀에서 달러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미국이 달러를 무기로 외국 기업이나 정부를 제재하려 할 때 재무부가 종종 신중모드로 나오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책을 보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상대로 초강력 경제 제재를 가하려 할때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달러에 대한 신뢰 약화를 이유로 신중론을 들고 나왔다.
옐런은 토요일 이른 아침에 안보 화상회의를 통해 백악관 상황실 회의 내용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바이든에게 재무부가 좀더 시간을 들여 그처럼 대대적인 경제 제재 조치의 잠재적 역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이 그같은 경제 제재 조치를 핵무기급 선택지라고 칭하는 것은 분명 달러의 대대적인 무기화에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옐런이 크게 우려한 바는 러시아 자금이 제재를 통해 러시아의 손이 닿지 못하도록 동결된다면 외국 중앙은행들이 미국은 자산을 보관할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에 따라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릴 위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자신이 옳은 결정을 내렸으며 신속한 조치가 필수적이라고 확신했다.
재무부 입장과 달리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달러를 무기화하는 행보를 강화해왔다. 최근들어 이같은 흐름은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다.
달러 무기화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에 그 싸앗이 뿌려졌고 2011년 9.11 테러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2022년에는 도를 넘어서 극단으로 치달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더 무겁고 역사상으로도 가장 큰 부채 부담을 안고 있다. 달러가 패권을 잃는다면 미국은 과거에 국가 재정을 잘못 운영해 무너진 초강대국이나 제국과 마찬가지로 붕괴될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 재정 운영에 실패해 몰락한 사례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달러가 세상을 바꾸었지만 이제는 세계가 달러를 바꿀 수도 있다. 달러의 지배력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국경 밖에서 비롯하기 보다 미국 스스로가 연속적으로 자초한 정책적 실패에서 비롯한다. 무엇보다 달러에 명백히 큰 타격을 날린 존재는 미 의회다.
미 의회는 1960년 이후로 78번이나 부채 한도를 끌어올렸다. 시간이 흐르고 나라가 점점 더 양극화됨에 따라 부채 한도의 상향 조정은 입법무가 휘두르는 정치적 무기로 변질되었다. 어뜻 일상적으로 보이는 이 정치적 힘겨루기의 여파는 2023년에 이르기까지 부채 한도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극적인 갈등이 일어난 2011년에 비해 위험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정당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자 투자자들은 미 의회가 부채 한도를 올리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게 되었다.
책을 보면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과 같은 것도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자위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미국 우선 주의는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도 미국 우선주의 강화에 따른 달러 약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달러 약화가 현실화될 경우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미국이 세계 준비 자산을 소유한 나라라는 지위를 잃는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은 세입에 맞게 절약하며 살아야할 것이며 크게 상승한 차입 비용을 감당해야할 것이다. 한마디로 재정 지출을 축소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이 높아지면 실물 경제도 그 영향을 받아 주택, 자동차, 교육 비용이 한층 더 상승할 수 밖에 어없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미치는 경제 외교의 선택권이 제한되어 지정학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메커니즘이 약화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이 달러 지위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크게 2가지를 이유로 꼽는다.
미국은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며, 그에 따라 달러 또한 계속해서 세계 최고의 통화로 남을 것이다.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달러를 대체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위안화는 중국 정부가 급격한 활율 변동을 방지하기 위해 자본 통제에 의존하는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제한을 받는다. 이는 투자자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일종의 정부 개입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중국은 법치주의가 뒷받침되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므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시장도 미국 만큼 개방적이고 투명하지 않다. 그외 대안으로 언급되는 유료화가 세계 준비 통화가 되기 어려운 까닭은 그만큼 큰 경제를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료화 표시 채권은 미국 채권에 비해 융통성과 유동성이 크지 않다.
현재 미국이 지난 두번쨰 강점은 달러를 우회한 채로 양자 무역을 강화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달러를 포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점점더 명확하게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도와 러시아 사례를 살펴보자. 푸틴의 달러 접근이 차단된 후 인도는 루피화로 러시아 석유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루피화를 비축해봤자 쓸 일이 없다. 루피화는 달러 만큼 쉽게 교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는 다시 달러로 러시아에 석유 대금을 치르고 있다. 달러를 원하지 않는 곳에서도 달러를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수많은 달러 반대 움직임이 일어났어도 변화를 기피하는 금융 시스템의 특성 때문에 전세계 일일 거래 규모의 약 90퍼센트가 달러로 이루어진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달러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나라와 기업들이 아직도 달러에 의존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4퍼센트를 차지하면서도 전세계 생산량의 25%를 담당하는 나라다. 심지어 제조 부문의 약화와 정치적인 혼란이 일어났어도 이 수치는 4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달러전쟁은 미국 대선이 끝나기 전 쓰여졌다. 재집권하는 트럼프는 관세 인상, 이민 규제 등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하려는 모양새다. 달러 체제의 문제를 발판으로 등장한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달러가 예전과 같은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걸까? 또 미국 재부부와 연준, 월가는 미국 우선주의와 비트코인 프렌들리한 정치 환경의 확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달러 지위가 약화되는 시그널이 발생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책을 읽고 알게된 사실을 많지만, 궁금한 점들도 많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