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가 확바꾼 바둑판, 이세돌-신진서-커제 9단의 선택

by delight

소설가 장강명씨가 쓴 '먼저 온 미래'는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이후 달라진 바둑 판을 보여주며 앞으로 다른 분야도 바둑판에서 벌어졌던 것과 비슷한 장면들이 꽤 많이 연출될 것임을 예고한다. 자신이 업으로 삼고 있는 문학도 AI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 전문가가 아닌 저자는 프로 바둑 기사들과 인터뷰를 기반으로, AI가 바둑판에 몰고온 변화들을 보여주고, 변화에 대한 생각도 공유하는데, 테크 쪽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어서 꽤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알파고 등장 이후 AI는 바둑판을 확 바궈놨다.


프로기사들은 고성능 컴퓨터와 그래픽카드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그래픽카드의 연산 속도가 중요했다. 바둑 도장들도 서둘러 훈련용 컴퓨터 구입에 나섰다. 하지만 누구나 바둑 AI 프로그램을 집에 설치할수 있으니,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연구생들은 굳이 도장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AI 수업을 거부하는 것은 순위 하락을 의미했다. 바둑 AI 프로그램들이 선인간 프로기사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추천수다. 다음에 어떤 수를 두는게 좋을지 추천을 해주는 것이다. 한수만 추천을 해주는게 아니라 여러 수를 동시에 추천하는데, 각 수를 뒀을 때 이길 확률이 함께 표시된다. 둘째는 형세 판단이다. 어떤 상황에서 흑과 백 중 어느 쪽이 얼마나 우세한지를 수치로 표시해준다.
9788962626605.jpg


바둑 기사들도 마찬가지. 알파고 이후 에전처럼 해서 바둑판에서 버티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줬다. 원하든 원치 않든 변화는 생존에 필수였다. 모든 바둑 기사들이 같은 변화를 택한 건 아니었다. 책을 보면 이세돌 9단, 신진서 9단, 중국의 커제 9단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 이들 3명은 알파고 등장 이후 바둑판에서 달라진 프로기사들의 삶을 보여주는 상징들이다. AI로 인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이 취하는 자의반, 타의반 선택도 바둑과 비슷한 부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저자는 생각하는 같다.


이세돌 9단은 은퇴를 선언했다. 책을 보면 AI가 등장 아후 프로 바둑 기사들은 감정적으로 많은 많은 혼란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인공지능 때문에 바둑을 그만둔 기사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세돌 9단이다. 이 9단은 알파고와의 대국 뒤 3년이 지난 2019년 11월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은퇴 이유로 인공지능을 꼽았다. 바둑을 예술로 볼수 없어졌다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자존심과 좌절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는 "AI라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 느끼는 허무와 좌절이 은퇴의 직접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특히 알파고와 대국할때 딸을 대국장에 데려왔는데, 딸 앞에서 당한 패배라서 더욱 아픔이 컸고 그게 은퇴 결심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현재 세계 최강자인 신진서 9단은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기회를 확대한 케이스다.


신진서 9단은 자타 공인 세계 최강자로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의 뒤를 이어 바둥 황제의 길을 걷는 중이다. 하지만 신진서 9단에게는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같은 선배 기사들과의 큰 차이점이 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젊은 기사들은 모두 인공지능의 바둑을 연구했으므로, 신 9단을 인공지능의 바둑을 배우는데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그는 그런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특징이라고 내세웠다. 신 9단은 언론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으로 공부하면서 "특히 포석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는다. 복기할 때도 유용해서 훌륭한 복기 선생님이 생긴 것 같다"라고 밝혔다.


알파고와 대결해 3대 0으로 지면서 울먹이고 이후에 몸져 눕기까지했던 중국의 천재 기사 커제 9단은 이세돌, 신진서 9단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실력파 프로기사지만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향력도 상당하다.


커제는 여전히 정상급 기사이지만 중국의 마이크로 블로그 웨이보에서 2025년 3월 현재 540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왕홍이기도 하다. 웨이보에서 보는 커제는 다른 젊은 남성 인플루언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커제의 웨이보에는 그가 머리를 깎거나 친구들과 당구를 치거나 고양이와 노는 모습을 주변 지인이 찍어준 저화질 영상과 그가 화웨이의 최신 태블릿 PC로 자신의 대국을 검토하는 모습을 잘 편집한 고화질 영상이 함께 올라온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그는 포르쉐 911 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웨이보에 F1 경기 관람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샤오미의 고성능 전기차인 SU7 울투라 구매를 인증하기도 한다. 반면 패배하면 새벽 5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바둑 공부에 매달하는 현재 세계 1위 신진서 9단은 차량은 커녕 운전면허 조차 없다.
바둑에 예술에서 스포츠가 될때 프로기사들은 절대적 탁월함이라는 목표를 포기 하게 된다. 바둑이 승부에서 팬덤 비즈니스로 변한다면 기사들에게 상대적 탁월함이라는 목표 조차 흐릿해질 것이다. 상대적 탁월함 경쟁에서 밀려나 있는 하위권 기사들은 시간과 노력이라는 자신의 자원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정상급 기사들도 같은 유혹을 받을지 모른다.
9788962626605.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AI에이전트 결제 레이어로 x402표준을 주목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