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생각하고 기록하다.
회사를 나오고 보니 5월 말이다.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좋은 날이 많다.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체중을 신경 써볼까 하는데 이제 남는 건 시간. 더구나 이런 하늘의 날씨라니 그렇다면 매일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주도에서 풀빌라 리셉션으로 일하며 본 취업을 준비하던 시간에도 나는 늘 걸었다. 휴일이면 하루 늘 2만 보 가까이 아무도 없는 평일 오전의 올레길을 걸었다. 러닝화 하나 없어 패션화를 신거나, 심지어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뱀이 나온다는 산길을 슬리퍼를 신고 걷다가 동네 할망에게 혼나기도 했다. 500ml 물 혹은 아이스커피가 준비물이었다. 갑자기 만난 깜깜한 산길이 무서워서 울며 뛰어간 적도 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크게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문득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은 늘 사진찍어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 친구에게 보냈다. 그때 느꼈다. 나는 걸을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가만히 있을 때 꼬여있던 고민의 실타래가 걷는 순간만큼은 별게 아니라는 걸, 그러다 때론 쉽게 풀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서울에서도 여전히 나는 동네를 걷는다. 12시간 근무에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오늘 하루가 공허한 밤, 이 직장이 최선일까 고민이 많은 날, 결국 퇴사하고 난 지금도 거의 매일을 걷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보통 그렇게 걸음마다 잡아 온 잡념들을 틈틈이 핸드폰 메모장, 나와의 카카오톡 채팅방, 텀블러에 적어 수집한다. 이제는 그날의 걸음걸음을 정리하고자 한다. 걸음 기록, 오늘의 걸음을 이렇게 남긴다.
오늘의 걸음이 쌓여
나의 거름이 되리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