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그중 짧지만 아름답고 조용한 길에 다녀오다
Camino de Santiago
까미노 데 산띠아고
산티아고 가는 길
이미 우리나라에 유명해져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아름다운 스페인의 길이다.
생애 첫 회사생활을 마무리 한 뒤 숨 좀 돌려 보고자 머리를 굴리고 처음 생각난 곳이 바로 이 길이다.
이미 내 주변에 다녀온 사람들이 있었고 인터넷에 정보도 많았다.
하지만 아직 학교 일이 남아있던 내게 완주를 위한 한 달은 너무도 무리였다.
일부분만 하고 오기엔 좀 아쉽고....
그때 무려 까미노를 네 번이나 다녀온 자칭 까미노 마니아 지인에게 SOS를 친 건 최고의 찬스였다.
나의 일주일치 여유와 뭔가 하나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다'는 것!
마니아님은 바로 이 지도를 내게 보여주었다.
http://caminodesantiago.consumer.es/los-caminos-de-santiago/aragones/
스페인어로 되어있지만 한눈에 보였다. 6일 여정의 까미노, 산악지방인 아라고네스 지역을 따라 걷다 메인 길인 까미노 프랑세스(보통 한국분들이 다 걷는)에 이어지는 길이다.
인지도가 유럽에서도 높은 편이 아니라서 사람이 정말 없고 혼자 걷기 좋은 길이라 했다. 나중에 걸으면서야 이게 얼마나 사람이 없는 길인지 깨닫게 되었지만.......
완벽했다! 나는 매우 아름답다는 까미노 프랑세스의 Saint-Jean-Pied-de-Port를 꼭 가보고 싶었지만 모든 조건이 완벽했으므로 당장 스페인으로 출국하기로 했다. 5월에 결심하고 6월에 바로 출발!
가기 전에 구글링을 해보아도 외국분들 후기에도 아름다운 사진은 별로 없고 돌산.... 무더기뿐이라 좀 미심쩍긴 했었다. 하지만 한창 방황하던 시기라 명상하러 가자 하고 시작했더랬다.
그렇게 나는 까미노 아라고녜스(Camino Aragones) 순례자가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와 본 스페인
사진 찍을 여유는 없었다.
다른 순례자분들과 다른 곳에서 시작하기에 미리 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순례자 여권을 받고 시작점인 Somport로 곧장 떠났다.
Somport는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와 완전히 다르다.
생장은 마을이라면 Somport는 그냥, 국경선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역으로 지명도 불어식으로 '쏭뽀흐~'하고 읽는다.
가장 가까운 기차역 마을에서 쏭뽀흐 까지 가는 버스가 일찍 끊기기 때문에 정말 똥줄 타면서 환승에 환승을 거듭했다. 마지막 마을에선 심지어 스페인어도 못해서 의사소통 장애에 버스터미널을 찾느라 죽을 뻔.... 역장님이 곧 막차 끊긴다고 한 게 막차시간 5분 전이었는데 그게 마을 외곽 기차역이었으니 ㅠㅠ 내가 얼마나 죽을 것처럼 뛰었는지 ㅠㅠ
스페인 타임 덕에 늦게 출발한 건지 다행히도 버스를 타고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갔다. Somport는 종점.
아까의 사이트에서 각 etapa(우리말로는 단계? 스텝?이라고 하면 좋을까)를 클릭해보면 세부지도가 나온다. 보물 같은 웹사이트느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시작점인 쏭뽀흐는 해발 1630m로 피레네 산맥 위다.
버스를 타고 산속을 올라가면서 든 생각이 '아..... 내가 내일 이 길을 걸어서 내려와야겠구나....(좌절)'
무엇보다 도착 후 버스를 내리면 보이는 것이 단 한 채의 집이다. 끝.
마을이고 뭐고 없다. 구글 지도에 나오는 건물이 전부다. 저곳이 쏭뽀흐의 유일한 알베르게이자 까미노 아라고네스의 시작'점'이다.
그날 막차를 타고 온 건 한 스페인 할아버지와 나, 둘 뿐.
그 할아버지는 이미 여러 번 해봤는지 능숙하게 알베르게로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모르면 따라 하자.
다행히 영어를 하는 주인아주머니 (why you koreans are always kims? 네 저도 김씹니다)
알베르게에는 한두 사람이 더 있었지만 각자 따로 온 듯, 어두운 알베르게 식당은 매우 조용했고 하루를 꼬박 걸쳐 [인천-마드리드-사라고사-이름까먹음-쏭뽀흐] 여정을 거친 나는 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
한국에선 맨날 늦잠 자 더니 어쩜 여기선 바로 일어날 수 있을까? 난 참 신기함.
같은 방이었던 막차 할아버지는 이미 출발하고 없고 나는 내 배낭을 짊어지고 나의 까미노를 이제! 막! 시작하려고 했다.
알베르게 옆에는 프랑스 국경이 보였고 (팻말에 여기서부터 프랑스라고만 쓰여있음) 어제 알베르게에 있던 두 아저씨들은 자전거?! 를 꺼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긴 피레네 산 위고, 길은 꼬부랑이고, 아침에 보니 알베르게 바로 옆엔 계곡이 있었다!
음. 다들 자신이 있으니까 타고 왔겠지, 했는데 두 아저씨들은 빠르게 사라져 그 이후로 다시는 보지 못했다....
나 혼자 남아 피레네 공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산 위에는 아직 햇빛이 들지 않았고 상쾌함이 감도는 파란 하늘 아래 계곡을 따라 노란 조가비가 이어져 있었다. 이제 까미노가 시작한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던 일기예보와 달리 화창한 아침!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스페인 북부 산악지대 6월 날씨는 오전에 맑고 오후에 흐린 뒤 비가 온다고 했다. 신기방기.
숲길은 마치 하이디가 놀던 곳처럼 길 따라 야생화가 방글방글 피어있고 촉촉하게 젖은 흙길은 오로지 나만이 있기에 아주 천천히 음미하듯 시작했다.
처음이었지만 누구의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떡하니 문 앞에 붙어있는 까미노 표지판!
게다가 도로를 따라 걸을까 걱정했는데 순례길을 그 표지판 뒤에 보이는 나무 울타리를 따라 계곡 아래로 아래로 이어졌다.
여기서부터의 산길이 내 까미노 중 가장 아름답고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처음의 순간이 그렇듯이 기분 좋게 긴장한 그 상태로 주변의 공기, 아침 산새 소리, 계곡 물소리, 이슬의 차가움, 꽃들의 색, 산기슭의 빛나는 봉우리 빛, 이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피레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6월의 산은 꽃으로 그득했다.
예전에 읽었던 피레네에서 자란 식물학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곳에 산다면 누구나 꽃을 좋아하리.
큰 준비 없이 시작한 까닭인지 만나는 모든 것이 숨은 보물 찾기 같았고 나를 즐겁게 했다.
마치 천국을 걷는 것처럼 황홀하게 걷다 보면 저만치 노란 조가비가 보이는,
나의 첫날은 이렇게 순조롭게 시작했다.
2014년 6월
지금 그때의 사진을 보니 다시금 가슴이 쿵쾅거리고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다.
솔직히 이 길은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비밀처럼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조용함이 아름다움에 배를 더해주는 곳이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까미노 아라고녜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까미노와 다른, 고독한 순례자들처럼 혼자 걷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다음에 계속
ps. 끄레덴시알이나 알베르게와 같은 사항은 다른 분들이 자세히 설명해주시니 여기선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