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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우리 Sep 13. 2019

할아버지의 추석

올해 처음 친척들이 모이지 않았다

요양원이라는 곳을 태어나서 처음 가보았다.


#301동 2번째 침대

우리 할아버지는 아팠었다. 이제 할아버지는 자기 이름이 적힌 침대 위에서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잠을 자고, 모든 사람이 보는 곳에서 소변을 눠야했다. 그 상태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더 괴로울 것 같았다.

예전보다 기억력이 더 안 좋아지신 듯하다. 아니 정확히는 치매겠지. 내 이름도 모르시니까. 그냥 그게 놀랍다기보다는 그런 상황에서 연달아 “~는 아세요?”하고 질문을 받고 그걸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 심지어 성인 4명이 서서 자신을 에워싼 상태에서 - 상황에서 느낀 두려움과 당혹감, 불편함이 떠오른 그 표정이 너무 인상 깊었다. 솔직히 매우 슬펐다. 몇 번 눈물을 참았다.

“몰라-”하고 답하는 할아버지 얼굴이 내가 이걸 왜 모를까- 하는 표정 같고, 이 질문 자체를 괴롭고 귀찮게 느끼는 얼굴이었다. 내 손을 잡고 인사한 뒤에 정말 나를 똑바로 보시면서 (얼굴과 눈 한쪽이 일그러지신 거 같았다) 정말 모르겠어! 하는 말이 스스로도 정말 답답한 듯하였다.

환자들은 - 이분들을 환자라고 해야 할까 - 하루 종일 그 침대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산책은요? 하고 물으니 마치 금기어를 말한 것처럼 쉿! 산책은 없어. 하는 답변이 온다.


햇빛도 비 오는 날의 바람도, 이 사람들에게는, 이 생명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정말 샬레와 플라스크에서 길러지는 배지의 생명처럼 온전한 온도와 멸균된 장소에서 숨만 쉬며 단 1m도 움직이지 않은 채 살아간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제 6개월 차다. 옆 할아버지는 10년 차라고 했다.


마치 원재료 가공공장이나 쓰레기 처리장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예쁘고 말랑말랑하고 즐거운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진짜 세상의 일부를 목격한 느낌이다. 필요하고 있어야만 하는 세상이지만 누구나 일상에서 잊고 싶어 하는 곳.


내가 생각한 요양원은 아늑하고 여유로운 쉬는 곳이라고 상상했었는데 엄마 말마따나 “한번 들어오면 살아서 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정말 농담이 아니다.





#모두에게 평등하다
할아버지는 꽃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호남자였다. 34년생, 이렇게 할아버지 침대에 적혀있었다. 34년생이라니.

나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숫자다. 새삼 할아버지와 나와의 거리가 느껴진다. 그리고 80년대생인 나를 보며 내가 침대에 누워있을 때 18년생 내 조카가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물끄러미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읽었다. 아마 6.25에 사춘기를 보내고 가장 힘든 50-60년대에 나라를 세우는 시기에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으로 뼈 빠지게 일했을 것이다. 군사정권이 끝나던 때에 외삼촌이 최루탄 맞으며 거리를 행진하는 걸 참고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했을 것이고 은퇴하고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것을 보다가 쓰러지셨을 것이다.

문득 최근에 읽은 글 하나가 떠올랐다. 북유럽 할머니 한 분이 사랑에 빠졌는데 그 상대 할아버지가 AV배우 출신이었다는 것. 그 할머니는 왕년에 변호사였지만 노년의 삶이란 지난 시절과는 별개로 새로이 시작한다는 글이었다.


할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그 옆 침대 할아버지는 뭐였는지 모르겠다. 그 옆방 할머니도. 그저 지금은 요양원의 침대 1, 2, 3이다. 한 평생 어떤 삶을 살아도 결국 종착지는 이 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사실 살짝 안도감도 들었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이게 우리의 종착지임을. 그러니 뭘 하고 살아도 사실 괜찮다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물론 길바닥이 될 수도 있고 대학병원이나 럭셔리 요양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관계없이 내 몸과 뇌는 기능을 서서히 멈추고 작은 침대에서 누워있게 될 것이란 걸 보았다.





#잠을 잔다는 것

턱받이를 하고 한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엄마가 얹어준 반찬을 먹고 오물거리는 할아버지의 흰 머리칼이 송송난 뒤통수가 귀엽다고 느껴졌다.
치매에 걸리면 아기가 된다는 말도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아가처럼 먹었고 엄마의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한 것은 반찬이 맛있냐는 물음에 “이게 맛있어.” 한 거였다.


밥을 먹고 바로 누우면 소화에 안 좋을 거 같다고 엄마가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눕고 싶어 했다. 보호사분이 오셔서 이 어르신은 오래 못 앉아있는다고 바로 눕는다고 했다.


우리가 나올 때에도 할아버지는 누워있었다. 또 긴 밤을 혼자 누워서 자면서 지내실 것이다. 이 24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길지 어림되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신 지 6개월이 되셨다고 했다. 이 답답하고 즐겁지 않은 상황에 놓인 자신에게, 세상에게 얼마나 화가 날까, 외롭고 무서울까.

옆 침대의 할아버지도 누웠다. 요양원 3층은 정말 조용했다. 옆 방의 할머니는 이미 - 오후 5시 반에 - 잠이 들었다.


‘죽으면 그때 실컷 잘 테니까-‘ 법정스님의 책에서 읽었다는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왜 이런 때 떠오르는지.
요즘 세상이 무섭고 내일이 무섭고 사람이 무섭고 내 망할 것 같은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 무서워 잠으로 도피하며 고치 속 애벌레처럼 살고 있었다. 세상과 단절한 안전한 도피처.

곧 나에게 원하지 않더라도 하루 종일 잠만이 허락된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오늘 보았다. 섬뜩했다.
잠은, 그다지 자고 싶지 않아 졌다. 그 안락함이 답답한 감옥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팔다리가 성하고 아직 내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 순간에 이 세상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루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 내가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을 눈으로 본 뒤 심장 뒤편이 서늘해진 이 감각으로.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외롭지 않고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을 때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열심히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감각이다.

또 금세 무뎌지겠지만 그래도 또, 다시.







사실 오늘 나의 감정은 슬픔이다.

스스로의 삶에게 잘 살아보자 했지만.

오늘 한가지 작은 소원을 빌 수 있다면,

우리 할아버지 남은 생에 먹는 밥이 다 맛있고, 잠이 잘 오고, 몸 아픈 곳 없고, 무엇보다 외롭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내시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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