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우리 Jul 30. 2020

여름찬가

7월, 한 해의 배꼽에서

7월이 거진 지나서 이 글을 쓰는 게 우습지만, 지금 창 밖에 두꺼운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지는 것이 7월답다고 느껴졌다.


올해는 날씨가 너무 이상해서 이젠 ‘이상하지 않다’는 기준 같은 건 고리타분한 생각이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나에게 있어 제대로 된 여름 날씨란 초등학생 때의 기억이 기준이다.

7월 장마에 낮은 구름이 하늘을 며칠이고 덮을 때면, 온 세상이 비 바다가 되었다. 키 큰 경비아저씨가 씌워준 커다란 우산 구석에서 내 작은 우산을 접고 종종 걸음으로 아저씨를 따라 집 현관까지 걸어가던 그 시멘트 길이 떠오른다. 그날은 비가 어찌나 많이 오는지 나는 작은 이파리처럼 비바람에 젖다가 휙 하고 날아가버릴것 같았고, 경비아저씨는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올 장마는 7월 말이되서야 왔다. 그것도 1주일이 넘도록 비가 온단다.



처음 올 7월을 맞았을 때는 그 선선한 저녁과 상쾌함이 여름같지 않아서 놀랐다. 공기는 맑았고 하늘은 쾌청했다.

집 앞 벽돌담에 버드나무는 길게 새 가지들을 늘어뜨려 한 해 가장 강한 햇빛을 모조리 빨아들일 준비를 마치고 색이 점점 짙어져 갔다.

엄마는 오랜만에 자두와 천도복숭아를 사셨다. 작년엔 내가 집에 없어서 몰랐을 뿐인가. 혼자 살 때는 대충 씻어 베물어 먹던 것을 엄마는 정성스레 과도로 잘라 담아주었다. 새콤하고 시원한 과즙이 입안에 꽉찬다. 샛노랗고 투명한 과육이 기다렸다는 듯 터져나간다.

하늘에 여름 구름이 둥둥 떠있는 날이면 필시 노을이 예쁘다. 여름은 북반구에 태양 에너지가 가장 많이 쏟아지는 계절. 그 에너지는 대기와 대지, 바다를 달구고, 데워진 공기 덩어리들은 넘치는 힘으로 날아올라 구름을 낳는다.


그래서 난 여름의 하늘을 사랑한다.

그 넘치는 에너지가 만드는 역동성! 에너지가 넘치는 것들은 사랑스럽다. 성질 급하게 솟아오른 뭉게구름과 바다를 한껏 안아올린 짙은 비구름들, 세찬 바람을 찢고 내 눈에 비치는 번개와 심장을 때리는 천둥. 모두 너무나 사랑스런 여름의 아이들이다.


너른 구름이 하늘을 덮다 찢겨 문득문득 하늘이 비치는 반쯤 가려진 하늘인 날의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 태풍이나 큰 비구름이 몰려오기 직전이면 이런 날이 많다. 요새 사람들이 한강에서 그런 노을 사진을 올리는 걸 보면서 혼자 흐뭇해했다. 다들 이렇게 여름 하늘의 매력에 빠지는 거야-하면서.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여름 하늘의 사랑스러움은 뭉게구름이다. 넓은 지구의 입장에서 마치 점 뽑는 레이저를 맞듯 좁은 공간에 쏘여진 태양열이 급격히 공기를 데워 만들어진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존재는 ‘여름 방학’이라는 마법의 단어와 찰떡궁합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여름방학 장면이면 어김없이 나와 푸른 산 위를 장식해주는 이 구름, 적란운은 몽실몽실한 그 모양때문에 아마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백이면 백, 가장 좋아하는 구름 컬렉션에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게 장마가 가고 정말 더위만 남은 여름이 오면 수박이 그렇게 맛있다. 수박을 먹을 쯤이면 매미가 울고 신기하게도 잠자리가 하늘을 수놓는다. 잠자리는 가을 친구 같지만 여름 이맘때부터 보이더라.


수박과 아이스크림이 달콤해지는 8월이 온다. 이번 해는 미세먼지 없이 감동적일 정도로 깨끗한 공기가 가득하다. 아마 이번 8월도 청량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껏 높아진 하늘을 볼 수 있겠지.



당분간 그림을 올리는 것은 쉬려고 했는데 이번 여름이 너무 아름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능소화가 여름의 시작을 알릴 때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계절이 다시 온다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다. 맛있는 것들을 먹고, 그 계절만의 색감을 즐기고, 공기에 가득한 냄새를 한껏 들이켜본다. 그리고 다음 해 다시 만나는 날이면 어찌나 반가운지. 전혀 질리지 않는다.



여름은 그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다.

여름의 이 습하고 뜨거운 공기를 사랑한다.

그것은 살아있음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터질 것 같은 생동감이 하늘부터 땅 끝까지 뒤덮여 온 세상이 함께 힘찬 춤을 추는 것이다.

그 춤을 바라보는 것도, 비웅덩이를 참방 밟고, 여름 토마토를 먹으며 그 춤에 하나되어 어우러지는 것도, 모두 너무나 흥겹고 즐겁고 사랑스럽다.



아, 사랑하는 나의 여름!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에도 푸른 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