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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우리 Aug 01. 2023

Barbie can be anything

[영화 바비 후기] 이제는 좀 벗어나자, 바비도 그리고 켄도

간만에 글을 쓰고 싶은 영화, Barbie를 보고 왔다. 화제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과는 별개로 예매율 순위에서는 5위에도 못 들어가는게 의아했지만 2시간 동안 깊은 고민 없이 웃고 오그라들고 감동하고 울고 왔다. 뇌빼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이면서, 곱씹어 볼수록 삶의 깊이를 담은 영화.


영상은 아름답고, ost는 힙하고, 스토리는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비추고 있는데 역시 가장 먼저 대두되는 것은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 영화에서 연거푸 나왔던 뜨거운 단어인 - "가부장적"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강 스포가 있습니다 ===



바비랜드의 켄들이 쿠데타를 연 걸 보고 남초 커뮤에서 '그럴 만 했다'면서 이 영화를 까는걸 봤는데 감독이 의도한 게 현실세계의 미러링이라고 하면 그걸 제대로 느끼셨던 듯 하다. 웃긴건 그래서 현실의 여성들이 그렇게 불평등함을 경험할 수 있구나-로는 이어지지 않는단 점이지만.


결국 바비들이 없으면 안되는 켄들의 특성을 활용해서 전복시키는 것이나, 바비랜드의 켄들이 서로 싸우고 다투는 모습은 현실세계의 남자들의 모습(남성이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로써)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현실세계에서 자기 명의로 된 집을 갖지 못하고 남편들의 삶에 붙어 체제를 전복시킬 생각보다 서로 가진 걸 아웅다웅 빼앗으려 다투는 여자들 모습 같기도 하다(현실 여자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전달하고 싶은 것은 마고 로비로 대표되는 주인공 바비의 선택이다.

바비는 바비랜드를 떠나서 인간이 되고자 한다.

슬픔을 느끼고, 생각처럼 내일이 굴러가지도 않아서 패닉에 빠지기도 하는 그런 인간의 삶으로 기꺼이 간다.


왜냐면 그건 '의미'나 '상징'으로 남는 삶이 아니라 그 의미와 상징을 '만들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바비가 켄에게 전하는 메세지도 동일하다. 바비는 바비고, 켄은 켄이다. 켄은 너다. 켄은 켄이 소유한 말, 집, 차, 자격증 이런게 아니고 켄은 켄이다.


남녀 갈등은 남자는 ~다, 여자는 ~다라는 메세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성으로 씌워지는 다양한 경험의 차이가 갈등의 뿌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로는 서로의 삶을 경험하지 않는 한 백퍼센트 상대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건 성이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성은 역할을 부여해왔다. 켄은 뭔가를 소유하고 성취해서 나를 증명해내려고 하고 바비의 눈길을 받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켄의 스스로의 삶이 아닌 타인의 인정에 기댄 삶이다. 그런 켄에게 바비는 너 스스로의 삶을 찾으라고 한다.


주인공 바비도 완벽한 신체나, 아름다움, 흠없는 일상 등으로 상징되어지는 자신의 삶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 삶을 살고 싶은 거지.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남성은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런 역할 다 떠나보내고,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가 하고 던지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다.



그것이 더 또렷하게 나타나는 장면은 바로 영화 초반에 있다.

바비가 인간세상에 와서 처음 '아름답다'고 말하는 버스정류장에서 바비는 흔들리는 잎사귀 위로 부서지는 햇빛, 즐겁게 노는 아이들, 웃음을 터뜨리는 어른들, 대화하는 연인, 고뇌에 빠진 청년을 본다. 여자들만 보는 것도 아니다. 남자들도 본다. 그냥 '사람'을 본다. 그리고 옆에 앉은 할머니에게, You are so beautiful이라고 하며 감격에 찬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다.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우리의 희노애락은 빠져있을 땐 우리를 쥐락펴락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 그 과정 자체가 삶이었구나, 하면서 돌이켜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자기만의 의미를 가지고 이 세상의 어려움과 불확실함을 견디고 살아내는 이 '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바비는 이런 인간의 삶의 아름다움을 보고, 우리에게 바비=여성/남성, 켄=여성/남성 으로서의 역할놀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자는 말을 던지는 영화이다.



가장 바비다웠던 부분은 이런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마음'조차 허락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Barbie you can do anything. 그 슬로건 그대로, 창조주의 허락에 관계없이 바비는 원하는 모습 그대로가 된다.


세상의 많은 여성과 남성들, 남성과 여성들, 여러 사람들이 누군가의 허락이 없어도 자신이 원한다면 성 역할을 벗어던지고 자신으로서 살아가길 바란다- 는 이 메세지를 바비를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지 못했다면 어떤 영화일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ps. 본문에 쓴 제일 중요한 메세지를 제외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시원하게 외치는 장면들과 남성이 보조적인 수준에 머물고 여성 중심 서사를 시원하게 달리는 내용을 보면 유쾌하고 즐겁다! 너무 편파적인거 아닌가 생각도 조금 들었는데, 세상에 남성중심 서사가 수두룩 빽빽한데 여성중심 서사도 좀 있으면 어떤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도 귀찮은 남자들 생각 덜하고 즐겁게 농담도 따먹고 웃기도 하고 그럴 수 있으면 좋지 아니한가. 이런 영화들의 등장이 놀랍지만은 않은 것도 세상이 정말 변해가는 중이구나 하는 실감이 느껴져서 반가울 따름이다.




ps. ps. 사랑이 세상을 구원할 거라는 것엔 동의하지만 정말이지, 모든 것을 러브스토리로 엮지 좀 말자. 낄때 끼고 빠질때 빠지는 게 어떤가. 다시한번, 세상에는 그리고 삶에는 남-녀 말고도 중요한게 참 많다는 것! 켄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



Barbie can b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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