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Jan 02. 2021

나의 2020년에게

2021년이 시작되고 나서 적어 보는 회고

2020년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 덕에 정말 다양한 변화와 시도를 맞이할 수 있었다. 결과가 어떻다 라고 하기엔 아직 선택 후 밀려오는 파도를 온전히 받아내는 중이기에, 2021년의 내가 좋았다 나빴다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큰 풍랑을 받아들일 에너지와 마음가짐은 때때로 바닥났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눈물겹게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었던 시간도 있었다. 연초에 나는 안정을 목표로 삼았다. 심리적인 안정과 업무적인 안정 모두를 달성하는 게 목표였지만 늘 그랬듯 선택을 통한 모험들을 겪으며 틈틈이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2020년 나의 하루들을 배운 것과 느낀 것을 중심으로 가볍게 정리해본다.



1월ㅣ이제 물밖으로 나가볼까?


01. IP 사업부에서 커머스팀으로

신년을 맞아 회사에서 대대적으로 팀이 바뀌었다. 회사 내의 커머스를 담당하던 팀들이 합쳐졌다. PB를 하던 팀과 IP를 다루던 팀은 그 성격이 굉장히 달랐지만 마케터가 해야 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풍월량, 김블루, 하하하, 아리둥절, 무지막지 등 주요 IP의 상품 출시를 위해 어떤 스토리로 판매할 것인지 고민하며 지냈다. 동시에 노션의 신처럼 프로젝트 노션, 팀 노션들을 개편하며 다져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지만 그때 노션을 개편할 게 아니라 프로세스를 정리하는데에 조금 더 힘을 썼으면 더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약간의 개인적인 아쉬움.

그리고 이 친구는 코로나로 인해 여름에 판매하게 된다

02. 다시, 이없스

작년에는 이없스가 참 어려웠다. 5길을 운영하는 것도,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계속해서 강의를 만들어내는 것도 서투르다보니 흥미보다 부담이 컸다. 그래서 5길에 집중하고 이없스를 뒤로했다. 이유도 묻지 않고 이없스에서 나를 9개월 간 기다려준 운영진 분들께 감사해 종완, 류미, 무늬님과 만났다. 넷이 운영진을 함께 했던 것도 벌써 2년 전, 늘 만나던 을지로에서 만나 '우리가 알게 된 지 벌써 5년이 지났구나'라며 소회를 나눴다. 각자의 일에 눈을 빛내는 어른들, 언제 만나도 좋은 사람들. 그 날 덕분에 스무스하게 이없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을지로에서 만나고 그 다음주에 이없스에 갔다


03. 카드를 만들어볼까요?

19년에는 일에 몰두한다고, 5길을 한다고 반년 간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는데 1월 초에 강남역의 사푼사푼에서 해봄을 만났다.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여 오랜만에 겸사겸사 만났는데 구상 중인 프로젝트들에 대해 쭉 이야기하며 그중 하나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글쎄 올해의 잘한 일은 해봄의 큰 그림을 들은 게 아닐까. 커머스팀에서 상품을 팔고 있지만 상품을 판매하는 밸류체인을 습득하고 싶다는 생각에 뭘 하면 좋을지 고민했는데, 상품을 기획하고 만들고 판매하는 일은 내가 찾던 일과 닮아있었다. 그렇게 픽유어카드가 시작됐다.

+ 해봄이 기억하실 진 모르겠지만 그날 밥을 먹고 카페로 이동하다가 "성실님 사람들 만나면 기 빨리는 편이죠? 스터디할 때 그래 보이 길래"라는 얘기를 했는데 정곡을 찔려 뜨끔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잘 웃어주고 친절하게 대할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낯을 가리는 것이라 스터디나 모임에 가면 늘 힘들었는데 그의 눈엔 그게 보였나 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물 밖에 나간다면 더 이상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겠노라.


04. Boolunch 독서모임 시작

페이스북에서 눈여겨보던 마케팅 서적 읽는 모임에 덜컥 지원을 했다. 책도 굉장히 어려웠지만 모임도 굉장히 어려웠다. 비용이 비싼 데는 이유가 있었다. 최소 10년 차, 평균 15~20년 차의 임원 분들과 함께 독서 토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다. 5~7년 차끼리 책을 읽고 사례 이야기를 하는 모임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그렇지만 시간 맞추어 책을 읽어냈고, 과제도 하며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불된 어텐션>이 첫 번째 책이었는데, 책 자체는 번역체라 행간을 읽어내기 어려웠지만 토론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 올해 시작에 독서가 있었어'라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혹평을 했던 번역체의 그 책



2월ㅣ나름대로 잘 되어가는 것 같은데?


01. 브랜드 콜라보는 성공, IP 프로젝트는 홀드

라이센싱은 따로 담당하시는 분이 있었고, 브랜드 콜라보와 라이센싱의 차이가 어떻게 되는지 습득도 하지 못했을 무렵 덜컥 계약까지만 진행된 브랜드 콜라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담당 MD분과 합을 맞출 새도 없이 일을 해나갔는데 매출도 크지 않은 일에 왜 그렇게 열심히냐고 씁쓸한 말을 들었던 날도 있었다. 팀이 바뀌었는데, 나는 그대로인 것 같아서 조금 더 업무 범위를 넓혀가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그때 조금 뒤와 옆도 보며 달릴 걸 그랬다. 그래도 무신사에서 반나절만에 전상품을 완판 시키고 콘텐츠도 결과가 좋아 다행이었다. 이때부터 상품을 판매할 때 초반 빌드업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빌드업 집착증(?)이 생겼을 정도로 짧게는 1달, 길게는 3~4달 정도의 티징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IP 프로젝트는 대부분 홀드 되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여파로 인해 공장이 모두 멈춰버렸기 때문에.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은 여름에나 진행할 수 있었다. 기약이 없어 답답한 시간이었다. 주말을 할애해 IP 사업팀에서 주관했던 흔한 남매 뮤지컬에도 다녀왔다. 내가 만든 굿즈도 아닌데 19년 12월에 낑낑대며 후드티와 응원봉 굿즈 판매 준비를 해왔었기에 오프라인에서 사용되는 것을 보니 괜히 뿌듯했다.

커머스 하는 사람에게 현장은 스튜디오와 판매처가 아닐까


02. PB 상품을 마케팅?

이전 커머스팀이 만들었던 PB 상품 마케팅을 맡게 되었다. 자세를 교정하는 밴드들이었는데 상품 USP가 1년 전에 설정한 것이었기에 타깃 분석부터 새로 진행하여 상세페이지 구성부터 변경했다. 상품마다 달리 설정되어있던 옵션명을 통일하고, SEO를 위해 미팅을 하고. 아는 게 없어서 열심히 머리에 넣었다. 그리고 돈까스를 먹으러 다녔다. 왜 돈까스를 먹으러 다녔냐 하면 크리에이터의 IP를 담은 자체 PB 상품을 만들고 싶어서였는데, 판매 타깃이 니치에서 매스로 변경되고 판매해야 하는 상품이 10만 개 이상이 된다는 건 엄청나게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일단 상품 자체에 매력이 있어야 입소문과 재구매가 가능하니 열심히 먹어봐야 했다.


03. '그렇지만 글쓰기는 하고 싶어' 가입, 브런치 시작

리바이가 <잡스>를 쓰신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첫 주에 어떤 글을 쓸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용기를 내어 '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었다. 그 결심을 하기까지 6일이 걸렸는데 그때의 나를 칭찬하고 싶다. 덕분에 나는 내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에 대해 한 번 씩 더 짚어갈 수 있었다. 브런치는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통과되어 글쓰기 모임의 시작과 함께 브런치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자진해서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탈고의 고통에 휩싸였고, 이에 대한 보상은 3월에 찾아온다.

브런치에서 온 메일과 조 작가님의 응원


04. 픽유어카드 첫 플레이

해봄님과 만난 날, 이 프로젝트를 하는데 누가 또 필요할 것 같냐는 말에 카드에 구성을 할 수 있는 사람,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아닌 UI 디자이너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해봄이 빠르게 찾아온 사람은 다람. 그리고 자진해서 합류한 이네까지 네 명이 모였다.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2시간씩 미팅을 했는데 서로 집이 먼 탓에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달 반 만에 팀원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5~6주 간 계속 디벨롭했던 질문들을 인쇄해서 직접 플레이해보고 수정할 질문을 잔뜩 접었다. 첫 대면이었지만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라 편안하고 즐거웠다.

접힌 건 전부 수정 했다

05. 동생의 졸업 덕분에 사진관에서 첫 가족사진 촬영

엄마의 평생소원은 가족사진 찍기였지만 아빠는 가족사진 같은 걸 왜 찍느냐는 의견이셨다. 내 졸업식 때는 학교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말았는데, 동생의 대학교 졸업식에는 뭔가 특별한 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과 고민 끝에 학교 근처 스튜디오를 예약해 가족사진을 찍었다. 다 같이 어떤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게 굉장히 어색했다. 생각보다 아빠는 잘 웃으셨고, 엄마는 역시나 눈을 감으셨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어떻게 찍겠다느니 왜 찍느냐느니 티격태격이었지만 막상 사진을 받고는 기쁜 마음이었다. 그러게, 우리도 가족사진이 생겼네. 부모님 댁에 2개, 우리 집에 1개 작은 액자를 만들어 가져왔다. 기분이 묘했다.

보정 전 사진인데 보정 후 사진을 못 찾았다


06. 얼렁뚱땅 첫 재택근무

점심에 편의점에 다녀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움직임이 0이었던 기간. 집안에 있는 모든 쿠션을 등받이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좌식의자를 선물 받은 덕분에 업무 집중도가 향상됐다. 재택근무하면 여유 시간이 조금 더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퇴근과 점심, 저녁시간을 스킵하고 지내기 일쑤였다. 밥도 대부분 냉동식품으로 해결했고, 곧 끝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재택근무를 했던 것 같다. 나중에 닥쳐올 일도 모르고.

온갖 쿠션을 등받이로 사용해서 재택이 끝나고 모두 보내줘야 했다.



3월ㅣ어디있죠? 쉴 시간


01. 생-일

그동안 내게 생일은 지난 한 해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는가의 반증이었다. 그래서 늘 요란한 생일을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그것도 내 욕심인 것 같아서, 몇 명에게 지속적으로 친절하려 했다. 정확히는 마음을 전달하려 대뜸 연락을 하기도 하고, 대뜸 선물을 보내기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적은 인원에게 값진 선물을 많이 받았다. 예전엔 넓고 얕은 관계가 좋았는데, 점점 좁고 깊은 관계가 좋아지더라. 좁은 관계를 천천히 넓혀가야지. 뱁새가 할 수 있는 만큼 다리를 찢는 게 내 목표다. 아, 생일이 공휴일이라 회사 슬랙에서 축하받을 줄 몰랐는데 회사 슬랙에 등장한 건 엄청 크게 감동.


02.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모임

새롭게 시작하는 달 3월, 그렇지만 코로나가 심각했다 괜찮았다 하는 시기가 계속됐다. 그래서 홈파티가 유난히 많았다. 루샤네 집 홈파티도 있었고 먹 친구(?)들과의 홈파티도 있었다. 편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는 보통 부지런한 막내의 역할을 맡는다. 어떤 때의 내가 제일 좋으냐면, 이렇게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다.

오늘의 집 나가도 될 것 같은 루샤네 집


03. 코로나로 인해 모조리 밀린 론칭, PB에 집중

IP 프로젝트는 완벽하게 멈췄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국내 제작할 수 있는 상품을 찾고, 사전 예약으로 판매하는 것. MD분들이 많이 고생하셨을 것 같다. 나는 그동안 PB에 집중했다. 2월에 안정을 위해 정리를 했다면 3월은 마케팅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오랜만의 퍼포먼스 마케팅이라 그때 캡처한 광고 소재만 해도 200개가 넘었는데 유행하는 것들을 따라 해 보며 타깃에게 어떤 소구점으로 어필해야 할지 다양하게 테스트를 해봤다. 어떤 게 가장 CTR이 좋은지, 전환이 좋은지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었으나 여건 상 모두 시도를 못해봤던 것 같아 아쉬웠다. 그리고 흩어져있는 상품 판매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모으진 못했다.

집에서 사진 찍고 아이패드로 시안을 잡았다. (구림)


04. 평일에는 책을 읽고, 일요일 저녁엔 글을 씁니다

독서모임은 지속되었고, 글쓰기는 매주 진행됐다. 아주 버거운 날들이었다. 많은 정보가 담긴 책은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갔고, 글쓰기는 분량을 조절할 줄 몰라 8,000자까지 쓴 날도 있었다. 주말에 위워크에 출근해 글을 쓸 때까지 집에 가지 않기도 했고, 책을 읽는다고 새벽 다섯 시에 잠들기도 했다. 글과 사랑에 빠지기에 직장인은 너무 힘든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런 각고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건 브런치에 게재한 글 5편이 모두 브런치 메인과 다음 앱 메인에 실리면서였는데 하루에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정보성의 글도 아니고, 실용적인 글도 아닌 그저 여느 20대의 일기 정도일 뿐인데 다양한 나잇대의 분들이 공감 댓글을 달아주실 때면 웃음이 절로 났다.

<브랜드 스토리 디자인>에서 발견한 굳세게!


05. 픽유어카드 질문, 보고 또 보고

질문 리스트를 봐도 봐도 계속 오탈자와 비문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굉장히 힘겨웠던 것 같은데 마침 팀원들도 조금씩 힘이 빠졌다. 우리 상품의 핵심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쉽게 넘길 수 없었다. 10차까지 수정을 했었을 무렵, 상품 제작 스펙에 대해 합의를 시작했다. 이 합의는 쭉 늘어지다가 4월 말 되어 끝났다. 힘을 내, 픽유어카드.



4월ㅣ칭찬, 그 뒤에 오는 공허함


01. 회사에서 상 받다!

재직 중인 회사에서는 분기마다 좋은 성과를 보인 직원에게 수상을 한다. 회사에 입사하고 3번째로 보는 수상이었는데 말도 안 되게 내가 받았다. 여러 스트리머들과 장패드를 사전예약으로 판매했는데 1분기에 크게 매출을 견인했던 게 가장 주요했고, 1월에 진행했던 펫 크리에이터들과의 프로젝트, 2월에 진행했던 브랜드 콜라보가 어시를 해줬다. 보통 프로젝트는 MD가 PM을 맡기에 MD분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내가 맡았던 MD가 세 분이었고, 그 세 분이 한두 번씩 프로젝트를 하셨던 거였는데,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2. 위기의 끝은 어디인가

그렇지만 상품을 제작하며 프로세스의 부재로 인해 계속해서 생기는 문제들. 걷잡을 수 없는 상품의 불량, 커뮤니케이션에서의 혼선, 여러 이유로 인한 프로젝트의 드롭까지 몰아치는 어려운 일들에 머리 아픈 날들의 연속이었다. 과장해서 주마다 사과문을 썼던 것 같은데 사과문을 쓰는 것도 배포하는 것도 그동안 내가 습득해왔던 지식들과 달랐다. 정제되고 팩트에 기반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등의 사과문을 쓰고 있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꽤 힘들었던 기억. 그렇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띵언처럼 결국 지나갔다. 일에 대한 회의와 팀에 대한 회의가 너무나도 크게 왔던 시기.


03. 이름 없는 줌터디

여름이 되면 5길 운영이 종료되기 때문에 5길을 배경으로 하는 줌터디에 열심히 참여했다. 또 한 번 조직 개편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뭘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인풋 좀 넣어보자 하는 마음에 참여했다. 브랜딩에 대한 스터디와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스터디가 가장 인상 깊었다.


04. 동물의 숲 그리고 동물의 숲

동물의 숲 열풍에 나도 쓱 묻어갔다. 이름 짓고, 열매 따고, 빚 갚고 아주 바삐 지냈는데 친구인 유미가 초반에 아이템을 많이 줘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무파니에게 무 팔아서 돈 얻는 것보다 노동으로 얻는 돈이 더 뿌듯하던데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 주민들이 보내주는 편지 보는 맛에 게임했다. 그래서 초기 주민들과 지금까지 오래오래 같이 하고 있다.

나디아는 좋은 친구, 조작가도 좋은 친구


05. 잔인한 4월

아빠가 갑자기 수술을 받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의 첫 수술이자 입원이었다. 디스크가 터져 걷기도 힘드셨다는데 걱정할까봐 딸들에게는 어디가 아픈지, 병원에 갔는지 이야기도 안하셨었다. 엄마는 단지 내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평소보다 배로 힘들게 일을 하고 계시고,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빠 병문안도 못가는 상황이 되니 굉장히 무기력했다.


5월ㅣ일하자!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자!


01. 이젠 론칭해야 한다, 픽유어카드

코로나 시국이라 모임이 줄어들었을 것이라 생각되어 차일피일 미루던 펀딩. 급기야 팀원들의 카톡방 등장이 느려지는 게 눈에 보여 대략적으로 스펙을 잡아 4월에 카드 샘플을 뽑았다. 역시 상품을 만져보고 나니 다시 시동이 걸렸다. 5월에 최종 샘플을 만나고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상품 상세페이지 사진을 찍었다. 그날부터 후다닥 몰아치듯 펀딩을 준비했다. 그렇게 5월 말 론칭. 론칭 전 3일 동안 상세페이지 짠다고 새벽 4시에 잤던 하루들을 떠올리면 정말 눈물겨웠지만 론칭하고 나니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게 바로 산고의 고통이 아닐까.

사이드 프로젝트의 장점은 '해보고 싶은 걸 하면 된다는 것'. 해봄이 "마이너스가 나도 제가 채울게요" 한 마디에 이런저런 용기를 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초기 창업에는 든든한 금전적인(?) 서포터의 응원이 제일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쪼록 펀딩 전후로 사람들을 만나 상품에 대한 FGI도 하고 퍼포먼스 마케팅도 해보고 싶어서 알아서 예산 짜고 이미지 만들고 운영했다. 시딩도 해보고 싶어 주변에 인플루언스가 큰 분들께 샘플을 드리기도 했다.

진짜 끝 진짜 레알 최종 끝


02. 크리에이터와 함께하는 PB, 두 번의 상품 촬영

일부 PB를 손에서 떼고 크리에이터의 IP를 담은 PB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했다. 패션 브랜드 론칭과 푸드 브랜드 론칭을 앞두고 상품 촬영을 진행했다. 브랜드 론칭에 뭐가 필요한지, 촬영에는 뭐가 필요한지 찾아보고 실행하고 정신없던 때였다. 피키 때 인연인 미아가 운영하는 치즈문 스튜디오의 덕을 봐서 적은 비용으로 예쁜 패션 촬영을 할 수 있었고, 든든한 푸드 스튜디오 실장님을 만나 인물 촬영까지 마쳤다. 연휴가 많은 달에 연달아 2주 동안 촬영하는 건 극악의 스케줄이었지만 결과물이 멋져서 또 다 잊었다. 촬영이 끝나고 업무가 변경되어 패션 브랜드의 유통 채널 확장부터 마케팅까지 다른 담당자분이 세팅되었다. 그리고 푸드는 유통처를 정하지 못해 내부 협의를 앞두고 있었다. 브랜드를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인플루언서의 인플루언스 +a 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인플루언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이에 전류가 일었다.

주말에 혼자 갔던 스튜디오 답사와 케이크 제작


03. 노션으로 작성한 경력기술서

3개월마다 변경되는 팀과 프로젝트. 내 손으로 시작해서 내 손으로 끝내는 프로젝트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새로운 쇼핑몰의 론칭을 앞두고 있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앞으로 잘 걸어가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동안 해온 일을 쭉 적어보는 것. 재직 중인 회사에서는 6개월마다 평가를 해야 하여 해왔던 일을 적고, 회고를 해야 하는데 그것들을 모아 경력 기술서를 적어봤다. 왜 이직을 했고, 어떤 걸 해왔고, 왜 여기에 왔고, 현재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떻게 시도하고 있고. 그동안 해왔던 일은 브랜드 마케터(이자 제네럴 마케터)였는데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커머스 마케터(라고 하기엔 IP에 한정된 커머스를 하는 마케터)였기에 선택이 필요했다. 뭘 하고 싶은 걸까, 나는?


04. 저스트댄스와 링피트

동물의 숲이 화르륵 인기를 얻었다가 떨어졌다. 그다음은 저스트댄스와 링피트였는데 동생과 매일같이 저녁마다 플레이했다. 이때쯤 선바를 보기 시작했는데 선바의 올드 라스푸틴을 보고 입덕을 했다. 링피트로 다이어트를 희망했으나 즐겁게 플레이하고 끝나버렸다.

soy yo 라는 노래가 가장 좋았다지

6월ㅣ난 뭘 하고 싶을까?


01. 픽유어카드 펀딩 대성공

될까? 하고 발 동동 구르던 펀딩 시작 이후 쭉 상승 곡선을 그려 520분 정도가 펀딩에 참여해주시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40여분 정도 참여해주셨다. 광고 집행은 로하스 480% 달성했으니 그래 틀리진 않았구만 하며 자축했던 것 같다. 펀딩을 한다고 하니 관심 가져주신 주변의 많은 분들께 너무 감사했고, 새삼스레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펀딩이 종료되고 상품을 제작하며 펀딩 종료가 진짜 일의 시작이라는 걸 알게 됐다.


02. 리바이의 그로스 해킹 강의

5월에 리바이의 주선으로 더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수연, 유진님과 몇 번 만남을 갖게 되었다. 리바이는 모르겠지만 리바이와 내가 알게 된 시작은 옐로 모바일 산하의 굿닥 마케터와 피키캐스트 마케터였기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모임을 계기로 리바이와 조금 더 편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리바이가 굿닥에서의 인사이트를 정리한 것들을 발표하는 강의에 참여했다. 내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있진 않을 수 있지만 마케터라는 이름 하에 할 수 있는 일이 과장을 보태어 수백 가지일 텐데 그중 하나가 그로스 해킹이고, 요즘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기에. 어떻게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는지에 대한 과정을 직접 듣는 건 정말 흥미로웠다. 역시 멋진 사람. 덕분에 회사에서 플랫폼의 리텐션을 높이기 위해 CRM을 해보겠노라 TF를 꾸려 보기도 하였는데 이런 인풋들이 회사 생활에 조미료가 되는 것 같다.

서비스가 0이면 결과도 0


03. Boolunch 독서모임 종료

4번의 오프라인 모임 중 3번을 나가고 마지막 모임엔 사정이 생겨 나가지 못했다. 정확히는 늘 그랬듯 모임이 토요일인 줄 알고 일요일에 일정을 잡아놓았는데 일요일이라는 걸 못 봐서 가지 못했는데, 조금 더 꼼꼼히 일정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쪼록 손가락 한 마디 반 정도 되는  평소 읽기 힘든 마케팅 서적을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뒀다. 함께한 사람들과 네트워킹하기엔 연차 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고, 네트워킹을 하는 시간에 참석하지도 못하여 개인적으로는 여러모로 아쉬웠던 독서모임이었다.

스타벅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책이니까 스타벅스에서


04. 샌드박스 재직 1주년 맞이 돌아보기

스타트업의 1년은 다른 회사의 3년이라고들 하는데, 돌아봤을 때 딱 1년 치를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들이 수두룩했고, 성장했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입사 1주년, 퇴근하려던 내게 와인을 선물해주시던 파트장님 덕분에 집에 돌아오는 길 마음이 찡해졌지만 이내 이 곳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회사에서 2주년을 맞이하든,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서 & 모험을 하려는 동료들과 & 1년 정도 더 커머스 마케팅을 하거나 지금 바로 다시 방향을 틀어 브랜드 마케팅을 하고 싶다. 방향은 전혀 다르지만 둘 중 하나를 이루자고 생각했다.


05. '프로젝트 100 모르면 알아보자' 시작

업무가 변경될 때마다 많은 것들을 담아보려 했는데 얼기설기 엮어놓은 틀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지식들이 우수수 흩어지며 빠져나갔다. 그래서 매일 새롭게 알게 된 지식, 기존에 알고 있었으나 정리하지 못했던 개념들을 노션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신 부담이 되지 않도록 평일에만 할 것, 밀려도 밀리는 대로 둘 것, 대신 오래간만에 작성해도 겸연쩍어하지 말 것. 그렇게 출근 시간 버스에서 페이스북에 올라온 미디엄, 브런치 등의 글도 읽고, 서베이나 미디어 회사에서 배포한 인사이트들도 읽었다. 그냥 인풋을 넣는 것보다 곱씹는 게 훨씬 잘 담아졌다. 꾸준히 하다 보니 같이 할 사람들도 모았고, 5-6분 정도가 같이 하고 싶다 말씀 주셔서 함께 노션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7월ㅣ생각 정리, 마음 정리, 프로젝트 정리!


01. 물류창고에서 일어나는 일

상품을 전량 검수해야 할 일이 생겨 다 같이 실사도 갈 겸 겸사겸사 물류창고에 갔다. 물류에 직접 가는 건 두 번째였는데 언제 와도 감사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상품을 검수하는 데에 몇 시간을 꼬박 쓰고도 다 검수하지 못한 채로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일말의 답답함도 있었지만 아 모르겠다! 싶은 마음에 복분자 주를 시켜서 팀원들과 열심히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경험이라 회고에 꼭 남겨보고 싶었던 날.


02. 게임 크리에이터의 굿즈를 팔아보자

어쨌든 초반의 코로나 이펙트를 견뎌내고 MD분들은 스트리머 IP를 활용한 상품들이 쏟아내셨다. 이 회사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협업했던 크리에이터는 대부분 게이밍 크리에이터, 스트리머였다. 이 달엔 소니쇼, 진자림, 과로사, 공혁준, 루밍짱, 오킹 들 여러 스트리머 분들의 상품 판매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200여만 원 되는 예산으로 5명의 화보 촬영을 진행했던 날과 소품을 준비하던 전 날에는 정말이지 진이 다 빠져서 촬영장에서 한 번도 웃을 수 없었다. 라이브 커머스 포맷 등 새로운 시도들도 많이 해보았는데 스트리머 분들을 설득하는 데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썼던 것 같다. 예상보다 결과가 좋기도 했고, 예상과 달리 총체적 난국의 결과를 얻기도 했다. 갑자기 찾아온 혼란, IP 상품은 주문 제작으로 최소의 리소스를 투입해 만들어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03. 이름 없는 스터디 발제 그리고 마케터의 5길 공간 운영 종료

마침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리하고 있던 찰나, IP 굿즈 마케팅에 대해 발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개인 맥북으로 피티 준비를 했는데 덕분에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언제 또 내 경험을 100여 명 앞에서 이야기하겠어. 모쪼록 들으셨던 분들이 재밌게 들으셨길 바라며. 그리고 나를 매 주말마다 합정에 가게 만들었던 마케터의 5길 공간 운영이 종료됐다. 신축 건물에 들어와 하나씩 집기와 가구, 기계들을 들여놓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대부분이 빠지고 청소를 하던 날엔 어딘지 모르게 찡했던 것 같다. 마지막을 앞두고 진행했던 쫑파티에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모임을 즐기고 돌아왔다. 그렇게 마케터들이 모여 스터디를 했던 5길은 역사의 뒤안길로.

아크팩토리에만 가면 마이크를 쥔다
안녕 5길!


04. 쏠랑쏠랑 영주 여행

페이지를 다닐 때 야근을 하다가 불쑥 한 팀원의 고향인 영주로 떠난 적이 있다. 그 일탈이 너무 그리워 다시 한번 날을 잡고 영주로 떠났다. 계곡도 가고, 멋진 운치도 보고, 소고기도 먹고, 옥수수에 자두까지. 엄청난 여름을 만끽하고 왔다. 나는 말 안 듣는 막내딸 역할이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들도 나누고, 일에 대한 이야기도 잔뜩 했던 시간이었다. 이들과는 오랫동안 서로 끌어주며 함께 지내고만 싶다.


05. 픽유어카드 배송 끝!

드디어 배송에 CS까지 완료하고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났다. 아주 무더웠던 날이었는데 판교의 소고기 집에서 비싼 돼지고기를 먹었다. 펀딩을 잘 성공시키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음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프로젝트를 하며 중간중간 힘들었던 적이 떠올라 쉽게 YES를 외치진 못했지만 적당한 긍정으로 팡교 접선을 마쳤다.

프로젝트 닷 사람들



8월ㅣ난 불안할 때 모험을 해

01. 머치머치 TF의 시작

7월 마지막 주로 급한 프로젝트의 불은 대부분 꺼졌다. 그래서 주문 제작 상품을 판매하며, 유튜브 상품 기능을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필요한 일들을 했다. 처음에는 기존에 우리가 운영하던 스토어에서 어떤 부분을 옮겨오면 좋을지 검토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다가 크리에이터가 입점할 때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분석하며 굿즈 론칭을 알리는 방법이 담긴 커뮤니케이션 세트도 만들었고, 플랫폼 입점을 유도하기 위한 USP를 잡으며 광고 기획도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아웃바운드로 콜드 메일도 보냈다. 이걸 무슨 일이라고 명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서비스 초창기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나름대로의 리스트를 만들어 쭉 해나갔다.


02. 가장 오래 준비한 프로젝트의 드롭

12월부터 준비했던 푸드 PB 브랜드가 피치 못할 사유로 드롭되었다. 누군가 드롭을 축하한다고 얘기했을 정도로 골머리를 앓았던 프로젝트지만 이 프로젝트를 꼭 론칭하고 결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에 허탈함이 컸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드롭은 내 회사 생활에 꽤 영향을 미쳤다. 함께 업무를 하던 MD분도 팀을 옮겼고, 나도 회복 탄력성을 잃었기에 팀과 일의 자잘한 변화들 마저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커머스, 이 정도 맛봤으면 다시 브랜드 마케터로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군데 면접을 봤다. 운이 좋게 가고 싶었던 곳에서 모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나에 대해 그리고 이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경력기술서를 적으며 해왔던 일을 곱씹었다면, 이 일들이 내 앞으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할지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 끝에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맛있지만 비싸다는 평을 받았던 우리의 돈까스


03. 패스트파이브에서 브랜딩 강의 수강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브랜드 마케터에 대해 긴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브랜딩 강의를 들었다. 퇴근하고 짬이 날 때마다 들었는데 그동안 내가 해왔던 건 브랜딩에 대한 크리에이티브였지 브랜딩을 위한 분석이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에 메타브랜딩에서 했던 브랜드 캔버스에 내가 현재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플랫폼을 넣어보기도 했는데 쉽게 답이 나오진 않았다. 그동안 브랜딩 업무가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내가 잘하는 영역은 대체 어디에.


04. 다시 일요일의 글쓰기 시작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는데 계속해서 유입이 생기더니 못 본 새에 5만 명이 내 글을 읽고 가셨다.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글을 안쓸 것임이 분명하기에, 다시 리바이가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언제나 그랬듯 글쓰기는 정말 어려웠고 쓸만한 소재는 지난 10주 동안 써버려서 글을 써내기까지 진통이 심했다. 일요일 저녁마다 '작가님 글 잘 쓰고 계신가요?'라며 문자를 남겨준 조 작가 덕분에 나는 주말에 6시간 이상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를 올린다.


05. 당근마켓 월 매출(?) 30만 원 달성

혼란했던 와중에 이사를 하겠노라 결심을 하게 됐다. 강남구 소재의 지상층 (0.7층)에 살고 있었는데 방이 3개이고 내부 인테리어가 깨끗해서 잘 지내고 있었지만 지상에서 햇빛을 보며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 주말 동안 엄마, 동생과 방을 보러 다녔고 집을 계약하고 난 뒤 당근마켓을 시작했다. 집에 있는 자잘한 물건들을 평균 1,000원에 판매했는데 첫 달에 매출 30만 원 (당근 가계부 피셜)을 달성했다. 한 번 나갈 때 4~5명을 만났으니 충분히 그랬을 지도. 당근마켓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이게 팔려?'라고 생각되는 걸 예쁘게 찍으면 가장 먼저 판매되고, 강남구의 거래량이 타 지역구 거래량의 몇 배나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당근 온도 50.4도를 기록했다.



9월ㅣ선택과 선택과 선택


01.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퇴사 통보 후 10여 차례에 걸친 면담과 최종 면접들이 있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거절'인데, 단순 거절이 아닌 이유가 있는 거절 이어야 해서 2kg은 빠졌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면담이 너무 어려워서 친구네 집에 가서 재택을 했다. 친구들의 응원과 위로를 받고 면담을 하고 넉다운하고를 반복했던 날이었다. 퇴사 이틀 전까지 면담을 하며 결국 퇴사 당일, 퇴사를 하지 않기로 한 최초의 직원이 됐다. 오픈마켓과 같은 플랫폼을 보유한 서비스에서 커머스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사업 개발 마케팅 (짬뽕)을 담당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퇴사 당일 점심에 굿바이 파티를 준비해준 팀원들은 '성실님 이거 개꿀잼 몰카죠?'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때마저도 이 선택이 맞는지, 저 선택이 맞는지 하루에도 몇십 번 생각이 휘몰아쳤다. 내가 이직을 결심했던 이유들, 이 회사에 남게 된 이유들을 적으며 이 이유에 따라 선택을 했다는 데에 의의를 뒀다. 그렇지만 여러모로 너무 죄송합니다.

잊지 못할 케이크와 올해 가장 동고동락했던 회사 친구


02. 머릿속이 복잡할 땐 매일 1만 보 걷기

설상가상으로 건강검진도 성한 곳 없이 나와서. 추적검사가 필요하며, 갑상선 암 검사를 언제 할지 고민해보라는 소견을 받았다. 건강검진을 한 병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비가 오더라. 그래서 동생이 정류장까지 우산을 들고 나와줬다. 그날 저녁부터 이사 가기 전까지 동네를 1만 보씩 걸었다. 대치동, 도곡동, 우면산, 양재 시민의 숲, 양재역, 강남역, 역삼역, 양재천 등 발 닫는 대로 산책을 하며 바람을 쐤다. 4년 동안이나 살았는데 집 근처를 돌아본 적이 없어서 처음 보는 가게들이 많았다. 그중 양재천 가는 길에 있던 김영모 과자점의 타르트와 까눌레는 내 힐링 푸드가 되어줬다.

폼택 다이어리 스티커 색감이 너무 좋더라


03. 연말 목표로 픽유어카드 한 번 더!

어딘가에 집중을 하기 위해 한 번 더 펀딩을 하기로 했다. 여전히 글쓰기를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생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으므로, 활동적인 어떤 것이 필요했다. 이미 한 번 사이클을 돌려봤기 때문에 로드맵과 일정, 역할 분배를 빠르게 하며 한 번 더 펀딩을 준비했다. 2차에는 조금 더 PM의 역할을 맡고 싶어 도전적으로 팀원들에게 이것저것 요청했는데 각자 알아서 잘하는 사람들이라 든든했다. 기존의 카드 외에 추가적으로 크리스마스에 플레이하기 좋은 카드, 퍼플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2차 펀딩에서는 각자 뭘 얻고 싶은지 이야기 했던 날



10월ㅣ선택의 결과들을 마주하다


01. 새로운 일, 새로운 팀

10월 중순에 팀이 변경된다고 했다. 그전까지 와중에도 할 일은 해야 지하는 생각에 플랫폼에 올라갈 사진 촬영을 했다. 주문 제작 상품을 만드는 쇼핑몰인데 주문 제작 상품의 실물 사진이 없어서 3일 만에 기획, 준비, 섭외를 마치고 모델을 할 팀원 두 분과 함께 사진들을 찍어냈다. 그리고 오픈마켓 플랫폼으로서 제공하는 마케팅 베네핏을 설계하며 매체 믹스를 1차적으로 해봤는데 조금 더 상세하게 기본기를 다지고 싶어 GDN과 검색광고 관련 책 읽으며 스터디를 했다.

그러다가 브랜드 솔루션 팀의 브랜드 커머스 담당으로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원래는 내 위에 함께 업무를 할 팀장님이 오시기로 하였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팀에서 혼자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브랜드의 유튜브를 돕는다'는 목표 하에 '브랜드의 유튜브(에서 커머스를 할 수 있도록)를 돕는다'는 목표를 두고 업무를 시작했다. 덜컥 나를 맡게 되신 팀장님께 누가 되지 않으려 경력 기술서와 회사에서 해왔던 일을 적어 팀이 바뀐 첫날 공유드렸다. 솔플의 시작이었다.

이것도 했다가 저것도 했다가


02. 강남구에서 금천구로 이사

도곡동 집이 방 3개에 18평이었다면, 독산동 집은 방 2개에 13평이었다. 그래서 당근마켓을 통해 동생이 열심히 상품들을 판매했다. 마지막으로 큰 화장대와 소파베드까지 나가고 나니 해골 같은 집이 되어 이삿날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독산동 집으로의 이사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금을 치러야 하는 당일에 부동산 중개인이 잠수를 타고, 임대인 대리인은 잔금을 치를 때까지 문을 못 열어주겠노라 으름장을 놓고, 길바닥에서 짐과 함께 4-5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잔뜩 걱정하시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겨우 들어간 집엔 약속되었던 도배도 안되어있고, 바닥은 찍힘 천지에 생각보다 방이 좁은 느낌이라 심장이 덜컹했다. 내 통장에서 2억이 빠져나가는 경험도 치러야 했는데 등기소와 주민센터 등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요란하게 금천구에 입성했다. 교통편도 안 좋아지고, 방도 왠지 모르게 적응이 되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벌고 열심히 모았는데 겨우 이곳인가,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게 맞을까 하는 자괴감에 잠들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

이사 첫 날의 어수선한 집 모습


03. 상품 소개서 스터디

팀이 바뀌었고, 일이 바뀌었고, 해보지 않은 일을 맡았기에 더 몰두해야 했다. 그래서 사내에서 잘 썼다고 입소문 난 제안서와 기획서, 여러 앱/웹 서비스/솔루션의 소개서들을 모았다. 어떤 구성으로 적혀있는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맨 앞에는 무엇을 넣는지, 전략은 어떻게 세우는지 읽고 분석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은 '왜 난 이렇게 못하지' 하는 자괴감에 살았고, 또 어느 날은 '이렇게 쓴 거 나쁘지 않은데?' 하는 즐거움에 살았다. 일희일비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부디 이 배움이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행동이었으면 하고 바라었다. 다소 절실하게 회사를 다녔던 시기였다.

혼자 얼굴 빨개져서 초코파이 흡입하던 날들



11월ㅣ그래도 뭔가 해내는 날들


01. 무한 외근의 시작

10월에 콜드 메일을 30여 건 보냈고, 알음알음 알고 있는 분들께 연락을 드리며 일을 이어나갔다. 운 좋게 미팅이 잡혀 외근을 가기 시작했는데 운전을 못하는 영업러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상품 제형들을 쇼핑백에 가득 담아 서울의 외곽까지 외근 다녀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오는 길에 쇼핑백이 찢어져 샘플을 잃어버릴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계약서는 4~5개 정도 썼고, 쇼핑몰만 제공할 수 있는 솔루션인 유튜브 상품 기능에 대한 검증을 계속해나갔다. 크리에이터 입점과 달리 브랜드 입점은 한 회사 내에서 다양한 담당자들을 설득시켜야 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조금 더 정교해야 한다는 생각에 상품 소개서를 다섯 차례나 업데이트했다. 팀은 브랜드 솔루션팀이었는데 업무는 커머스 업무를 하다 보니 두 집 살림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어서 한숨이 늘긴 했지만 일을 하는 건 재밌었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성 취하고를 반복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일산 가던 길이었던 것 같은데 짐도 못 풀러보고 나왔다.


02. 마케팅은 놓고 싶지 않아

꾸준히 이름없는 스터디는 나가고, 사람들이 정리해놓은 인사이트를 스크랩하며 지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출근길에서 소모되는 시간이 없어졌으니 출근 30분 전 자리에 앉아 B2B 마케팅, 솔루션 판매 등을 검색하며 사례들을 공부했다. 내가 하는 이 일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고민이 되는 것을 브런치나 구글, ㅍㅍㅅㅅ, 아이보스, 페이스북 등에 검색하면 누군가의 글이 나왔기에 그것들을 삼키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덕분에 마음의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서 므네, 예림님과 함께한 이없스


03. 불안정한 마음, 다독여준 사람들

미팅은 외부 미팅, 전화는 외부 전화. 사내에서 업무를 할 때는 협업의 탈을 쓴 부탁만 늘어나며 함께 일을 한다고 해도 결재를 받을 리더가 달라 쩔쩔매는 일이 늘었다. 그러다 문득 연차를 내고 판교에 찾아가 전 팀장님과 리더 분들을 만나 고민 상담을 하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안부도 물어보고, 친구들에 기대어 몇 주째 지속되는 우울감에 대해 토로했다. 어느 날인가 큰 우울감에 사고를 내버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카톡방에 글을 남겼는데 오후에 한 친구가 집에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날 저녁에는 동생이 나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줬으며, 밤에는 친구 둘이 안부 연락을 줬다. 그 다음 날에는 다른 친구네 집에 초대되어 따뜻한 밀푀유 나베를 먹었다. 덕분에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를 지탱해준 것들


04. 픽유어카드 펀딩 시작과 종료

2차 펀딩을 진행하기 전 팀원들에게 각자 일이 생겨 조금 딜레이가 되었는데, 해봄이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고, 부담이 되면 일정을 미루면 된다'와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우리가 중요하지 프로젝트가 중요한 게 아니다 라는 생각에 마음을 편히 가졌다. 그렇게 조절해가며 펀딩을 시작했다. 19세 미만 이용 불가의 카드여서 타깃을 아예 2534 여성으로 잡고 홍보를 진행했다. 1차 판매했던 분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도 진행하고, 1차 때 잘 워킹했던 프로모션도 하며 좋은 성과를 거뒀다.

청담에서 촬영을 위해 차려입고 만났다

12월ㅣ기복이 컸던 겨울


01. 다시 커머스팀으로

두 집 살림을 하는 건 멀리서 봐도 이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커머스팀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소속이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독자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좋고, 공통의 목표만 세팅되면 할 수 있는 범위를 찾아 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동시에 계약서를 작성한 브랜드들의 입점을 돕고 유튜브 상품 기능을 제대로 활용해 매출을 내는 사례들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영업, 계약, 스토어 세팅, 물류, 판매, 프로모션까지 담당하다 보니 내가 그토록 원했던 커머스의 사이클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돌 수 있었다. 이제 내년에 정산만 습득하면 A부터 Z까지가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커머스팀의 브랜드앤비즈니스팀에서 영업전략이라는 업무를 맡게 되었고, 그동안 하던 일에 MCN을 대상으로 입점 제안을 하는 업무까지 추가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오퍼레이션도 추가로 하고, 해오던 사업개발도 지속적으로 하고. 솔직히 상상만해도 굉장히 숨막히고 버겁지만 늘 그랬듯, 일단 해보려 한다. 2021년 1분기에는 스스로 어떤 답을 내릴 수 있겠지, 하며.


02. 책 출간을 위한 글쓰기

이름 없는 스터디에 묻어서 마케터의 실무에 대해 담는 책을 공동 집필하기로 했다. 발족은 9월에 하였고, 나는 목차를 기획하는 등의 엮은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리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전문 분야를 써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괜히 자신이 없어져 저자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목차를 구성하다 보니 일부 글이 부족하여 뒤늦게 저자의 역할도 병행하게 되었다. 브런치도 계속해서 써왔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으나 내가 가진 인사이트와 해왔던 일을 잘 조합해서 A4 10여 장을 쓰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매일 저녁마다 동생에게 '살려줘'를 외치며 방 안에서 겨우 탈고를 했다. 교정을 보면 50%도 안 남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지만 탈고했다는 데에 의의를 둔다.


03. 록담님의 브런치 속 인터뷰에 참여하다

시즌 1 때부터 눈여겨보며 이 업계에는 자기만의 색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며 지냈는데 시즌 2 끝자락에 인터뷰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로리와는 카카오 때 함께 크리에이터스 데이 행사를 하게 되며 알게 되었는데 퇴사한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편히 연락 주셔서 감사했다. 구글 폼에 있는 질문들은 내 일과 삶을 모두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이었는데 3일 동안 퇴근 후 서너 시간씩 고민하며 써 내려갔다. 누군가에게는 '얘 뭐하는 앤 데 이렇게 말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혹시 내가 자만하지 않았는지, 거짓을 쓰진 않았는지, 누군가 상처가 될 말을 쓰지 않았는지 여러 차례 검열했다. 모쪼록 좋은 기회를 주셔서 연락이 끊겼던 분들에게도 잘 지내냐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즐거운 인터뷰였다.


04. 픽유어카드 제작-배송 완료

역시 해본 일이라서 제작부터 배송까지 착착. CS까지 완료하고 나니 12월 24일이었다. 두 번째 펀딩은 480여 명이 참여해주셨는데 객단가가 지난번보다 높아진 터라 감사했다. 팀의 결속력을 가장 높이는 방법은 공통의 성공이라는 말을 믿는다. 만약 이 멤버들과 다른 프로젝트를 한다면 조금은 승산이 있는 프로젝트를 해서 오랫동안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은 양산화 거나, 오프라인이 될 것 같은데 둘 중 어떤 게 승산이 있을지. 일단 2.5단계가 풀리면 회의를 하기로 했다.



2021년의 키워드는 안정, 도약이다.

안정은 내 선택에 대한 안정을 찾고 싶고,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 정해봤다. 도약은 서른이 되기 전 멋진 프로젝트를 회사에서 해내 보고 싶기도 하고, 꾸준히 해왔던 적금, 펀드 외에 주식 등을 통해 더 깊은 재테크를 해보고 싶어 정해봤다.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다져진 습관을 만들고 싶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꿨을 때, 목표는 당연히 지키기 어려워졌고 습관의 부재는 일상을 건강하게 지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기본적인 습관들을 통해 좋은 나를 만들어가고 싶다.


아주 솔직하게 적어본 회고가 끝났다. 4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조금 덜 솔직하게 썼다면 3시간 정도에 끝냈을 수 있을 것 같다. 글쎄 공개를 해도 될까 말까 고민이 된 부분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남겨놔야 앞으로 있을 내 나날들에 좋은 결정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용기 내어 남겨본다. 2021년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다가오는 것들을 잘 받아내거나 무찌를 수 있는 샐리가 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