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연재] 날마다 출판
숨 막히게 바쁜 8월입니다.
지난 월요일 올렸어야 하는 글인 데다가
순서상 지난번 올린 '그냥 기존 출판사에서 일하면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앞선 글을 뒤늦게 올립니다.
엉망진창이네요 ㅋㅋㅋ
모두 행복한 주말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우리 독자님들. 책이 나오면 어떻게든 뵙고 싶어요.
======================
지난 1년, 작은 출판사를 꾸려온 이야기를 쓰려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서 출판사를 차리기는 했으나, 출판사 창업을 목표로 삼은 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그게 도움이 되려면 어떤 방식의 차례를 구성해야 하나,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을 내가 보유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여러모로 고민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 글은, 창업한 뒤 1년, 나는 무엇을 했고, 그 과정과 방법은 옳았나에 대한 성찰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한 성찰 말고 어떤 비전과 방법론을 제시하기에, 부끄럽지만 나는 너무 쪼랩이다.
쪼랩 주제에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첫 번째, 기회가 왔을 때 나도 한 번 저자가 되어보고픈 아주 단순하고 유치한 욕망 때문이다. 문학을 전공했고, 오랜 기간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자기계발과 경제경영서를 만드는 편집자로 너무 오래 일하고 보니, 소설 쓰기에 대한 어떤 기능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그저 다른 좋은 책을 기획하고 소개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글 말고는 쓰지도 않고 쓸 수도 없게 되었다. 비록 꿈에서는 이탈해버렸지만(‘탈락해버렸지만’이라고 쓰려다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수정한다), 내가 책을 만들려는 이유에 관해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방향으로라도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어, 찾아온 기회가 반가웠다.
두 번째는 나조차도 내가 왜 책을 만들려는 것인지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들이 왜 책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낼 수 없다. 대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폭넓게 경험한 사람들이고, 책을 통해 자신이 되고자 하는 누군가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책은 삶의 전제조건이지 다른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나에게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책이 삶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읽는 것과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나 이미 오래전부터 읽는 즐거움을 소비하던 상당수가 보는 즐거움을 선택하고 있고, 그나마도 한 권 한 권의 잘 짜인 텍스트보다는 구독을 통해 지금 필요한 정보가 잘 요약된 텍스트가 알아서 저절로 들어오는 것을 편리하게 여기는 세태에, 한 권 책을 왜 만들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내 안에 있어야 했다. 그게 아니고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 오늘의 출판 환경이다.
세 번째, 말릴 수 있다면 말리고 싶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겠다는 분들이 계신다면, 얼마든지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2010년도 중반, 우연한 기회에 이제 막 출판사 등록을 했다는 분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사업을 하셨고, 출판에 대한 오랜 꿈이 있어 시작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왜 다른 많은 것 말고 출판을 하고 싶으신지 여쭸더니 돌아온 대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인문학의 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대넓얉’을 필두로 한 인문교양서가 종합 순위를 휩쓸던 시절이었다. 너무 가벼운 인문서가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그게 문제라면, 인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책으로 극복할 수 있지? 입문 수준의 교양서가 이만큼의 독자를 만나는 일도 얼마나 오랜 암흑기를 버텨낸 후에 가능해진 것인데, 그나마도 책 자체의 부흥이라기보다는 팟캐스트를 필두로 한 듣기 콘텐츠의 중흥이 책 소비로 이어진 결과일 것인데, 이 와중에 어떻게 죽어버린 인문학을 살리겠다는 말인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라는 테제 자체가 너무 낡은 것이어서, 거기에 자기 인생을 걸겠다는 말이 너무 허황하게 느껴졌다. 사실, ‘책을 읽는 분인가?’ 아니 그보다도 ‘서점에 가서 요즘 무슨 책이 나오는지 구경이라도 해보신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최근에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 의도가 얼마나 공격적이고 불순한지 자각하는 상태에서 차마 묻지를 못했다.
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맞다. 책이 하나하나의 인간 내부에 거스를 수 없는 욕망을 일으키면, 그 욕망의 공명이 사회를 바꾼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나온 직후, 화학만이 세상을 구할 것처럼 들떠 있던 미국 사회가 자신들을 풍요의 나라로 이끌 줄로만 알았던 DDT의 실체를 알고 각성했던 것처럼 말이다. 땅과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욕망을 개개인의 가슴속에 지폈던 그 책이 없었다면, 지구는 훨씬 더 격렬하고 거대한 고통에 시달렸을지 모른다. 그 책이 출간된 해가 1962년이다. 유튜브는 고사하고 TV 채널도 몇 개 안 되던 시절이다. 그때의 책 한 권이 가졌던 파급력이 2021년 대한민국에서 구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책으로 인문학의 위기는 극복할 수 없다. 내가 뭘 알겠냐마는, 극복할 필요가 없어진 세상인지도 모른다. 원형은 원형 자체의 의미가 있다. 누구나가 자기 채널을 가지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의 인문학은 또 다른 형태여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으로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가? 독자 하나하나가 늦은 밤 책을 읽어야 한다면, 카페에서 한 장 두 장 넘기고 싶은 어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면, 출퇴근길 영상에 집중하는 대신 불편하게 양쪽으로 갈라서 한 장씩 넘겨야 하는 무언가를 들고 빠져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떤 텍스트가 되어야 할까?
독자들은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로 자신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돈을 잔뜩 벌고 싶다!’, ‘우리 애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게 하고 싶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 ‘복잡한 인간관계 신경 좀 안 쓰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나이 먹고 가난하고 외롭게 살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내가 출판업계에 있는 지난 15년간은 함량의 차이만 있었을 뿐 대개 이런 동력이 출판시장을 움직여왔다.
이렇게만 보자면, 다들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책을 읽는다.
순수한 앎에 대한 욕구를 거세당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내 점잖은 책을 읽어주지 않는 독자를 향해 ‘위기’ 운운하는 일이 정당한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런 책만 내면 되겠네. 아니. 바로 이 지점부터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상실감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내달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다고 알려줄 수는 없을까. 돈 말고 다른 가치, 대학 말고 다른 방법, 공무원이 아닌 다른 꿈, 인간이 스트레스가 아닌 위로가 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문제제기, 외로움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다른 인생의 가치를 제시해줄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이 욕망에 대한 대안이 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하나하나의 가슴에 이 길 말고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제안. 그 제안에 수긍하는 독자 1만. 그 1만이 책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이다. 그것보다 잘 된다면 진짜 땡큐인 거고, 안 된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다. 다만 계속 그 제안과 대안에 골몰하는 과정이 출판의 시작과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출판사를 차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