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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늘 Aug 23. 2021

출판사 해서 먹고살 수는 있는 것인가

[출간 전 연재] 날마다 출판

지난 새벽 읽은 도서  《책이라는 선물》(나카오카 유스케 외 지음, 김단비 옮김, 유유)의 서문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런 시대인데도 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 팔고 싶은 사람,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다. 출판사도 서점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이렇게 희망만 말하는 업계는 그리 없을 것이다. " 읽으면서 소름 돋았다. 나잖아..? 이 헛된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연재글을 올린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6만 8,443개*의 출판사가 있다. 2015년에는 5만 178개였던 출판사는 2016년 5만 3,574개로 늘었고, 2017년에는 5만 7,153개로 늘었다. 매년 3,000개씩의 출판사가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이 5만 개 출판사 중에서 한 권이라도 책을 발행한 출판사는 2015년에는 6,414개, 2016년에는 7,209개, 2017년에는 7,775개로 늘었다**. 출판사 개수만 보자면, 출판산업은 벤처가 넘쳐나는 초호황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9년 책 한 권당 1,603권이던 평균 발행 부수는 2020년 1,241권으로 20퍼센트 이상 급감했고***, 1쇄 출고 부수는 2015년 평균 1,080권이던 것이 2018년에는 774권으로 줄었다. 1쇄가 소비되는 기간은 더 길어져 2015년에는 14개월이 걸리던 것이 2018년에는 17개월로 늘었다. 같은 기간 2인 이내의 작은 출판사의 1쇄 판매 완료 도달 기간은 14개월에서 18개월로 늘어, 업계 평균보다도 길어졌다(100인 이상 규모의 출판사가 2015년에는 6개월 만에, 2018년에는 10개월 만에 초판 부수를 모두 판매한 것과도 대조된다****).


수치만 보면, 출판시장은 지금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아수라阿修羅는 산스크리트 ‘asur’의 음역(音譯)으로, ‘추악하다’라는 뜻이란다. 증오심이 가득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던 아수라는 애초 고대 인도 신화에 선신(善神)으로 등장했으나 하늘과 싸우면서 악신(惡神)으로 화했다고 한다.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비슈누 신과 아수라들의 전투가 그려지는데, 시체가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이 후에 참혹한 전쟁터를 가리키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고. 저 수치에 전국 서점 현황까지를 더하면 그야말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 된다. 5,200만이 사는 대한민국에 서점 수는 2,000개가 되지 않는다. 이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작은 출판사와 동네서점과 관련된 여러 책과 기사를 찾아봤는데, 어느 곳 하나 울분과 증오가 쌓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작은 출판사들은 정가 대비 공급률이 너무 낮아 괴로워했고, 작은 서점들은 대형 서점 대비 높은 공급률로 책을 받는 것에 괴로워했다. 5% 공급률이 사장 월급을 좌우하는 지경으로, 월급 없이 임대료만 내며 그야말로 사명감으로 사업체를 운영해나가는 곳도 부지기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는 사람은 없는데 파는 사람이 많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책 읽는 수는 줄어드는데, 전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출판인이 나타나 우후죽순 1인 출판사를 차리고 있다. 그 많은 작은 출판사들이 출간하는 책을 제대로 팔아 낼 매대는 턱없이 부족하니, 책을 만들어도 팔 데가 없어 출고 부수는 날로 줄어든다. 내가 딱 이 처지다. 지난해 출판업계 매출 순위를 찾아봤더니, 내가 그렇게 니들은 너무하다고 욕하고 나온 출판사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더라. 그냥 다닐 걸 그랬나. 잠시 후회가 일기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이 모든 거대 지표가 실제 시장에서 보이는 양상은 사뭇 다르다. 실제 대형 서점의 종합 순위를 살펴보면, 듣도 보도 못한 출판사 이름을 단 도서들이 심심치 않게 종합 순위에 올라온다. 여긴 어딘가 싶어 출판사 페이지로 넘어가 보면, 출간한 책이 5종 이하인 그야말로 신생 출판사들이 부지기수다. 회사는 작아도, 시장에서는 팔리는 책을 내놓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출판사명이 노출될 수 있어 책의 제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2016년 50여 개 작은 출판사가 모여 근간 목록을 안내한 소책자를 유통한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준비하며 그 책자가 생각나 당시 책자에 소개된 출판사의 근황을 체크해보기로 했다. 가장 유의미한 지수는 지난 1년간 출판한 도서가 몇 종인지가 될 것 같아 엑셀 파일로 정리해보았는데, 절반은 망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50여 개 출판사 중 지난 1년 출간 종수가 없는 곳은 단 6곳밖에 없었다. 모두 적게는 1권 많게는 30종 넘게 신간을 쏟아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중견 출판사로 성장한 곳도 있었고, 출판시장의 큰 유행을 주도해가는 곳도 있었다. 시장이 이렇게 어려운데 다들 뭘 팔아서 버틴 것일까? 몇 개 출판사가 연대해 한 개 믿을 만한 브랜드를 만들어 꾸준히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기도 했고, 대형 출판사의 베테랑 편집자나 마케터가 독립한 케이스들은 유명 저자의 글을 섭외해 큰 회사 못지않은 영향력의 책을 출간하고도 있었다. 열악하다는 환경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작아진 시장 내에서 작은 출판사들이 생존하는 경우의 수도 분명히 존재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월급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월급이 얼마인지는 논외로 두고)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길도 분명히 존재한다. 월급을 받으면서 출판사를 차리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한 번 살펴보자.


*      대한출판문화협회, 《2019 한국출판연감》. 2018년 기준 수치.

**    문화체육관광부 2017년 12월 기준 신고현황.

***   대한출판문화협회, 2020년 출판통계.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9 출판산업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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