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11년, 결혼 생활 7년째인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이유
라는 말에 '너 참 불쌍하다.'라는 시선이 함께 느껴진다. 궁금해졌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의 절반이 어떻게 남편과 함께일 수 있었는지 말이다.
남편과는 대학교의 같은 과 선후배 사이다. 대학교의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 남편의 인상이 아직도 기억난다. 22살인데도 눈주름이 진하게 파지도록 신나게 웃는 사람이었다. '뭐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나.'라는 생각을 하는 듯, 눈에는 잔뜩 장난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남편이 가진 내면의 흥은 주변에도 영향을 끼치는지 남편이 포함된 무리에서는 흥이 느껴졌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남편이 아닌 오빠이던 시절, 누구보다 크게 웃던 오빠를 보며 '무슨 얘기를 하길래 저렇게 신이 날까.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었다.
신입생이 된지 한 달 만에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고, '삶이 재밌어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남편은 이야기 주제가 많았다. 신기하게도 어떤 주제를 꺼내도 말이 이어졌다. 매일 만나도 매일 대화할 거리가 넘쳤고, 대화는 즐거웠다. 연애할 당시 남편은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늦은 시간에 끝났다. 밤 10시 이후에나 만날 수 있어서, 우리는 술이나 차를 마시며 새벽 3~4시까지 이야기 각자의 하루를 이야기하며 데이트를 했다. 만나지 못할 적에는 핸드폰을 붙잡고 놓지를 못했다. 핸드폰이 뜨거워지고 귀가 얼얼할 때 쯤 겨우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축구, 게임 등을 좋아하던 남편, 드라마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나 사이에 공통 분모는 거의 없는데도 대화는 길었고 즐거웠다. 특히나 어휘를 가지고 놀 줄 아는 남편의 말센스에 신나게 웃을 기회가 많았다.
"형수, 형이랑 왜 결혼했어요?"
결혼을 하고 남편의 지인이 물었다.
"내 얼굴 보고 결혼했지."
그럴 때는 남편이 꼭 끼어들며 이야기했다.
"엇? 잘못 알고 있네. 나는 자기 웃겨서 결혼한 거야."
내가 장난스럽게 답을 수정하곤 했다.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같지만, 사실이다. 남편과 대화하는 나의 모습은 해맑고 신이 나 있다. 남편과의 대화는 명치에서 느껴지는 꽉 막힌 불편함을 쑥 내려가게 한다. 부부가 된 지금도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남편과 맥주 한 잔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는 시간이다.
지금의 남편과 11년 동안 헤어짐 없이 연애를 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취직을 위해 시험을 준비했으므로 11년 중 3~4년 노량진 고시생 생활을 했다. 서로가 노량진 고시생이 된 시기가 달라서 1년에 계절이 바뀔 때 쯤 한 번씩 본 적도 있다. 제주도에서 평생을 살던 내가 시험에 합격하여 타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남편은 제주도에 남아 계속 시험을 준비했으므로 의도치않게 결혼 전까지 우리는 긴 시간 장거리 커플이 되었다.
"곧 헤어지겠네."
취직 1년 차 시절에 장거리 연애를 한다고 하면 꼭 저런 소리를 듣곤 했다. 그때마다 '왜? 나는 지금 오빠와 너무 잘 지내는데?'라며 마음 속에 큰 반감을 갖곤 했다. 타지에서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웠던 신규 시절에는 남편과 통화하는 순간이 내겐 구원이었다. 생소한 업무는 어렵고, 역할은 부담이 되었던 그 시절, 뭐든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게 좋은 나는 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매번 일의 양은 벅찼고, 잘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마음의 중심은 심하게 요동쳤다. 그때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보고 싶다."
이 말 한마디에 나의 마음의 심정을 모두 헤아리는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받아 주었다.
MBTI 검사 결과 나는 F, 남편은 P이다. MBTI는 결혼 후에나 알게 되었는데, 남편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분석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감정적 수용과 공감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사고의 출발점이 달랐던 우리지만 우리는 대화가 잘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나'라는 사람의 사고 방식을 매우 존중하는 대화를 했던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불안과 긴장을 수시로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이해는 못하지만 '너는 그렇게 느끼는구나.'라며 존중해 주는 방식으로 나와 대화했던 것이다. 남편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되는 나의 F적 사고 방식을 최대한 이해하며 맞장구치러 노력해 왔으니 그고충이 얼마나 컸을까.
연애 11년, 결혼 7년
내 삶의 절반을 남편과 함께 지내 왔다.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이 여전히 즐겁고 좋다. 18년 간의 남편의 모습을 돌이켜 보니 거기에 '나'가 있었다. '남편을 왜 좋아했지?', '남편과의 대화가 왜 좋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 좋구나. 나는 이런 모습이었구나.'로 귀결되었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에 마음에 들까?'
'나의 말이 수준 떨어져 보이지는 않나?'
'내가 하는 말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내가 내 주장을 펼치면 상대를 불편하게 하겠지?'
타인과 대화를 할 때,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작용하는 생각들이다. 대화할 때 쉽게 주눅들고, 타인의 말에 쉽게 긍정하고, '나'의 무지한 밑바닥이 들어날까 전전긍긍하며,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고려한다. 대화를 좋아하면서도 상대와의 대화로부터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든 스트레스를 내려 놓을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 남편이었던 것 같다. 주눅들게 하지 않고, 잘 보이지 않아도 되고, '나'의 밑바닥까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노출하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모습이 좋아보이도록 무리해 왔던 지난 기간 동안 '무리하지 않지 않아도 되는 나'가 될 수 있게 해 주는 남편 곁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상대의 시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다란 나는 의사결정을 할 때도 '이 사람, 저 사람'의 마음을 신경 쓰느라 매번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기획을 하거나 의사결정을 해야할 때면 마음에 불안과 걱정이 넘실댄다.
"네 결정이 중요한 거지. 사람들의 생각은 무얼 해도 모두 달라서 네 결정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네가 판단해서 맞다고 생각되면 그냥 하는 거야."
확신을 주는 말. 남편은 나의 쓸데 없는 생각도 잘 제거해 주었다. 사람들의 말에 중심이 잘 흔들리는 나를 남편은 늘 나의 중심에 무거운 무게추를 달아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무리하지 않는 나'가 되고 싶었고, 나를 흔드는 일상 속에서 '중심을 잡는 나'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욕구가 남편 곁에 머물게 했다.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한다. 오늘도 아마 관계에 있어서 나의 감정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먼저 배려하며 무리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나 혼자 해석해 놓고는 불안과 걱정에 나는 흔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괜찮을 것 같다. 퇴근을 하고 나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며 나를 반겨줄 남편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