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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K장녀의 육퇴

'

by 오미자


장녀인 엄마와 장남인 아빠 사이에 태어나

세 명의 동생까지 둔 나는 그야말로 K-장녀다.


내 어린시절은 보통의 애들의 삶과는 조금 달랐다.


방과 후, 우리 집 가서 놀자는 친구의 당연하고

달콤한 유혹을 매번 뿌리쳐야했다.


동생들을 데리러 가야한다고 말하면 친구는 늘

'너희 부모님은 뭐하시고 네가 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울 애기'소리를 듣는

'아가'충분히 이해못할 일이였을거다.


그 당시 초등학생의 머리로는 어떻게 대답해도

우리 엄마아빠가 아주 나쁜 사람으로 비칠까봐.

나는 항상 '그냥'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동생들과 나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수업이 끝나면 각자의 반에서 엄마같은 큰 언니 오기만을 기다리는 세 명의 코흘리개가 눈에 밟혀

계단을 두개씩 겅중겅중 뛰어 내려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면서는

다른 언니오빠보다 일찍 도착해서 우쭐대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고


맞벌이 하는 탓에 비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데리러 온 적 없는 엄마와, 외로웠던 나를 떠올렸다.

얘네들은 그런 쓸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꼬맹이라 "언니랑 같이갈래"하는 철거머리같은 동생들을 따돌리고

친구네 집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모른척하면 혼자 집도 찾아갈 수 없고

밥도 못 처려먹는 애가 셋이나 있었으니

#큰언니, #책임감이란 태그들이 켜켜이 쌓여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와 괴롭혔다.


어떤 날은 둘째의 손을,

어떤 날은 셋째의 손을 놓치고

또 어떤 날은 동생 셋을 다 잃어버리는

아주 끔찍한 꿈을 꾸고 울면서 깨기도 했다.




내 픽업 루틴은 꽤나 촘촘하고 완벽했다

먼저 둘째의 반을 찾아가 손을 꼭 잡고

여섯 살 때쯤 엄마 아빠에게 원플러스원으로 선물(?)받은 쌍둥이들이 있는 유치원으로 갔다.


유치원 담임선생님께는 오늘 우리 애들이

뭘 하고 놀았으며 반찬은 어떤걸 잘 먹었고

글씨를 아주 예쁘게 썼다는 등의

엄마에게 전할 이야기를 들은 후


인사를 나누곤 집으로 돌어와 엄마가 알려준대로

쌀을 씻고 손을넣어 손등 절반이 잠기면

물을 받아 압력솥에 밥을 얹힌다. 적당히 칙칙칙

소리가 들리면 불을 끄고 전기밥솥에 옮긴 후


엄마가 아침에 해놓고간 반찬으로 밥을 먹였다.

애들을 한데모아 차례대로 씻기고

춥지말라고 수건으로 꽁꽁 싸매 난로 앞에서

온 몸에 로션을 발라준다. '여긴 어쩌다 다쳤어

덜렁대지말고 얌전히해 알았어?' 하며

엄마에게 꼭 말해야할 상처는 없는

체크까지 야무지게 했다.




분홍, 파랑 알록달록 세트 내복을 입은

세 아이들이 잠들때 쯤이면

맞벌이하던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벗은 옷을 걸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려는 엄마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잘조잘 오늘 하루 이야기를 말해주고


'쌍둥이들이 인사를 잘해서 칭찬스티커를 받았다'

와 같은 특이사항을 무사히 전달하고나면

내 하루는 비로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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