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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자 Oct 10. 2024

열세 살 K장녀의 육퇴

'


장녀인 엄마와 장남인 아빠 사이에 태어나

세 명의 동생까지 둔 나는 그야말로 K-장녀다.


내 어린시절은 보통의 애들의 삶과조금 달랐다.


방과 후, 우리 집 가서 놀자는 친구의 당연하고

달콤한 유혹을 매번 뿌리쳐야했다.


동생들을 데리러 가야한다고 말하면 친구는 늘

'너희 부모님은 뭐하시고 네가 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울 애기'소리 듣는

'아가'충분히 이해못할 일이였을거다.


그 당시 초등학생의 머리로는 어떻게 대답해도

우리 엄마아빠가 아주 나쁜 사람으로 비칠까봐.

나는 항상 '그냥'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동생들과 나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수업이 끝나면 각자의 반에서 엄마같은 큰 언니 오기만을 기다리는 세 명의 코흘리개가 눈에 밟혀 

계단을 두개씩 겅중겅중 뛰어 내려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면서는

다른 언니오빠보다 일찍 도착해서 우쭐대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고


맞벌이 하는 탓에 비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데리러 온 적 없는 엄마와, 외로웠던 나를 떠올렸다.

얘네들은 그런 쓸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꼬맹이라 "언니랑 같이갈래"하는 철거머리같은 동생들을 따돌리고

친구네 집으로 도망고 싶었다.


내가 모른척하면 혼자 집도 찾아갈 수 없고

밥도 못 처려먹는 애가 셋이나 있었으니

#큰언니, #책임감이란 태그들이 켜켜이 쌓여

부담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와 괴롭혔다.


어떤 날은 둘째의 손을,

어떤 날은 셋째의 손을 놓치고

또 어떤 날은 동생 셋을 다 잃어버리는

아주 끔찍한 꿈을 꾸고 울면서 깨기도 했다.




내 픽업 루틴은 꽤나 촘촘하고 완벽했다

먼저 둘째의 반을 찾아가 손을 꼭 잡고

여섯 살 때쯤 엄마 아빠에게 원플러스원으로 선물(?)받은 쌍둥이들이 있는 유치원으로 갔다.


유치원 담임선생님께는 오늘 우리 애들이

뭘 하고 놀았으며 반찬은 어떤걸 잘 먹었고

글씨를 아주 예쁘게 썼다는 등의

엄마에게 전할 이야기를 들은 후


인사를 나누곤 집으로 돌어와 엄마가 알려준대로

쌀을 씻고 손을넣어 손등 절반이 잠기면

물을 받아 압력솥에  밥을 얹힌다. 적당히 칙칙칙

소리가 들리면 불을 끄고 전기밥솥에 옮긴 후


엄마가 아침에  해놓고간 반찬으로 밥을 먹였다.

애들을 한데모아 차례대로 씻기

춥지말라고 수건으로 꽁꽁 싸매 난로 앞에서

온 몸에 로션을 발라준다. '여긴 어쩌다 다쳤어

덜렁대지말고 얌전히해 알았어?' 하며

엄마에게 꼭 말해야할 상처는 없는

체크까지 야무지게 했다.




 분홍, 파랑 알록달록 세트 내복을 입은

세 아이들이 잠들때 쯤이면

맞벌이하던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벗은 옷을 걸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려는 엄마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잘조잘 오늘 하루 이야기를 말해주고


'쌍둥이들이 인사를 잘해서 칭찬스티커를 받았다'

같은 특이사항을 무사히 전달하고나면

내 하루 비로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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