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기잼
뜨거운 김이 펄펄 나고 단내가 진동을 한다.
졸음이 미친 듯이 쏟아져서 정신이 몽롱해지고 슬슬 짜증이 솟구친다.
그날은 집에서 엄마 아빠가 딸기를 잔뜩 사 와서는 딸기잼을 만드는 날이었다.
여섯 명의 가족이 다 같이 살았을 때
엄마 아빠는 종종 매실을 잔뜩 사다가 매실액을 만들거나
딸기를 또 엄청나게 사다가 집에서 딸기잼을 만들었다.
매실액이야 설탕이랑 매실을 가득 넣고 베란다에 잘 두면
흐르는 시간이 완성해 주지만 딸기잼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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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3박 4일 여행 가면 사골을 끓이는 10인분은 거뜬히 만들 수 있는 큰 냄비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설탕을 붓고 딸기를 으깨서 저어야 하는데
재밌어 보인다며 거들겠다고 한 마디 한 게 화근이었다
처음 2~30분은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딸기잼을 저었다
중간에 시계를 보니 40분이 지나있는 걸 보고 이제 그만해도 되지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제 엄마가 하라고 넘기려는데,
무심한 듯 너무 가벼운 말투로 "응~계속해~"라는 답만 돌아왔다
또 몇 분이 지나고 이번엔 짜증 섞인 투로 불을 끄꼬 도망가려는데
딸기잼을 흘깃 보더니 "아직 안 됐어!!" 소리치는 엄마가 있었다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고, 할 사람은 나 말고도
동생 1, 2, 3호 셋이나 더 있는데
짜증이 나면서도 엄마가 하라니 온갖 싫은 티를 내며 불을 다시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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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내가 그 당시 딸기잼을 젓고 있던 불쌍한 열여덟 살의 나를 다시 보아도
엄마가 소리를 질러도 불 끄고 도망가면 그만인데
아예 때려치울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선택지 자체에 없었다.
하지만 내 인내심이 어딜 가겠나...
내 분노는 결국 시간이 지나, 딸기잼처럼 뜨겁고 뭉근하게 졸여져서는
"아 엄마가 해!!!!!! 진짜 그만하고 싶다고!!!!!! 안 해!!!"
"이딴 걸 왜 만들어 먹겠다고 해서!!!! 먹고 싶은 사람이 해 그럼!!" 등 고함으로 흘러나갔다
진짜 웃긴 건 고함을 지르는 그 순간에도
내 손은 딸기잼이 탈까 봐 휘휘 돌아가고 있었다는 거 (쓰면서도 킹받네)
내 고함에도 엄마는 큰 반응하지 않고
방금 자다 일어난 사람이 하는 하품처럼 느긋하게
"어~ 할 수 있어~" "안 죽어~ 괜찮아~" 등으로 잼스라이팅을 했고,
결국 난 그 많은 딸기 알맹이들을
비로소 잼의 모습으로 만들어냈다
-그 뒤로 가족들이 빵에 잼 발라먹을 때마다 '"이거 누가 만들었지!?!?!!?"하며, 생색냄-
나는 그 딸기잼을 저을 때 정말 팔이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떨어졌고,
죽을 것 같다고 수십 번 얘기했지만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졸도하지 않았다.
요즘 '회사 그만두고 싶어서 죽겠다' 싶었는데
문득 엄마랑 딸기잼이 떠올랐다.
정말 다 때려치워도 되는 순간은 내가 죽겠다 싶은 순간이 아니라 딸기잼에서 타는 냄새가 날 때다
시도때도 없이 바닥나는 내 인내심의 그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