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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Mar 07. 2018

혜원은 간을 보지 않는다-리틀 포레스트

이 영화는 정확함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는 소위 힐링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내가 쓰는 내 글이니까 내 맘대로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정확함에 관한 영화다. '정확함'이라는 말은 어쩐지 힐링과 어울리지 않는다. 힐링이라고 하면 대충해도 될 것 같고 느슨해도 될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내가 이 영화를 정확함에 관한 영화라고 보는 건 요리 장면들 때문이다. 영화는 계절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은 요리를 축으로 돌아간다. 계절은 새로운 요리를 스크린에 소개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그 요리 장면들에는 정확, 혹은 적확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준비된, 정확한, 도구들

서울에서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이 처음으로 해 먹는 요리는 수확이 끝난 배추 밭에 남아있는 배추 밑동을 자르면서 시작된다. 눈까지 덮혀 꽁꽁 얼어버린 배추 밑동으로 까만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식칼이 서걱하고 찔려 들어간다. 리듬이 '반복'으로 만들어진다면, 이 영화의 리듬을 만드는 첫 번째 장면은 배추 밑동으로 들어가는 식칼이다. 식칼을 밀어넣는 혜원의 손놀림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배추 밑동을 잘라내려면 부엌에서 들고 나온 그 식칼만한 것이 없다. 필요한 도구가 정확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씬이 반복되면서 이 영화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빈대떡 위에 올릴 가스오부시를 얇게 저미기 위한 대패를 갖춘 집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데, 영화에선 꽤 오래된 듯한 대패가 걸림 없이 쓱쓱 가쓰오부시를 저며낸다. 시루떡을 만드는 장면에선 깨끗한 동그란 나무 찜틀이 등장한다. 찜틀을 김이 오르는 찜통에 올려둬야 떡이 완성될텐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혜원은 동그란 찜통이 틈새 없이 딱 올라가는 동그란 찜통위에 찜틀을 올린다. 다른 요리들도 다 마찬가지다. 딱 그 요리에 필요한 도구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배추 밑동을 자를 때 쓴 플라스틱 손잡이 식칼은 딱 그 장면에서만 나올 뿐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각각의 재료를 자를 각각의 칼이 도마 위를 긋는다.

정확한 도구에 대한 애착은 감 말리는 장면에서 더 도드라진다. 혜원이 껍질을 도려내 둥그렇게 깎은 감을 말리는 장면에서는 끝이 뾰족한 플라스틱 곶감걸이가 등장한다. 혜원의 엄마가 곶감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플라스틱 곶감걸이 대신 짚풀이 나오는데 말이다. 과거 시점에서는 플라스틱 곶감걸이가 없고, 혜원의 현재 시점에서는 이게 등장한다. 혜원이 곶감 만드는 장면에서 짚풀이 사용됐다면, 정확한 도구의 등장이 만들어내는 이 영화의 리듬이 깨졌을 것 같다.


정확한 도구를 정확한 타이밍에 사용하는 것 못지 않게, 이 영화를 '정확함'에 관한 영화로 읽게 하는 장면은 역시 혜원의 요리 장면에서다.


혜원은 간을 보지 않는다

영화에서 혜원은 간을 보는 법이 없다. 요리의 간을 맞추기 위해 끓는 육수에 괜히 숟가락을 집어 넣는다던가, 소금을 더 넣을까 말까 고민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혜원이 자신의 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딱 한 번 나온다. 시루떡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내놓았는데 재하(류준열)가 한 마디 하는 장면이다. 혜원이 만든 떡을 맛보더니 '짜지 않은 데 짠 맛이 난다'고 말하는데 혜원이 속으로 '귀신 같은 놈'이라고 하는 장면이다. 팥을 삶을 때 소금을 부러 더 넣어 짠 맛을 남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굳이 팥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입에 갖다대는 식으로 간을 보는 짓을 하지는 않는다.


간을 안본다는 건 계량이 정확했다는 의미다. 손 대중과 감각으로 계량하지만 그 계량이 정확하니까 괜히 간을 볼 필요가 없다. 간을 보지 않으니까 요리의 과정이 대단히 간단해진다. 썰고 다듬고 물 붓고 불 올리고 끓여내고 그릇에 내어놓는 과정 사이사이의 군더더기가 사라진다. 간을 안 보니까 직선적으로 달려갈 수 있다. 간을 봤다면, 직선은 꼬인다.


만약 요리할 때 간을 보는 법 없는 혜원이 만든 음식을 맛 본 친구들이 한 번이라도 '맛이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영화를 보는 나는 단순히 '음식 맛이 이상하구나'하고 생각하는 걸 뛰어넘어 약간의 고통까지 맛봤을 것 같다. 정확한 세계의 균열을 지켜봐야하는 고통이랄까. 다행히도 간 보지 않는 혜원의 음식을 맛본 영화 속 모두는 모두다 완벽하게 만족한다. 정확하니까, 만족한다.

정확함에 관한 영화

정확함에 관한 영화고, 그래서 이 영화는 '힐링' 영화가 아니라고 썼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힐링'이라는 건 결국 정확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정확한 도구를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하게 부리는 것, 그래서 간을 보는 일처럼 '도돌이표'를 그릴 필요가 없이 행위를 완수할 수 있다는 것, 거기서 힐링이라는 게 생겨나는 것 같다. 혹시 뭐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앞으로 일이 틀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실수하거나 놓친 것은 없는가와 같이 자잘하고 꾸준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 따위 없이 쭉 직진하면 매번 만족스러운 요리가, 삶이 만들어지는 세계. 리틀 포레스트가 그린 세계는 '정확함'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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