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문PD Dec 16. 2016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바치는 송사

영화 <라라랜드>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이 봄과 여름을 지나 다음 겨울을 채 맞이하기 전에 헤어진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다. 많이 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엔 누구나 한 때 사랑했고 각자의 꿈을 맘껏 응원해주고 응원받았던 사람들이 과거의 나를 거울삼아 노래하고 춤춘다. 우리의 OST였던 어떤 곡은 시간이 흘러 단조로 변주된다. 사랑으로 열린 문이 닫히기까지는,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도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영화는 그런 이야기다. 그때 우리가 밤새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재잘댔던 우리의 꿈이 어떤 형태로든 현실이 되었을 때, 때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일 수 있는가. 우리가 더 이상 우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되기도 하는가.  

영화의 끝자락. 5 years later라는 자막이 뜨고, 영화는 그들이 함께 할 수도 있었던 그러나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가정법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 때 우리가 우리로 남아 있었더라면, 우리가 우리의 옆을 지키고 있었더라면… 가정법은 단순히 과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현재 시점으로부터 출발해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나와야하는 수고스러운 문법이다. 그리고 그 일은 정말 벌어지지 않았음을 재확인하는 판결이다. 우리가 한때 꿈꾸었던 것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 한때 사랑했던 우리는 이제 정말 헤어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문법.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서로의 꿈을 격려하며 사랑했던 그때의 예언과 희망들이 드디어 이뤄졌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다. 5년 후 남자가 드디어 이뤄낸 꿈의 자리로, 여자가 남자의 꿈에 붙여준 이름 그대로 간판을 단 재즈 클럽으로, 한때 그와 사랑했지만 지금은 다른 이와 함께하고 있는 여자가 걸어 내려갈 때부터 관객의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린다. 이제는 정말 미뤄놨던 송사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별하지 못한 모든 꿈들, 여전히 헤어지는 중인 사랑에 대해 가장 따뜻하고 정중하게 쓰인 작별 인사. 

남자는 한때 그들 스스로를 위해 연주했던 음악을, 이제는 다른 남자와 함께 객석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연주한다. 한없이 달콤한 가정들, if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그 모든 장면들은, 그 모든 장면들이 끝나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우리의 마음으로 아프게 스며든다. 울고 싶었다. 라라랜드. 2016년의 가장 달콤하고 씁쓸한 이야기. 돌이킬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한 송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