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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Jul 29. 2016

태풍이 지나가고: 추억에서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태풍이 지나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홀로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종종 들러 아버지의 유품 중 돈이 될만한 것을 찾아 전당포에 맡긴다. 한 때 소설가로 불렸지만, 지금은 수입이 별로 없는 흥신소 직원이다.

아내와는 이혼했다. 야구부원인 아들은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다. 돈이 없어 위자료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미즈노 글러브를 사주지 못했다. 그런데 아들의 손에 그 글러브가 끼워져 있다. 전 부인이 요즘 만나는 남자가 아들에게 사준 것이다. 


모든 게 점점 나로부터 멀어지는 기분이다.

아니, 모든 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열 한 번째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속 남자 료타는 자기로부터 멀어지는 것들을 붙잡을 힘이 없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난 아내를, 점점 어색해지는 아들과의 관계되돌릴 수 없다. 붙잡을 수 없는 건 또 있다. 바로 료타 자신.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미래가 이제는 모두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되돌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추억을 회상하는 일,

또는 그때의 추억을 다시 살아보는 일.



태풍이 몰아치던 밤, 료타의 아버지는 료타를 연립주택단지 놀이터로 데려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미끄럼틀 밑에서 함께 과자를 먹었다. 료타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밤,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칠 때 료타는 아들과 함께 미끄럼틀을 찾는다. 비 때문에 눅눅해진 과자를 나눠 씹으며 자신의 추억을 회상하고, 동시에 아들에게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료타가 가장 잘 하는 일은 돈을 벌거나 가장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아들에게 단단한 미래를 선물하는 건 료타의 능력 밖의 일이다. 대신 부스러지기 쉽지만 떠올릴수록 달콤하고 아련할 어떤 순간을 남겨주는 일, 다시 말해 추억이라는 걸 쌓는 일, 기억될만한 어떤 순간을 만드는 일은 료타가 잘 해내는 일이다. 마치 이제 우리는 곧 헤어질 거라는 걸 아는 사람들처럼, 함께 하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시간을 추억하며 음미하길 바라며, 료타는 아들과의 '지금'을 '과거'에 미리 묻어둔다.


영화의 원래 제목은 <바다보다 더 깊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로 바꿔 한국 개봉한 이 영화 제목 때문에, 태풍이 지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유심히 봤다. 센 바람에 우산이 제멋대로 구겨진 채 놀이터에 도착한 헤어진 아내는 할머니가 걱정한다며 아들을 데리러 왔다가 료타의 설득에 잠시 미끄럼틀에서 비를 피하기로 한다. 다시 잘 해보자라던가, 내가 잘못했다라는 식의 변명은 없다. 그저 두 사람은,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 사이 아들이 급한 목소리로 부른다. 아빠가 낮에 사준 복권이 없어졌다고. 아마도 태풍을 뚫고 놀이터로 오는 사이 주머니에서 빠져 바람에 날린 건 아닐까.



작은 손전등과 가로등에 의지해, 이제는 남이 되어 서로 다른 집에 살고 있는, 한 때 행복했던 세 사람이 모두 비를 맞으며 복권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장면이 원경으로 제시된다. 표정이 보이지 않는 풀샷에서 세 사람은 이리저리 뛰며 보물찾기 하듯 떨어진 복권을 하나 둘 줍는다. 당첨 확률이 너무나 낮은, 그래서 거기에 모든 기대를 건다는 게 참 우스운 일이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대하게 하는 것을 우리가 '희망' 혹은 '행복'이라 부른다면 그 밤 세 사람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건 복권이 아니라 행복의 조각들일 것이다. 당첨되지 않는다고 해도, 기대만으로도 설렜다면 그걸로 충분한.


지금의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도 아니고, 내가 꾸리고 싶었던 가족도 지금 이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야 한다. 추억 속에서만 살 수 없고, 미래라는 걸 그릴 수도 없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지나간 것을 놓아주는 일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은 별처럼 아름답고 달콤하지만, 밝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해선 저 별들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 밤이 걷히고 별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해가 빛나는 내일이 시작된다.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때처럼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었던 태풍 속 놀이터에서의 시간은, 아쉽지만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야 태풍이 지나간 후의 맑은 날이 열린다. 추억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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