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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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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Apr 01. 2021

니가 아이라는 걸 자꾸 까먹어

이 빼다 반성하는 아빠


 너도 나도 처음 겪는 너의 나이 여섯 살. 유치가 흔들리는데 너는 그걸 너무나 기뻐했지.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나도 이제 형님'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비어있는 이빨로 씩 웃는 것'이었기 때문에 너는 이빨이 조금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후부터는 생각날 때마다 혓바닥으로 그 이빨을 톡톡 밀고 당겼어.

너 그러다가 이빨 삼킬지도 몰라! 하면서 굳이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이는 좀 내버려 두고 있으면 좋겠다고 몇 번 이야기했지만 딱히 듣는 눈친 전혀 아니었구.


 그러다 며칠 지나니까 이젠 정말 이가 앞뒤로 90도쯤 왔다리갔다리 하더라. 뿌리가 잇몸에 겨우겨우 매달려있으니 네 혀끝이 툭툭 닿을 때마다 곧 빠지게 생긴 그 조그만 이가 내 쪽으로 한 번, 네 목젖 쪽으로 한 번 인사하더라. 진짜 웃겼어. 이젠 정말 이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생겼다!고 했더니 먼저 얘기하더라. 치과 가서 이 뽑을래.


 오. 대단한 결심이네. 하지만 막상 치과 문 열고 들어가서 뒤로 넘어가는 진료용 의자에 누워 쏟아지는 조명 받으며 입 벌리고 있으면 지금 이 결기와 호기는 금세 사라지고 말 거야.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손잡고 치과로 갔지. 어린이 전용 치과는 아니었고 내가 다니던 그냥 어른 치과였어. 차 타고 어린이 치과 가는 그 시간 동안 괜히 겁먹을까 싶어서 걸어서 5분인 어른 치과로 후다닥 갔지.


 대화중에 알게 된 건데 마찬가지로 너 또래의 딸을 키우는 듯한 치과 의사 선생님은 꽤나 당당하게 입 벌리고 누운 네 모습에 어쩐지 고무적이었고, 집게로 뚝 하더니 너의 이는 최현우 마술카드처럼 번쩍하고 수술용 그릇에 탱그랑하고 나타나더라.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너도 나도 놀라고, 이 작업이 이토록 순식간일 수도 있구나 의사 선생님도 놀라고. 난 너무 기뻤어. 나 같은 어른도 어떻게든 미루고 안 하고 싶은 치과 치료를, 어쩜 너 같은 어린이가 울지도 않고 한 번에 해낼 수 있는지!


너의 첫 발치의 기록


 한 번 빠지기 시작하니까 우수수수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잇몸 탈출하겠다고 이빨들이 손드는 것처럼, 자고 나면 이거 흔들린다 저것도 흔들린다며 너의 흥분 섞인 보고가 이어졌어. 치과에 가보니 발치하기엔 아직까지 잇몸을 붙잡고 있는 아이들이어서 일단 더 두고 보기로 했고, 그러다가 발견한 작은 충치 치료도 그 자리에서 금방 해치웠어. 오. 이건 정말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겠어. 발치는 그렇다 쳐도, 이빨 사이를 휘젓는 그 금속 도구들의 기분 나쁜 차가움까지 마치 익숙하다는 듯 참아 내다니! 이것도 재능이라면 너는 천재라고 생각했어. 물론 잠깐 겁먹고 눈물방울 찔끔 흘리긴 했지만 그날 예정에 없던 충치치료까지 무리 없이 끝내고 솜뭉치를 물고 있는 너에게 소원이 무어냐 물었고, 너는 그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장난감 슬라임을 골랐던가 어쨌던가.


 그런데 그게 좀... 너한테는 힘들었나 봐.


 한 해 지나 일곱살이 된 너. 이젠 정말 빼내야 할 정도로 잇몸에서 영구치에 밀려나고 있는 아래쪽 앞니를 뽑고 또 어금니 옆에 생긴 충치를 치료하러 치과를 예약한 오늘. 넌 치과 의자에 앉기도 전부터 울기 시작했고 소리 질렀고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바둥댔어. 의사 선생님은 자기 딸 달래듯 가볍게 말을 건넸지만, 너는 반말로 싫어! 안 뽑아! 꽥꽥 소릴 질렀어. 옆에 대기 중이던 간호사 선생님은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대충 알겠다며, 속으로 삼키려고 했으나 힘 조절에 실패한 한숨을 포옥 내쉬시더라.


 내 상태는 이랬어. 예상 밖으로 씩씩했던 너의 첫 발치의 기억이 코너 한편에서 1라운드가 울리기를 기다리며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두 팔 뻗어 인사하고 있는데, 치과 의자에 누워있던 네가 입은 절대 벌리지 않은 채 달려와 1라운드 공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첫 발치의 기억의 뒤통수를 무지막지하게 패고 있는... 그런 룰도 없는 종합격투기 경기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 대체 무슨 일이야? 하고 정신 차려보니 사실 그 뒤통수를 맞고 있는 건 나였고. 여하튼, 무슨 말이냐면 당혹스러웠고 화가 났었단 뜻이야. 네가 오자고 한 치과에서, 이렇게 뿌애애액!!!!! 치과를 뒤집어버리다니.


우리 내일 가기로 한 여행, 이렇게 하면 취소할 거야!

선생님한테 반말하지 마!

손 내리고 입 아~해!


 이를 뽑네 마네, 충치 치료를 하네 마네, 둘 다는 못하겠고 이만 뽑겠다더니, 다시 말 바꿔서 이 뽑지 말고 충치 치료만 하겠다 그러고. 그러다 또 울고. 내 속에선 Anger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어. 너무 과열됐는지 나중엔 등에서도 땀이 나더라.

 어찌어찌 협상 끝에 이만 뽑는 걸로 정하고 일은 마무리됐어. 이번에도 최현우 카드마술처럼 모든 일이 순식간이었음 좋았겠지만, 우린 꽤 험난한 감정 노동 끝에 서로 감정이 상해버린 채 치료가 끝났어. 전엔 훌륭했잖아. 전엔 씩씩했잖아. 전엔 안 그랬잖아. 그 순간 이상 과열 중인 나를 보며 치과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


"애들 원래 그렇죠.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죄송합니다."


 겨우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너를 안아줬어도 되는데 여전히 치사하고 더럽게 뒤끝이 남아 있었어. 다음부턴 그러면 안된다부터 시작해서, 내가 나에게도 하지 못할 말들을 해버리고 말았어. 근데 생각해보면, 치과 치료라는 게 나는 그렇게 달가운 것이었냐고. 아니잖아. 피할 수 있음 피하고 싶고, 어렸을 때 난 너보다 훨씬 훨씬 더 울며불며 난리 쳤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한데. 왜 그랬을까, 난 너한테.


 Anger가 지나간 자리를 더듬다가, 그제야 내 잘못이 뭔질 알게 됐어. 나는 네가 아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던 거야. 치과를 겪어봤으니 다음번 치과를 무서워하는 게 당연한 나이, 1초 만에 생각도 결심도 마음도 달라지는 나이, 울다가 웃는 나이, 웃다가 우는 나이... 너는 그런 '아이'라는 걸 나는 계속 까먹고 너한테 나보다 더 완성된 인간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아. 너는 아이인데, 너는 아이인데 그걸 왜 자꾸 잊을까.


미안해. 자꾸 까먹어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 보면서 내가 많이 울었었거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곧 죽으리란 걸 알면서도, 아이에게 여기는 단체 게임을 하는 곳이고 1000점을 따면 진짜 탱크를 주니까 신나게 잘해보자고 하는 아빠의 마음 때문에 많이 울었는데. 여기는 지옥이지만, 귀도 아저씨는 아들 죠슈에가 아이라는 사실을 끝내 잊지 않았던 건데. 아이에게 나보다 나은 어른처럼 행동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아서라. 영화 보며 울면 뭐하니.


마음을 추스르고, 오늘을 되돌아보는 밤이야. 니가 아이라는 걸 잊지 않으면 좀 더 나은 아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밤이야. 반성하는 밤이야. 니가 아이라는 걸 까먹지 말자, 다짐하는 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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