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위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기저귀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다가, 저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정물이 대략 1년 안에는 우리 집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서운했습니다.
아이가 자라 자연스레 기저귀를 떼듯이, 이 시간들도 결국 지나갈 테니 어쩐지 쓸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사라질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 찍는 행위의 서글픔 같은 것이 소파 위 기저귀를 보다 밀려왔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폰을 들어 기저귀를 찍고 나서 늦은 밤 이를 닦는데 갑자기 오래전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포레스트 검프'가 동네 나쁜 친구들로부터 쫓길 때, 목이 터져라 "Run, Forrest! Run!"하고 응원하는 제니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달리는 동안 다리에 묶여있던 교정장치가 산산이 박살 나는 씬이었습니다.
그 순간 달리기가 포레스트의 인생을 바꿨고, 달리기는 인생을 바꾸는 순간에 늘 함께하죠. 곧 사라질 기저귀를 보다가 포레스트 검프의 다리 교정 장치를 떠올린 건 왜일까 했는데, 이런 이유는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대개 사라지는 것들을 좋아하고 쓸쓸해하고 달콤해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인생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진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그가 다리 교정 장치 따위 통쾌하게 해체해버리면서 인생을 달려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봐 아쉬워하는 마음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마음이 자란 것인지 아니면 마음에 다른 마음이 덧칠된 것인지, 뭐라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봄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