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빛낸 29초라는 작품
2025년 29초영화제 수상작 리뷰 (1)
제가 올해 29초영화제 명예홍보대사를 맡게 된 후 지금까지 여러 29초영화제가 열렸습니다. 한국경제신문과 함께 매번 다른 주최사가 영화제를 주최한 만큼 다양한 주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가 빛났는데요, 이쯤에서 올해 29초영화제 대상 수상작들을 간단히 리뷰해 보고자 합니다.
제11회 신한 29초영화제 일반부 대상: <밥 한 번> - 정지현, 배주형 감독
우리는 일상에서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인삿말처럼 건네고 잊고는 하는데요, 만약 이 '밥 한 번 먹자'는 약속을 한번에 실행할 수 있는 모임이 있다면 어떨까요. 이 작품은 이 상상을 과감히 현실에 옮깁니다. 각기 다른 시기와 장소, 상황에서 "밥 한 번 먹자"고 하고는 헤어졌던 인연들이 다시 만나서 모처럼 회포를 푸는 시간. 재치 있는 상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온 인물의 모습을 통해 이렇게 해서라도 모임의 기쁨을 누리고픈 마음이 느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빠른 편집과 배우의 1인 10역 연기가 어우러져 '29초'라는 형식적 한계를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제11회 신한 29초영화제 청소년부 대상: <두 필름 속, 모임이란 영화> - 최유혁 감독
두 남녀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들만의 '모임'을 영화는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질감과 비율, 색감의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흑백영화부터 아날로그 컬러 영화, 디지털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변천사를 따라 모임의 역사를 훑는 구성은 두 사람이 지닌 각자의 필름이 만나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 감을 감성적으로 비유합니다. 더불어 이런 색다른 연출은 스토리의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끝까지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개성으로 빛을 발했습니다.
제3회 국립생태원 29초영화제 일반부 대상: <사이좋게 지내자!> - 김모은 감독
지구가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왜 그런지 묻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물을 마시고 땅에서 난 걸 먹고 숨을 쉬기에 자연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다시 복원된다는 엄마의 설명은 6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기에 어떤 메시지보다 쉽고 간결하게 와닿습니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사이좋게 지내자!"고 자연에게 외치는 아이의 모습은, 이처럼 순수한 마으로 자연과 친구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공존할 수 있음을 되새기게 하며 흐뭇한 웃음을 안깁니다.
새턴바스 29초영화제 일반부 대상: <변하지 않는 이야기> - 장민석 감독
돌이켜 보면 우리가 어릴 적 우리의 작은 몸을 뉘이던 ('다라이'라고 흔히 부르던) 붉은색 고무대야가 우리 생애 첫 욕조였습니다. 어머니의 소중한 보살핌이 손길을 타고 전해졌던 그때 시작된 우리들의 욕실 이야기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는 현재로까지 전해져 옵니다. 어린 시절 사진으로부터 출발해 사실감을 높인 가운데, 사랑하는 가족과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앉아 즐거운 순간을 공유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 삶과 다양한 얼굴로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욕실의 의미를 상기시킵니다.
제12회 박카스 29초영화제 일반부 대상: <가만히 있으면 시원하다> - 김동규 감독
이 작품의 제목인 '가만히 있으면 시원하다'는 말은 더위를 호소할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흔히 듣는 표현입니다. 더운 여름날 평상 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가만히 누워있는 주인공 머리맡으로 해골물, 해변 등의 CG 효과가 자연스럽게 실사와 오버랩되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다 문득 들리는 시원한 음료의 소리를 따라가 보면 나타나는 것은 시원한 '얼박사'. 시원한 피서의 기분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시원한 여름을 보내게 해주는 '얼박사'의 매력을 재치 있게 연출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제12회 박카스 29초영화제 청소년부 대상: <지금 우리 여름은> - 배수연, 주혜린 감독
좀비들에 의해 점령당한 학교. 아직 살아남은 학생들이 좀비들의 눈을 피해 교실 밖으로 나오려는데, 실수로 박카스 병을 찬 소리에 의해 좀비들에게 위치가 들키고 이내 전력으로 달아나던 도중 '컷' 소리가 들려옵니다. 알고보니 학생들이 학교에서 좀비영화를 찍고 있었던 것.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박카스 한 병을 마시며 더위도 막지 못하는 청춘을 만끽합니다. 학교 배경 좀비영화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연출하는 한편, 이를 치열한 청춘의 현장으로 전환시키며 더위에 굴복할 수 없는 꿈의 이미지를 박카스와 유쾌하게 결합시킵니다.
이렇게 올해 29초영화제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은 작품들을 간략히 리뷰해 봤습니다. 영화를 공부하든 하지 않았듯,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29초영화제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매력의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운데요. 올해 남은 기간동안 개최될 29초영화제에서는 또 어떤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들이 나올지 무척 기대됩니다.
29초영화제의 역대 수상작 및 출품작을 29초영화제 홈페이지 내 '이구시네마'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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