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오늘 버스에서 내리면서 정류장에 어제 내린 눈이 하나도 녹지않은 것을 발견했다. 녹기는 커녕 하루종일 햇빛을 받지 못했는지 반들반들 얼음이 얼어있었다. 아까 내가 버스를 탄 곳과는 불과 두 정거장 차이일 뿐인데, 두 곳은 분명 어제 같은 양의 눈이 내렸을텐데, 아까 그 곳은 눈이 언제 왔냐는 듯 말끔히 녹아있었고 이 곳은 아직도 눈의 흔적이 역력했다. 지금 이 정류장도 햇빛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말끔히 눈을 녹여낼 수 있었을텐데.
이 정류장의 땅이라고 햇빛을 받고 싶지 않았을까.
기어이 반들반들 얼어붙어 사람들이 자신의 위를 아슬아슬 걷게 되기를 바랐을까.
그럼 너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갔으면 될 것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땅이 햇빛을 받고싶다한들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었을까.
같은 상처를 받더라도 금방 낫는 사람과 유독 생채기가 오래 가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땅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있으니 스스로 햇빛을 찾아 떠나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땅보다 복잡하다. 땅은 햇빛을 가리는 건물들만 부시면 되지만 사람은 발이 있어도 여러가지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어떤 의미로는 햇빛을 가리고있는 것들에서 벗어나기 더 어렵다.
오랫동안 상처가 낫지않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찾아 나서’ 라고 쉽게 말하기보다 말없이 자그마한 핫팩이라도 대줘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