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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Jul 04. 2023

오래 된 옷을 정리했다.

나 없으면 다 소용 없다.


다 소용없다.


'내가 죽었다고생각하면 아무 것도 소용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죽었다 고생각하고 다 정리하고 버리는거다. 오래 전부터 오래 되고 안 쓰는 물건이나 옷들을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는 일이 행동으로 이어졌으면 이상적이지만, 언제나 몸과 마음은 불일치를 보이고 어긋난다.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하고 심플하게 살자는 주의에 발을 걸치기 위해 마음애를 써 보지만 쉽지 않았다. 갑자기 몸가 마음이 요동을 친 이유는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 될 거라는 둥, 엄청 난 비가 퍼 불 거라는, 기간이 길게 이어 질 거라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엄청 심란해졌다. 우리는 아직 아이들이 분가하지 않은 어른만 4명이 산다. 그것도아파트 일층에서. 아파트 일층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장마가 오면 습기가 말도 못하게 습해서 제습기를 24시간 가동해야 된다. 어른 만 4명이라는 것은 각자가 차지하는 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답답증이 있는 나는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열이 올랐다 내렸다(갱년기?) 한다는 거다.


'그래 치우자, 버리자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다 버리는 거다.' 사실 정리를 안한 건 아니다. 옷장이며 싱크대, 신발장까지 정리를 두 번 했었다. 그런데 차마 용감하게 버리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버릴려고 손에 들면 나중에라도 쓰일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래서 또 자리를 내어 주고 떡하니 한자리 차지하도록 했다. 이거는 나중에라도, 아거는 아직 입을 만 해서, 이건 살빼서 입어야지, 이건 새건데, 이건 이건.... 이러다가 버리는 일 대신 다시 쟁여 놓는 일을 반복했었다. 더이상 이대로는 안된다. 이제는 결심을 아니 결단을 해야 될 상황에 놓였다. 장마도 장마지만, 넘쳐 나는 짐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연식으로 봐도 꽤 오래 된 살림 살이를 보유한 나는 뒤집어도 서너번은 했어야 했는데 아직 제대로 뒤집어 본적이 없으니 이번에 제대로 한 번 뒤집어서 구질구질한 집구석은 물론 나의 정신적인 위생까지 깔끔하게 새단장하려고 허리에는 복대를 단단히 묶고 작업에 돌입했다.


제일 먼저 한 작업은 옷장 정리이다. 그 중에서 내꺼부터 정리해서 버린다. 일단 옷장에 걸려 있는 모든 옷들을 방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소독제를 뿌려 옷장 안을 소독하고 닦고 말렸다. 옷장을 소독하면서 이 일이 처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제 이렇게 옷을 다 꺼내고 소독하고 청소 한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살림에는 빵점이다. 방바닥에 내려 놓은 옷은 엄청 났다. 외출 할 때는 입을 게 없었는데, 내 옷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이다. 오래된 옷에서 뿜어내는 먼지로 목과 코가 칼칼해졌다. 일단. 3~4년 전의 옷은 버린다. 작아진 옷은 버린다. 우리집은 일층이라 습기가 장난이 아니기에 곰팡이 핀 옷은 버린다. 그럼에도 입어서 불편한 옷도 버린다. 아이들이 버린다고 내 놓은 옷을 아깝다고 내가 입을 거라고 챙겨 놓은 옷은 버린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재활용으로 버리는 옷은 비닐에 담고 보니 옷장에 걸릴 옷보다 더 많았다. 비닐에 담긴 옷은 아쉬움이 남기 전에 재활용 박스에 냅다 버리고 왔다.


그 다음은 남의 편 옷이다. 남의 편에게 맡기면 이것도 입고 저것도 입는다고 할까봐 내가 알아서 버리기로 했다. 3년 된 옷은 버린다. 셔츠는 계절별로 두 개만 두고 버린다. 물론 회사 다닐 때 입던 셔츠라 건질 것은 별로 없었다. 오래 된 양복도 버린다. 늘어진 티셔츠와 바지도 버린다. 오래 된 외투도 버린다. 다 버리고 나니 넓어진 옷장 만큼이나 정말 속이 후련했다. 널널해진 공간에 제습제도 넣고 방충제 (좀약)도 달아 주었다. 제발 뽀송뽀송해져라 !!. 저녁에 돌아 온 남의 편에게 내 마음대로 옷 정리해서 버렸다고 말했더니 "잘 버렸다. 없어도 산다." 내 옷과 남의 편 옷은 정리가 되었다. 그 다음은 아이들 옷을 정리해야 되는데 ...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내 속으로 난 자식인데도 남의 편만큼 수월하지 않다. 엄마 말씀대로 버겁다.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 엄마가 마지막에 남기신 말씀처럼 내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면 옷이 뭐가 필요 있으며, 손가락에 낀 반지가 뭔 소용이 있겠나, 싱크대 구석 구석 올려 둔 그릇들이 뭔 소용이 있으려나 싶다. 내가 없으면 다 소용없으니 미루지 말고 지금 즐겁게 살아, 돈 모으려고 애 쓰지 말고, 물건 사 모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부족한 대로, 아쉬운 대로 사는 거다. 엄마의 말씀처럼 잔잔하게 이어지는 작고 큰 물건이 내가 없으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항상하고 있었다.


남의 편의 말대로 "없어도 산다." 맞다.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살아 질 것이다. 오래 된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홀가분함으로 옷장을 바라 보았다. 다시 새 옷을 사 입고, 예쁜 그릇에 맘을 빼앗겨 구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옷을 버렸으니 내일은 여기 저기 쌓여 있는 플라스틱 반찬통과 일년에 한 두번 사용하는 그릇과 전기제품을 주방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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