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챙겨 먹어야 할 텐데 ...
영양제를 구입했다 또.
영양제를 구입했다. 하긴 그 전에도 수차례 구입은 했었다. 영양제는 몸이 신호를 보낼 때마다 사기도 하고, 홈쇼핑에서 이 나이에는 이걸 꼭 먹여줘야 된다는 말에 이끌려 결제를 해 버리기도 하고, 대형마트에 높게 쌓여 있는 영양보조 식품을 목이 아프도록 치올려보다가 덜컥 카트에 담아 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구입한 약은 매번 실패를 한다. 가장 큰 원인은 밥을 제 때 챙겨 먹지 않으니 밥을 건너 뛸 때마다 약도 당연이 거르게 되고, 그 다음은 내 성질에 못 이겨 내 몸을 잘 챙기지 않는 못된 버릇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힘주어 이야기 하고 싶은 변명은 알약이 너무 크다. 약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먹을 때마다 긴장이 된다. 알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시면 스르르 넘어 가야 되는데 물만 넘어 간다. 한번, 두 번 그것도 세 번까지 물만 삼키다 보면 알약 특유의 향과 맛이 입안에 가득 차면서 목구멍까지 약기운이 스멀거리면 오랜 시간 남아있다. 어쩌다 한 번 만에 알약이 넘어 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미끄러지듯 넘어가는 게 하니라 허들 넘듯 걸리고 걸려 겨우 떠내려간 알약은 가슴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숨 쉴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약기운과 하루 종일 마주해야 한다. 마법처럼 그 무엇에 이끌려 가끔씩 약을 구입하지만 매번 이러한 이유를 핑계로 되풀이하면서 약을 복용하는 일이 부담이 되었다.
이제는 정신을 똑바로 챙기고 매일 영양보조제를 먹어야 할 때가 왔다. 때가 왔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그 신호에 적절하게 대응해 줄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넉넉하게 사다놓고 즐비하게 진열만 해 둔 영양제를 살펴보았다. 이건 기간이 지나서 버려야 되고, 저것은 다른 것과 같이 먹어야 되는 것이고 요것은 알약이 너무 커서 목구멍에 안 넘어 갈 것 같았다. 또 이런 저런 이유 있는 핑계를 읊으면서 인터넷으로 종합영양제를 검색하고 있다. 약을 구입하는데 있어 나만의 조건을 정리했다. 첫째는 한 두 개의 알약으로 기본적인 영양을 보충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은 하루에 한 번 또는 두 번 만 먹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하루 한번이면 더 좋다. 그런데 이 조건에 적합한 게 있을까 싶다. 세 번째는 알약의 크기가 작아야 한다. 알약이 작으면 작을수록 구입하는데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며 구입 조건 일 순위에 넣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굳이 밥을 챙겨 먹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알약이면 더 좋으련만 이 조건은 빼기로 했다. 어떤 보약보다도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약을 먹기 위해 끼니를 제때 챙겨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 까칠한 조건을 내세워 하루라도 결석 없이 챙겨 먹을 수 있는 종합비타민 영양제를 찾고 있었다. 폭풍 검색으로 드디어 찾았다. 하루에 한번 먹는, 알약의 크기는 검정콩정도의 그야말로 콩알 만 한, 그리고 딱 세 개로 기본적인 비타민이 보충이 되는, 아주 매력이 터지는 약을 발견했다. 다른 비타민제 보다는 가격이 조금 센 편이기는 하지만 내가 찾는 조건에 맞으니 이걸로 결정한 후, 그 다음은 가격 비교 검색이다. 같은 약임에도 사이트마다 가격은 널을 뛰고 있었다. 심지어 일 년 치 복용할 수 있는 양의 약 값이 많게는 3, 4만원이 차이가 났다. 택배비를 지불하더라도 이정도 가격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좀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긴 하다. 이제 결제의 시간이 왔다. 내가 이 약을 사겠다고 장바구니에 담고 카드 결제를 클릭하기 전에 또 다짐을 한다. ‘난, 약을 먹어야 돼, 그리고 약을 먹기 위해서는 밥도 챙겨 먹어야 해. 약이 건강을 책임지는 게 아닌 것 알지? 꼬박꼬박 약 먹으면서 운동도 귀찮다고 거르지 말고.’ 마음에는 다짐을, 손가락은 결제를 누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약이던 운동이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해야 된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 게으른 생활 습관을 벗어나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엇갈리는 생각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이제는 물러설 시간이 많지 않음에 금방 우울해진다.